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21 13:03

삼상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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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삼상 16:14)

 

기독교란 분야에서 성경 전문가로 통하는 사람이 목사와 신학자다. 하지만 목사 대부분이 평소 성경보다는 목회, 즉 교회에 관심을 둔다는 점에서 보면 성경 전문가라기보다는 차라리 교회 전문가로 말하는 것이 더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

 

 

그러면 평생 성경만 연구하고 가르친다는 신학자는 성경 전문가일까? 그들의 세계에서는 성경 전문가로 자처하고 자부하겠지만 나의 시각에서는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원칙도 없이 시작하는 것이 소위 신학이라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인간을 죽은 자로 시작한다. 죽었기에 인간 스스로 생명을 깨닫고 생명으로 나아갈 능력이 없다. 오로지 하늘로부터 생명이 찾아와 생명에 속하게 한 사건으로 인해서 산 자 된 십자가 이야기가 성경이다. 그래서 성경은 인간에게는 감추어진 비밀이다. 하나님도 예수님도 성령도 인간의 연구로 알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기에 성령의 감동이 아니면 절대 성경의 세계를 알 수 없다.

 

 

성령은 우리를 십자가로 인도하여 예수님의 피로 확증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고 사랑 앞에서 우리가 추구했던 모든 것을 헛된 것으로 부인하게 한다. 그런데 성령 없는 신학자는 인간의 구원을 중심에 두고 성경을 생각한다. 성경에서 구원에 확증이 될 조건을 찾는다. 이것이 인간의 정욕이며 이들의 신학에 성경은 없다.

 

 

성경이 없는 신학은 단지 인간의 정욕으로 드러난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가 본문이다. 본문을 두고 신학자들의 주장이 분분하다.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났다는 것을 두고 한번 임한 성령이 떠날 수 있는가?’라는 문제로 서로 다른 주장을 펼치는 것이다. 교회는 대개 성령의 내주를 말한다. 성령이 한번 오시면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을 토대로 한번 구원은 영원하다라는 주장도 한다. 성령 받은 것을 구원에 의미를 두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반대하는 신학자도 있다. 사울의 경우처럼 성령이 임해도 다시 떠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난 이유를 사울의 죄로 말하면서 믿는 자는 성령이 떠나지 않도록 바른 신앙생활에 힘써야 한다고도 한다. 성령이 함께 하고 구원을 이루는 일에 인간의 노력도 빠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인간의 구원에 초점을 둠으로써 나타나는 오류다. 이것이 자칭 성경 전문가라고 하는 신학의 세계다.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 임한 일은 삼상 10장에서 시작한다. 사무엘에게 기름 부음을 받은 사울이 사무엘의 말대로 여호와의 영이 임하고 예언을 하게 된 것이다. 삼상 11장에서도 하나님의 영에게 감동된 사울이 암몬 자손과 전쟁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한 내용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울에게서 하나님의 영이 떠나고 악령이 번뇌하게 하였다는 내용에서 의견이 분분해진 것이다.

 

 

그런데 삼상 19:23절을 보면 사울이 라마 나욧으로 갔을 때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임하여 예언을 하였다고 말한다. 이것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성령은 떠나기도 하고 다시 돌아오기도 하는 것인가? 그러면 영이 다시 임한 것은 사울이 잘못한 것을 뉘우치고 참된 왕이 되었기 때문인가? 하지만 당시 사울은 라마 나욧에 있는 다윗을 잡기 위해 가는 길이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한 후에 다윗과 화해했다면 그나마 할 말이 있다. 사울이 변한 것을 하나님이 영이 임한 효과로 해석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이 임한 후에도 다윗을 향한 사울의 감정은 변함이 없다. 다만 다윗을 잡으러 가는 길에 예언한 것이 영이 임한 일의 전부다.

 

 

하나님의 영, 즉 성령이 내주하든 떠났다가 다시 오든 중요한 것은 영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을 인간의 구원이라는 정욕으로 연구하는 신학은 성경에서 벗어난 사탄의 신학에 불과하다.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다.

 

 

그리고 악령으로 인한 사울의 번뇌는 골리앗을 죽이고 돌아오는 다윗으로 인해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는 여인들의 노래에 불쾌한 것이 악령 들린 사울의 번뇌다. 이것으로 모든 인간은 악령이 들리고 악령에 의해 번뇌하는 자임이 드러난다. 왜냐하면 사울의 불쾌함이 우리의 불쾌함이기 때문이다.

 

 

성령이 가르치는 인간의 기본 원칙은 죽은 자다. 아담에 속한 인간은 저주받았고 악령에 의해서 악령의 속성으로 존재한다. 그런데 우리는 악령이란 존재를 단지 공포의 대상으로 생각한다. 인간이 만든 영화에 등장하는 악령처럼 무서운 존재로 상상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은 그저 평범하게 교회를 다니는 정상적인 기독교인으로 보일 뿐 악령이 임한 자라는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이 떠나고 악령으로 인해 번뇌하는 사울은 우리와 다르지 않다. 왕인 자신보다 아무것도 아닌 다윗이 더 높임 받는 것을 불쾌해 하는 사울이 곧 우리의 실상이기 때문이다. 악령이 사울에게 힘 있게 내리매 사울이 다윗을 향해 창을 던진 그 적개심이 우리의 악한 마음이다. 내 믿음이 다른 사람보다 못한 것으로 평가될 때 오는 불쾌감이 있는 우리가 정상적이지 않고 악령에 들려 있음을 말하는 것이 사울 이야기다.

 

 

사울 이야기는 성령이 왔다가 떠날 수 있고 떠나도 다시 온다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죽은 자인 인간의 실상을 알게 한다. 다윗이 한 일이 더 칭송받는 것을 불쾌해하는 사울 이야기로 악령에 붙들려 번뇌하는 육에 속한 인간에 대해 말한다. 그래서 우리 역시 육의 사람이라는 것을 반박할 수 없게 하는 것이 성경이다.

 

 

그러면 다윗을 잡으러 가는 사울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한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하나님의 영은 다윗에 대한 사울의 마음을 변화시키지 않는다. 즉 성령은 육의 사람인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기 위해 오지 않는다. 그래서 성령이 임했다 해도 육신을 위해 사는 것은 여전하다. 누군가가 나보다 높임을 받으면 불쾌해지는 자신을 두고 성령 받지 못했나라고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다.

 

 

하나님의 영은 사울이 예언을 하게 한다. 예언은 인간의 지식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사울이 자기 지식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울이 알지 못한 것을 하나님의 영이 말하게 한 것이다. 이것이 영이 하는 일이다. 지금의 성도로 말한다면 인간의 지식으로 알 수 없는 십자가의 비밀을 성령의 감동으로 말하게 되는 것이 예언이다. 그래서 예언은 우리가 여전히 육신으로 사는 죄의 길에서 하게 된다. 죄의 길에서 십자가의 은혜가 넘치는 것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신학은 인간과 악령을 분리하여 악령이란 존재를 연구하지만 성경은 인간을 본래 악령에 붙들린 존재로 시작한다. 악령에 붙들린 인간은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다만 성령이 임한 성도만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닫고 모든 것을 주가 하신 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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