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30 12:41

막 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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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2:28)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확증되었고(5:8) 바울은 사랑을 율법의 완성으로 말한다(13:10). 따라서 사랑은 인간의 행함을 조건으로 베풀어지지 않는다. 하나님 쪽에서 아들의 죽음으로 율법의 요구를 충족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이 지켜야 할 행함을 만들어 법으로 세운다면 그것은 율법의 완성인 사랑과 충돌하는 결과가 된다. 그런 점에서 한국교회가 믿음의 실천 원칙으로 가르치고 강조하는 소위 주일성수라는 법은 사랑과 충돌된다. 죄인 된 우리를 사랑으로 찾아오신 하나님의 목적은 생각하지 않고 행함을 내세워 하나님과 거래하여 원하는 것을 얻는 것에만 관심을 두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성도는 자기 행실과 무관하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의 피로 죄가 용서되고 거룩하여진 사람이다. 인간의 믿음이나 선한 행실 때문이 아니라 예수의 피로 인해서 성도로 부르심을 받는다. 그런데 예수 안에 있는 성도가 주일이라는 날을 지키고 지키지 않는 것으로 믿음이 평가되고 복이 달라지며 구원에도 영향이 있다는 것이 과연 타당하다고 할 수 있는가? 그것은 오히려 예수님의 피를 훼방하고 사랑을 더럽히는 것일 뿐이다.

 

 

한국교회는 주일을 안식일이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로 바뀐 것으로 해석한다. 해석의 근거는 안식 후 첫날 저녁때에 제자들이 모였다는 것과(20:19),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매주 첫날에 연보를 모아 두라고 한 것 등이다(고전 16:2). 그래서 안식일 정신을 따라 주일에 일을 쉬고 예배드리며 거룩하게 보내는 것을 주일성수로 가르치지만, 이것은 성경의 다른 내용은 무시하는 근시안적 사고일 뿐이다.

 

 

초대교회는 부활 후 첫날이라는 특정 날이 아니라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2:46). 바울도 유대인들이 모이는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강론한 것을 보면 부활 후 첫날을 주일로 지켜야 한다거나 주일이라는 날도 가르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어쨌든 안식일이 주일로 바뀌었다고 주장한다면 주일과 주일성수는 안식일 날의 의미가 무너지면 함께 무너지게 된다. 물론 순순히 인정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자기주장을 고집하겠지만 그것이 바리새인과 다르지 않고 그러한 인간의 고집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음을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예수님과 바리새인의 갈등은 거의 안식일 규례로 집중된다.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라고 말씀하게 된 것도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 때 제자들이 이삭을 자른 것을 배경으로 한다. 안식일에는 이삭을 자를 수 없다는 유대 규례를 어긴 것으로 간주하고 저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라며 예수님께 시비한 것이다.

 

 

예수님은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다니다가 시장해서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 제사장만 먹을 수 있는 진설병을 자기 부하와 함께 나눠 먹은 이야기를 인용하여 말씀한다. 그리고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라는 말씀으로 안식일의 의미를 바리새인과 다르게 해석하여 말씀한다. 즉 바리새인의 안식일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잘못된 것으로 말씀한 것이다.

 

 

그러면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제자들이 이삭을 자른 것과 다윗이 부하들과 함께 진설병을 먹은 것은 시장한 배를 채우기 위함이다. 따라서 사람을 위해 있는 안식일의 의미는 시장한 배를 채우는 양식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이 양식이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6:48)라는 말씀대로 예수님의 피와 살을 의미하는 것이다.

 

 

진설병은 하나님께 바쳐진 거룩한 떡이다. 율법으로는 제사장을 제외한 누구도 이 떡을 먹을 수 없다. 다윗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한 떡을 먹었다는 것은 율법이 아닌 다른 힘의 다스림이 있음을 의미한다. 그것이 곧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사랑과 자비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거룩한 떡이 인간의 주린 배를 채우는 생명의 양식으로 베풀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이며 율법의 완성이다. 그래서 사랑과 자비의 세계인 십자가에는 지켜야 할 안식일이나 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말씀처럼 자유의 영역이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 완성과 함께 등장한다. 안식일에 노동을 쉬라는 것도 인간의 수고로 이룰 것이 없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완성이 담긴 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의 규례에 따라 안식일을 지키려고 하고 그것을 믿음의 행함으로 높이는 것은 안식일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오히려 안식일을 어기는 것일 뿐이다. 이러한 안식일은 유대인은 물론이고 누구도 알지 못한다. 이것이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라고 말씀하신 이유다.

 

 

인자는 고난받으시는 분을 뜻한다. 유대인은 메시아가 이러한 인자로 오신다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인자가 주인 되시는 안식일도 알 수 없다. 인자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고난받으시고 죽으심으로 확증된 사랑으로 주린 자의 배를 채우시고 배부름이 되게 하는 안식일을 알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런데도 그들은 당연히 안식일을 안다는 것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안식일 규례를 기억하고 하나하나 철저하게 지키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지금의 한국교회가 주일이라는 날을 지키고 성수하는 것으로 예수를 믿고 주일도 안다고 착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사실 기독교인치고 주일성수를 모른다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주일은 일요일을 기독교 용어로 바꾼 것일 뿐이다. 그래서 주일성수도 없다. 한 날을 지켜서 복을 받는다는 것은 그저 인간 욕망의 산물이다. 성령은 성도를 육신이 아니라 사랑에 주린 자로 주께 나오게 한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피와 살로 확증된 율법의 완성인 사랑으로 배부름을 얻게 한다. 이것이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안식일이다. 성도는 주일이든 수요일이든 지체된 형제의 모임이 있기에 가는 것이다. 그래서 주일성수는 예수를 모른 자들의 종교 생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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