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10 12:20

마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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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13:52)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된 인간을 에덴동산에서 추방하심으로 천국은 선악 지식을 허용하지 않음을 보이신다. 따라서 인간에게 선악 지식이 있는 한 누구도 생명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이 선악 지식을 알지 못한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자기 변화를 추구하고 수준 높은 변화를 이룬다 해도 선악 지식은 지울 수 없다. 이것이 구원 이후라는 말이 성경과 성립될 수 없는 이유다.

 

 

사람들은 구원을 전과 후로 나누고 구원 전보다 나아진 삶의 변화에서 구원을 확인하려고 한다. 하지만 선악을 아는 상태에서 인간의 변화는 없고 변화될 수도 없다. 그런데도 구원 이후를 말하는 것은 선악을 안다라는 상태의 심각함과 무서움은 도외시하고 이전과 다른 변화를 통해 자신이 믿음에 있음을 보이려는 욕망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바울은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 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으나”(3:3)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라는 말도 한다.

 

 

사람들은 이 내용에서 전에는’ ‘이전 것은이라는 말은 구원 이전의 의미로 해석한다. 그렇다면 딛 3:3절에서 말하는 전에는에 해당하는 악함은 모두 지나간 이전 것이 되어야 하고 구원받은 사람에게서는 다시는 나타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이전 것이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이 아닌가? 결국 구원을 전과 후로 구분한다면 바울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이 아닌 결과가 된다. 바울도 이전 것의 악함에서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구원받기 전과 후의 인간은 변함이 없다. 다른 것은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이라는 새로운 상태의 나라가 존재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저주를 받아야 할 인간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구원 이전이라면, 죄는 그대로인데 그리스도 안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의 혜택을 누리게 된 것이 구원 이후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는 말을 인간의 이전 모습이 사라지고 새것으로 변화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하지 않아야 한다. 이전 것, 즉 옛것의 낡은 부분을 아무리 수리한다 해도 새것이 될 수 없다. 새것은 없던 것이 있는 새로운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 아래에는 새것이 없다는 전도서의 말처럼 땅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옛것일 뿐 새것이 아니다. 따라서 하늘로부터 온 것만 새것이다.

 

 

새것과 옛것을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 이야기도 이러한 취지에서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옛것보다는 새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옛것은 버려져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집주인은 옛것을 버리려고 내오는 것이 아니다. 단지 곳간에 옛것과 새것이 함께 있었고 집주인이 그것을 내오는 것으로만 말씀할 뿐 이 둘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대한 내용은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새것과 옛것을 함께 곳간에 보관하고 있는 집주인에게 초점을 두어야 한다.

 

 

말한 것처럼 옛것은 새것으로 변할 수 없다. 옛것은 옛것일 뿐 새것이라는 영역으로 넘어갈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성화, 구원 이후를 고집하면서 자기 변화를 추구하는 것은 옛것이 감히 새것이 되고자 하는 헛된 환상이다. 그렇게 헛된 꿈만 꾸다가 영원한 심판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옛것의 입장에서 새것은 하늘로부터 오신 예수님이시고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일이 땅에는 없었던 새로움에 해당한다. 그리고 예수님이 행하신 새로운 일이 옛것을 새것 되게 한다. 이것을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로 말한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피조물은 자기 변화로 되는 것이 아니라 새것으로 오셔서 새로운 일, 즉 자기 피로 죄를 용서하신 자비와 사랑 안에 있게 하심으로 발생한 결과물이다.

 

 

그러면 바울의 말대로 옛것은 지나갔다고 할 수 있는데 새것과 함께 곳간에 보관된 것으로 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옛것을 새것 되게 하신 예수님의 일을 증언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하기 위함이다. 옛것을 옛것의 상태 그대로 사용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새것이 되고자 하고 구원 이후라는 자기 변화를 추구하는 자는 성도가 아니다.

 

 

성도는 쉬지 않고 악한 것이 흘러나오는 옛것에 해당하는 자기 자리에서 새것으로 오신 예수님이 베푸신 십자가의 자비와 사랑을 누린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도 않는 나에게 찾아오셔서 죄를 용서하시고 죄 없다고 하신 사랑에 감사한다. 저주받아야 하는 옛것인 인간을 새로운 피조물, 새것 되게 하신 주의 일이 기쁨과 감사가 된다.

 

 

옛것을 새것 되게 하신 주의 일을 모르면 자기 믿음으로 자기를 책임지려고 한다. 그래서 구원 이후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옛것이 새것 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예수님의 의로만 새것이 된다. 따라서 할 수 없다라는 옛것의 자리에서 예수님의 의를 믿는 것이 이전의 옛것은 지나간 새것인 성도로 드러난다.

 

 

옛것을 새것 되게 하신 것이 언약의 완성이다. 13장에서 말씀하는 비유의 내용들도 예수님이 이루실 일을 말한다. 그래서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은 인간이 지키고 행해야 할 일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홀로 지키심으로 이루신 일을 증거하는 사람이다. 이것이 제자들이 할 일임을 가르치시는 것이다.

 

 

만약 옛것은 지나갔으니 옛것의 행실로 살지 말고 새것으로 선한 행실을 하며 살아야 한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이 다른 복음이다. 옛것과 새것을 선악 지식의 인간에게 맞게 혼합하는 것이다.

 

 

 

집주인이 새것과 옛것을 내왔다는 것은 곳간에 있던 것이 세상에 드러났음을 의미한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하나님의 언약에 담긴 옛것을 새것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일이 드러난 것이다. 이 일이 행해지는 것이 천국이며 천국의 일을 증거하는 것이 천국의 제자 된 성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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