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11 12:30

눅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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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17:21)

 

사람은 성경을 보면서 성경이 말하지 않은 헛된 현실과 미래를 기대한다. 이것을 환상적 이미지로 말할 수 있는데 그 한 예가 하나님 나라, 천국이다. 천국은 모든 기독교인에게 죽음 이후에 이루어지길 바라는 소망으로 자리한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라는 말씀도 현재의 삶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너희 안에 있다라는 말씀을 마음이 천국의 상태가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마음의 평안을 기대하는 것이다. 마음을 괴롭히는 걱정과 근심이 사라지고 평안한 상태가 되는 것을 하나님 나라가 내 안에 있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사실 마음은 걱정, 염려, 근심, 불안으로 가득한데 하나님 나라가 있다고 하면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으로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라는 말씀을 자신과 무관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인간의 마음은 더러운 죄로 가득하다. 이러한 마음에 평안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 평안하다 해도 그것은 환경 여건에 의한 잠깐의 느낌일 뿐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마음이 평안해지는 것으로 체험하고 확인하고자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잘못 받아들인 것이고 성경에 없는 헛된 현실을 꿈꾸는 것이기에 환상적 이미지라고 말한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환상적 이미지를 그리게 되는 이유는 인간의 인식 개념으로 성경을 이해하기 때문으로 말 할 수 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니이까라고 묻는다. 이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라고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보고자 하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들의 잘못됨을 지적하시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한다.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는 것은 바리새인들만 아니라 제자들의 문제로까지 확장된다. 결론은 인간은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라는 것이다. 볼 수 없다면 알 수도 없고 확인할 수도 없다. 그런데도 보고 체험하고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이 자기를 위해 살아가는 인간의 탐심이다. 자신을 위한 나라, 천국을 꿈꾸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이 볼 수 있고 인식할 수 있는 수준으로 임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떤 문제로 인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는가? 그 이유는 시각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고방식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의 사고방식으로는 말씀을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이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한다.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를 보지 못하고 알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자기를 위해 존재한다. 자기를 기준으로 선악을 판단한다. 하나님의 나라도 인간을 위해 주어지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환경이나 마음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을 천국으로 생각하고 그런 나라로 임하기를 원하지만 이러한 사고방식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나라는 성경이 말하지 않은 거짓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 해도 가지도 따르지도 말라고 하신다. 어디를 가도 인간을 위한 가짜 하나님의 나라만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의 오심으로 임했고 드러난다. 그런데 인간은 예수님을 싫어하고 배척했다. 자기의 믿음과 의를 인정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바리새인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조건과 기준은 믿음 있는 의로운 백성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들처럼 율법을 실천하는 것으로 충족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들이 궁금했던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때다. 어느 때에 임하든 하나님의 나라는 자기의 것으로 간주한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으로 생각해 보면 저주받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합당하지 않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죄를 알지 못하고 자기 믿음에 기준을 두기에 하나님의 나라를 당연히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문제는 자신을 저주받은 인간으로 인식하지 않은 것이며 이것이 우리의 문제가 된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곳으로 임한다. 그리고 저주받은 인간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은 죄를 대신 지고 죽으신 십자가로만 가능하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는 독생자 아들을 보내시고 죄를 대신하여 죽으시는 십자가라는 방식으로 임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십자가 안에서 우리를 만나시고 함께 하시는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죄를 보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자신의 죄에서 예수님이 피를 흘리심으로 다 이루신 용서의 은총을 아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보는 것이다. 이것이 사랑과 은혜가 넘치는 하나님의 나라다. 이것을 마음의 평안이나 행복을 느끼는 감정으로 확인하려는 것이 어리석다는 것이다. 사랑과 은혜가 확증된 하나님 나라의 현장은 십자가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안에 있다는 것을 마음에 하나님 나라가 들어왔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자기 마음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찾으려고 하지 말라. 아무리 찾아 헤매도 결국 실망만 하게 된다. 인간의 안에 있는 것은 오직 밖에 없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은 너희 안, 죄가 있는 자리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자기 안의 죄를 보지 못하기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해도 볼 수 없는 것이다.

 

 

 

죄를 알게 되면 나로 인해 고난받고 내가 버린 예수님을 만난다. 그것이 신자의 안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다. 환경 여건이나 마음 상태와 무관하게 성령으로 죄를 깨닫고 주를 바라보는 모든 성도에게 있는 하나님의 나라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예수님이 영으로 일하시는 그 현재가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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