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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1:12)

 

성도는 구원받은 천국의 사람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자신이 성도라는 것을 바르게 인식한다면 구원의 문제에는 염려하지 않는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내가 성도인가?’라는 물음에서 하나같이 자신감이 하락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자신이 생각하는 성도의 자격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성도라면 어떤 문제가 있어도 염려하기보다는 믿음 안에서 굳건히 주만 의지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염려와 불안이 사라지지 않는 자신의 믿음을 의심한다. 이런 이유로 교회 생활을 보면 성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삶의 내용이 미흡하다는 생각에 갈팡질팡하는 것이다. 이 모두가 성도와 믿음에 대한 잘못된 인식의 결과다.

 

 

믿음이 강한 사람이 성도일까? 어떤 시련이 와도 낙심하지 않고 인내하며, 하나님을 원망하게 하는 죄의 유혹 이기는 것이 믿음이 강한 성도라는 증거인가? 이러한 기준으로 자신을 판단하기 때문에 과연 성도인가?’라는 물음에 자신감을 잃는 것이다. 이것이 성도를 인간의 기준과 방법으로 판단하고 인식하려는 데서 발생하는 오류다.

 

 

성도라는 것에 자신감을 가지라는 뜻이 아니다. 인간의 자신감은 자기의 정당함을 근거로 하며 그것은 인간의 완악이다. 하지만 성도의 자신감은 자기를 근거로 하지 않는다. 십자가에서 피 흘림으로 다 이루신 예수님의 의를 근거로 하는 자신감이다. 그래서 성도의 자신감의 출처는 인간의 열심과 행함이 아니라 모든 죄를 용서하신 예수님의 십자가이다. 예수님이 믿음의 만족이 되는 상태가 성도의 자신감인 것이다.

 

 

그렇다면 성도에게 성도임을 인식하게 하는 하나님의 방식은 계속 죄를 드러내시며 죄를 알게 하시는 것이다. 죄를 극복하고 이기라는 것이 아니라 이길 수 없기에 저주가 당연한 인간의 자리에서 죄를 대신해 피 흘리심으로 구원을 이루신 주가 믿음의 전부 임을 알게 한다. 이것이 믿음의 능력이다. 이 믿음이 자신을 주께 붙들어 놓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 우리가 성도임을 인식하게 하는 하나님의 일하심이다.

 

 

그런데 사탄은 믿음을 자신의 선함과 열심으로 충족시켜야 한다고 유혹한다. 이것이 사탄의 시험이며 이 시험에 빠진 증거는 자신의 열심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믿음에 만족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믿음을 자기 것으로 알기에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예수님의 행함으로도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시험은 이겨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야고보는 시험을 이기는 자가 아니라 참는 자에 대해 말한다. 시험을 참으면 복을 받아서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생명의 면류관은 예수의 피와 상관없이 시험을 이기는 인간의 믿음으로도 가능하다는 뜻이 되기에 잘못된 생각이다.

 

 

시험을 참는 자가 복이 있다라는 말에서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사탄의 시험이 무엇인가를 아는 사람만이 시험을 참는 자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시험을 알지 못하면 시험에 들어 있는 자신의 실상을 모른다. 따라서 시험을 참는 것도 있을 수 없다. 오히려 사탄의 시험을 바른 믿음으로 착각하면서 자기 믿음에 만족하고 구원에 자신감을 가진다.

 

 

시험을 참는 자는 예수님이 믿음의 만족이 되는 성도를 의미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만 바라보는 성도가 시험을 참는 자고 복 있는 자다. 시험을 참아서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복이 되시는 예수 안에 있기에 시험을 참는 것이다.

 

 

성도는 자기의 행함으로 믿음의 여부를 판단하게 하는 사탄의 시험에서 예수님이 이루심만 믿고 십자가를 자랑함으로 시험을 참는다. 자기를 위해 주를 찾고 부르는 세상에서 자신을 저주받을 자로 여기며 주의 이름만 높이는 것이 시험을 참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 안에 있는 것이며 이들 성도가 주께서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다. 그래서 성도에게는 할 일이 없다. 다만 생명의 면류관이라는 약속의 성취가 된 예수님으로 기뻐하는 사람이 성도다.

 

 

사탄은 시험이 아닌 것을 시험으로 알게 한다. 가령 주일에 교회 가려고 준비하는데 친구가 단풍 구경 가자고 전화했을 때 주일 지키는 믿음을 방해하는 사탄의 시험으로 인식한다거나 미리 수입에서 십일조를 떼어 놨는데 갑자기 돈 쓸 일이 생겨서 십일조를 쓰는 것을 하나님께 헌금하는 믿음을 방해하는 사탄의 계략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이 죄가 아닌 것을 죄로 알고, 시험 아닌 것을 시험으로 알게 하는 사탄의 일이다.

 

 

그래서 시험을 시험으로 알지 못하면 친구의 전화에도 불구하고 주일을 지키고, 어떤 일에도 십일조로 준비한 돈을 사용하지 않는 것을 시험을 이기고 믿음을 지킨 것으로 착각하고 자기 믿음에 만족한다. 이러한 인간에게 시험을 알고 참는 일은 없다. 그래서 죄가 아닌 것을 죄로 말하고, 시험이 아닌 것을 시험을 말하면서 죄의 유혹을 물리치고 시험을 이기라고 가르치는 것이 사탄의 시험에 빠진 종교의 실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사탄의 시험은 믿음을 방해하는 특별한 사건이 아니다. 시험을 특별한 사건으로 이해하게 되면 평소에는 시험이 없다가 믿음이 흔들리는 사건이 있을 때만 시험을 받는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탄의 권세 아래 있는 세상 자체가 시험의 현장이다. 그래서 성도에게는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시험이고 시련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낙심하고 염려할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죄가 드러나게 하며 십자가의 의를 믿게 하는 방식으로 성도임을 인식하게 하신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라는 예수님이 가르치신 기도가 있다. 세상을 나의 뜻과 목적을 이룰 곳으로 바라보지 않게 해달라는 뜻이다. 성도의 뜻과 목적은 오직 예수님께만 있다. 그래서 성도는 예수를 알고 믿게 되므로 모든 뜻과 목적이 성취된 자다. 이것이 시험에 들지 않고 악에서 건짐 받은 구원이며 이 구원으로 기뻐하는 것이 복이 있는 시험을 참는 자, 성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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