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18 12:23

벧후 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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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벧후 3:10)

 

베드로는 종말, 즉 세상의 마지막 날을 주의 날로 말한다. 그리고 그 날에 있을 현상으로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며 땅과 그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난다고 한다. 우리는 이것을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재림 날에 있을 종말론적 현상으로 이해한다. 이것이 기독교인이 현재의 삶에서 종말을 인식하지 못하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어제도 오늘도 우리가 바라보는 하늘은 변함이 없다.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남을 실감하게 하는 특별한 가시적 체험도 없다. 그래서 도둑 같이 온다는 주의 날을 현재까지 실현되지 않은 미래에 있을 사건으로 받아들인다.

 

 

6:12-14절에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어지고 달은 온통 피 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지매라는 내용이 있다.

 

 

우리는 이러한 내용을 보면서 자연 세계에 있을 경천동지(驚天動地)할 놀라운 사건과 함께 오는 종말을 상상한다. 그런데 현재의 해, 별은 변함없이 그대로 존재하기에 아직 오지 않은 종말로 이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해로 인해 신앙생활이 종말을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전락 된다는 점을 주지해야 한다.

 

 

하늘이 떠나간다는 것은 사라진다는 뜻이다. 하늘은 물질이 아니다. 인간의 능력으로 측량할 수 없는 거대한 공간이다. 그러면 공간인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진다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12)? 이것이 종말을 문자적 의미로 해석할 때 부딪히는 한계다. 결국 성경에 예고된 내용이라는 이유만으로 언젠가는 다가올 날로 막연하게 믿는 것이 전부다.

 

 

하늘이 사라지면 하늘에 존재하는 해, , 별도 함께 사라진다. 의문은 인간이 존재하는 땅만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까지 사라져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해가 검어지고 달이 피같이 되며 별이 땅에 떨어지는 종말에 담긴 의미가 단지 언젠가는 반드시 무서운 심판의 날이 실현될 것에 대한 경고일까?

 

 

13절에 보면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라고 말한다.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본다는 것은 기존의 하늘과 땅은 사라졌다는 뜻이다. 주의 날이 도둑같이 옴으로 이루어진 하늘과 땅이다. 따라서 새 하늘과 새 땅이 현재의 우리에게 임했다면 주의 날, 즉 종말이 왔다는 뜻이고, 하늘이 사라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는 종말의 현상 또한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만약 주의 날도, 주의 날에 있을 현상도 아직 오지 않았다면 새 하늘과 새 땅은 현재에는 없는 미래적인 것으로 기다려야 한다. 그러면 신자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는 사람인가? 아니면 이미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인가?

 

 

베드로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으로 말한다(13). 즉 약속의 땅이며 기존의 하늘과 땅에는 없는 의가 있는 곳이 새 하늘과 새 땅이다. 성경은 이것을 하나님의 나라로 말한다. 따라서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이 세상에 의가 있다면 의가 있는 그곳이 새 하늘과 새 땅이며 하나님의 나라다.

 

 

하나님의 의로 오신 분이 예수님이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고 의롭게 하신 의가 있는 곳이 십자가다. 따라서 십자가를 예수님이 이루신 새 하늘, 새 땅으로 생각하면 신자에게 주의 날은 이미 왔으며 종말의 사건 또한 이미 체험된 것이다. 즉 종말의 사건은 실존적이며 이 현상을 체험한 사람이 신자다.

 

 

이스라엘은 하늘의 일월성신, 즉 해와 달과 별을 경배하여 섬겼다(왕하 17:16, 대하 33:5). 하늘에 있는 일월성신에 신적 의미를 두고 자기를 위하여 하나님과 함께 신으로 경배하고 섬긴 것이다. 그래서 하늘은 단지 우리가 바라보는 공간이 아니라 인간이 의지하는 우상이 존재하는 곳이다. 이 하늘을 불에 풀어지게 하고 사라지게 하는 것이 주의 날이며 인간이 섬기는 것을 불로 심판하는 날이 된다.

 

 

이러한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온다는 것을 몰래 예고 없이 온다는 것으로 해석하고 대비해야 하는 것에 초점을 둔다. 도둑이 몰래 예고 없이 오는 것도 맞지만 다른 의미도 있다. 도둑은 내 것을 가져가기 위해 온다. 그렇다면 주의 날은 소중히 여기는 내 것을 모두 도둑맞은 날이 된다. 그래서 내 것을 몰래 가져가는 도둑을 기다리고 반기는 사람은 없다.

 

 

그러면 주의 날을 예수님이 내 안에 들어오시는 날로 생각해 보자. 예수님이 내 안에 오시는 그날은 내가 주인이 되어 내 것으로 간주하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날이다. 우리는 이런 예수님의 오심을 원하고 기다리지 않는다. 평안과 위로와 복을 주기 위해 오시는 주의 날을 기다리고 원하는 것이지 나의 것을 가져가기 위해 오시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가치 있는 것으로 붙들고 자랑하는 소중한 것, 즉 나의 의와 공로를 남김없이 불에 풀어져 사라지게 하고 나의 죄를 낱낱이 드러나게 하는 주의 오심, 주의 날을 본래 싫어하는 자다. 그런 우리에게 주가 오셔서 우리가 의지하는 모든 것을 가치 없는 것으로 무너뜨리고 사라지게 하여 내 것은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자로 만든다.

 

 

이것이 하늘이 사라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며 땅의 모든 일이 드러나는 도둑같이 온 주의 날의 심판이며 종말이다. 이 심판이 하나님의 집에서 시작하셨기에 신자는 자기 것이 불에 태워 사라지는 심판을 이미 받은 것이고 마지막 때의 불 심판에 속하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이 도둑같이 오신 주의 날이 이루어진 신자에게는 의지했던 모든 것이 십자가의 의로 인해 소멸하는 심판의 체험이 있게 된다. 그리고 내 것이 없는 빈자리는 예수님의 용서와 은혜로 채워진다. 이들이 자기 힘으로 일하는 자기의 날이 아니라 주가 이루심을 믿는 주의 날을 살고 세상 마지막 때의 불 심판에서 구원받는 성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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