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03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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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3:2)

 

안 되는 걸까? 도무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성경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두고 문맥에 주의만 기울여도 자신의 해석에 문제가 있다는 것 정도는 눈치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도 안 된다는 현실이 정말 신기할 정도다. 독해력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난독증인지 소위 성경 전문가로 자처하는 목사들을 모아 전수검사라도 해보고 싶은 심정이다. 오랜 세월 변함없이 이어져 온 교회의 성경 해석이 하도 기가 막혀 나오는 의미 없는 푸념이다.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라는 이 문구도 많은 교회가 표어로 정하고 현수막에 인쇄하여 예배당 전면에 걸어 놓은 성경 구절 중의 하나다. 이 구절이 목사들에게 그토록 인기를 끄는 이유가 부흥이라는 단어 때문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한 마디로 개역 성경에 단 한 번 언급되는 단어에 목사들이 꽂힌 것이다. 그런데 과연 부흥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뜻을 알아도 이 구절을 끌어안고 있을지가 의문이다. 물론 그 뜻을 해석해 준다 해도 무시할 것이 뻔하지만 말이다.

 

 

목사들의 독해력, 난독증을 운운하는 이유는 부흥하게 하옵소서라는 말 뒤에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라는 말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박국 선지자가 말하는 부흥의 의미가 목사들이 소망하는 것처럼, 교회가 일어서고 강해지고 성장하는 것이라면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말아라는 하박국의 기도는 사실 뜬금없다고 할 수 있다. 이것만 생각해도 부흥을 성장의 의미로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은 쉽게 알게 된다. 결국 단어 하나에 꽂힌 목사들이 자기 야망을 위해 성경을 이용하는 현실이 이렇게 드러나는 것이다.

 

 

한심스러운 것은 부흥이라는 단어의 뜻조차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글 사전에 보면 부흥(復興)‘1. 쇠퇴하였던 것이 다시 일어남, 2. 다시 활발히 일어나다로 설명되어 있다. 그런데 하나님이 피로 사시고 그리스도가 머리 되신 교회가 쇠퇴한 적이 있었던가? 아니 교회가 쇠퇴할 수 있는 것인가?

 

 

지금의 기독교 현실을 쇠퇴로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유럽 내의 기독교 쇠퇴의 실상이 심각하다는 말도 한다.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에 비해 신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의심하는 인구의 비율이 갈수록 높아지고, 종교가 기독교라고 하면서도 예배에는 참석하지 않는 현상이 갈수록 심화하는 것 등을 이유로 기독교의 쇠퇴를 말하는 것이다. 한국교회 역시 쇠퇴를 실감하게 경험하고 있다는 말을 많이 하는 것을 보면 소위 교회 사업이 잘 안되긴 하나 보다.

 

 

기독교라는 종교의 쇠퇴는 얼마든지 있을 수있다. 사람들이 기독교에 등을 돌리면 그것은 곧 세력 약화로 이어지기 때문에 그런 쇠퇴는 있다. 하지만 교회는 아니다. 세상이 교회에 등을 돌리고 교회를 찾는 사람이 없다 해도 교회는 쇠퇴한 적이 없고 쇠퇴할 수도 없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세상 모두가 예수님께 등을 돌린 현실을 생각해 보라. 제자들까지 등을 돌렸지만 그것은 예수님의 구원 사역이지 쇠퇴나 몰락이 아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18:20)라는 말씀을 생각하면 백 사람이 모여있다가 두세 사람이 남아도 교회가 쇠퇴했다고 말할 수 없다. 두세 사람이라 해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예수님이 함께 하시고 그것으로 교회 된 것이기 때문이다.

 

 

본문은 새번역으로는 주님, 내가 주님의 명성을 듣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하신 일을 보고 놀랍니다. 주님의 일을 우리 시대에도 새롭게 하여 주십시오. 우리 시대에도 알려 주십시오. 진노하시더라도, 잊지 마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되어 있다. 부흥을 성장이 아닌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일로 해석한다.

 

 

부흥하게 하옵소서의 히브리어 단어가 죽음으로부터 살다, 소생 되다라는 뜻임을 생각하면 죽음에서 살리심으로 새롭게 하신다는 의미의 부흥으로 해석된다. 하박국 선지자는 이것을 주의 일로 선포한 것이다. 그렇다면 부흥이란 단어로 번역한 것이 오류가 아니라 자기의 야망을 위해 성경을 해석하는 인간의 문제다.

 

 

하박국은 하나님이 바벨론이라는 이방 나라를 도구로 하여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일을 배경으로 한다. 주의 일은 이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박국은 하나님께 자신들의 심판을 속히 이루어 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인데 그 이유는 심판을 통하여 자기 백성을 살리시는 것이 주의 일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다고 하면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심판하여 자기 백성을 살리시는 주의 일을 인간은 상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순종하지 아니한 자기 백성을 심판하여 죄에 가두시고 긍휼을 베푸심으로 긍휼을 얻게 하신다(11:31).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을 알고 긍휼을 얻은 자들이 죽음에서 생명을 얻어 새롭게 된 하나님의 백성이고 참된 이스라엘이다. 하박국은 주의 일하심으로 이러한 이스라엘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이것이 부흥이라는 단어에 담긴 의미다. 그런데 자신들이 즐거이 표어로 삼는 부흥하게 하옵소서가 하나님께 자신들, 자기 교회를 심판해 달라는 기도라는 것을 과연 생각이나 할까?

 

 

하박국의 끝을 장식하는 17, 18절도 노래로 만들어 부를 정도로 유명한 내용이다. 소득, 소출이 없어도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겠다는 것은 믿음의 높은 수준으로 인정될만하다. 그런데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라는 표어를 앞에 붙여 놓고 이 노래를 부른다고 생각해 보면 그런 코미디도 없다. 교회에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도 구원의 하나님으로 기뻐하겠다는 뜻의 노래이니 말이다.

 

 

하박국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스라엘이 멸망하여 포도나무 열매, 감람나무 소출, 밭에 식물, 외양간에 소가 없게 된다 해도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부흥을 소망한다. 하나님의 긍휼을 얻는 일이 심판에서도 기쁨이 되게 해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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