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15 11:24

히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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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11:1)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주신 믿음만 믿음으로 인정되며 이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그렇다면 교회는 인간의 믿음과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믿음이 다르다는 것을 반드시 구별해줘야 한다. 인간의 믿음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구별 없이 인간이 믿음의 주체가 되어 자기 열심과 노력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며 말씀을 지키고 행동하는 삶을 믿음으로 가르치기 때문에 교인을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예수를 믿으라고 하면 가장 먼저 교회를 생각한다. 교회를 가고 교회인이 되는 것을 믿음의 시작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교회에서 가르치는 대로 예배, 기도, 헌금 등이 믿음의 행함이 되고, 그러한 행함이 있는 믿음이 자신을 복과 구원에 있게 하는 것으로 믿는다. 이러한 믿음이 하나님이 주신 믿음과 같다면 굳이 믿음을 선물로 주실 이유가 없다. 본래 인간에게 있는 믿음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믿음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자기 유지용이다. 전능자이신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세상에서 자신이 원하는 존재가 되어 자기를 유지하고 지키고자 하는 목적으로 믿는다. 그렇다면 과연 이 믿음의 중심이 예수님인지 아니면 인간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분명 인간이 중심이 된 믿음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믿음과 다르며 이 믿음은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능력이 없는 가짜로 드러난다.

 

 

성경은 믿음을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로 말한다. 이 내용만으로도 인간의 믿음은 믿음이 아닌 것으로 드러난다. 세상은 믿음을 자신이 바라는 것, 보이지 않는 것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지만 하나님이 주신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을 이뤄주는 것이 아니라 믿음 자체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고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라는 점에서 분명 다르다.

 

 

믿음이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면 믿음이 있는 자는 따로 바라는 것이 없는 상태가 된다. 다시 말해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 즉 바라는 것의 본질, 실체로 오기 때문에 믿음이 오게 되면 기존에 세상을 향해 바라는 것들은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기 때문에 믿음을 받았다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자가 된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것을 천국으로 이해하고 천국 가기 위해 믿는다는 것 또한 믿음이 아닌 것이 된다. 믿음은 우리를 천국에 보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가 되어 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이 중심이 된 삶이 되게 하기 때문이다.

 

 

한 맹인이 길 가에 앉아 구걸하다가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친다. 예수님이 그에게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라고 물으시자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한다. 그리고 예수님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시는데, 오늘 본문과 연결하여 생각해 보면 맹인을 구원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로 주어진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

 

 

맹인이 바라는 것은 보는 것이다. 예수를 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자로 살고 싶은 것이다. 예수에 대한 소문을 들었으니 예수라면 자기 눈을 뜨게 할 수 있다는 기대와 희망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믿음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에 대한 맹인의 기대, 신뢰와 관계없이 하나님이 주신 믿음이 맹인에게 구원의 능력이 된다는 뜻이다.

 

 

눈을 뜨고 보게 된 맹인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따른다. 이것이 맹인의 계획이고 뜻이었을까? 보게 되었다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수께 감사한 후에 그동안 맹인으로 누려보지 못한 삶의 행복을 위한 길을 가는 것이 옳다. 하지만 그랬다면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는 말씀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눈을 뜨고 세상을 보게 된 것으로 끝난다는 것이다.

 

 

여기서 생각할 것은 맹인에게 보이지 않는 것, 보지 못하는 것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세상을 보지 못하는 것이 맹인이라면 세상을 보는 자들은 맹인이 아닌 눈 뜬 자들이 된다. 보는 자라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을 본다 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는 그들이 맹인이다. 그런 점에서 보게 된 맹인이 세상으로 가지 않고 예수를 따르는 이야기는 바라는 것들의 실상,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로 주어진 믿음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준다.

 

 

맹인이 바라는 것은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눈을 뜨고 보게 되었을 때 실상으로 다가오는 것은 눈 앞에 펼쳐진 세상이다. 그리고 보이는 실상을 따라 세상으로 향한다. 즉 보기를 원하는 목적이 달성되었기에 예수를 떠나 눈에 보이는 실상인 세상을 향해 가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믿음이다.

 

 

하지만 믿음은 우리가 보는 것이 실상이 아님을 알게 한다. 보이는 모든 것은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허상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믿음은 보이는 것은 허상임을 알게 하고 영원히 존재하시는 예수님을 참된 실상으로 보게 하고 예수를 따르게 한다. 이 믿음이 우리를 구원한다.

 

 

또한 믿음이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면 믿음의 증거를 우리가 나타내야 할 이유가 없다. 믿음의 증거는 십자가에서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신 예수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의 믿음은 믿음의 증거를 자신이 나타내고 보여야 하는 것으로 말한다. 믿음을 받은 것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를 받은 것이기에 결국 믿음이 예수를 따르게 하고 예수님의 증인이 되게 한다는 것을 모른다. 즉 하나님이 주신 믿음은 우리를 실상을 따르게 하고 증거를 증언하게 한다.

 

 

 

바라는 것들의 실상,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로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다. 그래서 믿음은 내가 믿음의 실상이 되고 내가 행하는 것을 믿음의 증거로 삼고자 하는 것을 거부한다. 나의 뜻과 힘으로 하나님을 믿고 섬기고자 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다만 예수님이 행하신 일이 실상과 증거가 되어 우리 안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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