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8.26 11:47

호 10:12

조회 수 12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10:12)

 

인간이 하나님을 위해 창조되었다면 인간의 일을 돕기 위해 함께 하시고 일하시는 하나님으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인간으로 시작해서 인간으로 마치는 인간 중심의 해석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해석에서 하나님은 자기의 뜻은 없이 인간의 뜻을 성취시켜주는 조력자일 뿐이다. 이것이 우상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하나같이 자기 일이 성취되도록 돕는 조력자로서의 하나님을 믿는다. 그리고 하나님의 조력을 받기 위해 믿음이 성실하고 투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믿음이 좋지 않은데도 도와주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관심이 자기에게만 집중되어 있다. 이처럼 인간이 중심에 있고, 믿음 좋은 인간의 일을 도와주는 하나님으로 해석하게 하는 것이 마귀가 주도하는 일이다.

 

 

마귀의 주도 아래 인간의 믿음도 자기 주도적으로 움직인다. 믿음을 자신의 힘으로 주도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수준에 도달하고 싶어 한다. 천국에 들어갈 만한 믿음으로 만들겠다는 것인데 이것은 바벨탑을 쌓았던 인간의 의도와 다르지 않다.

 

 

성경은 이러한 인간을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죽으신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고발한다. 자기 피로 의를 이루신 예수님께 자신이 의를 행함으로 복과 구원에 효력이 되는 믿음을 이루겠다고 하는 인간을 고발하는 것이다.

 

 

따라서 십자가가 중심이 된 성경 해석은 인간에 대해서 고발장의 역할을 하게 된다. 오로지 자기를 위한 믿음의 현실에 몰두하고 살아가는 인간의 허위와 위선을 고발하는 것이다. 이 고발장을 받아 들고 자신이 유지해왔던 믿음이 위선과 허위였음을 깨닫고 애통해하는 자가 성도다.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유지하고 지켜왔던 믿음이 허위였음을 깨닫게 되면 자신이 할 수 있는 믿음의 일이 없음을 알게 된다. 이것이 성도에게만 있는 새로운 안목이다. 성도는 이러한 안목으로 자기를 바라보며 자기를 부인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신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실패자로 드러나는 자신을 자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성도는 하라라는 말씀을 자신이 실천하고 이루어야 하는 명령으로 받지 않는다.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실패자의 자리에서 말씀을 받기 때문이다.

 

 

성경이 자신을 고발한다는 것을 추호도 알지 못한 사람에게는 할 수 있다라는 가능성이 팔팔하게 살아있다. 이들은 성경이 인간을 고발하고 실패자로 드러낸다는 생소한 말에 인간을 무시한다며 화를 낸다. 이들의 귀에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라는 선지자의 외침은 고발장이 아니라 바른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독려하는 것으로 들릴 것이다. 귀가 없어 들어도 알지 못한 이들이 선지자의 외침을 어떻게 조작하여 받아들일지는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인터넷에서 이 본문을 설교한 내용을 검색했는데 묵은 땅을 하나같이 인간의 마음 상태, 또는 믿음 상태로 해석한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세상일로 인한 염려와 걱정으로 가득한 심령, 세상에 대한 탐욕과 죄로 가득한 상태가 묵은 땅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여호와를 찾을 때니 여호와를 찾고 묵은 심령을 기경하여 씨를 뿌리고 열매를 거둘 수 있는 옥토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기경은 갈아엎는다는 뜻인데 묵은 땅의 상태인 심령을 하나님을 찾으며 기도하고 성경을 부지런히 읽고 묵상하여 기경함으로써 좋은 땅의 상태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기경한 심령에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삶으로 말한다면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이다.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문제는 인간이 자신의 마음 상태를 알게 되면 스스로 갈아엎을 수 있으며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둘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웃을 돕고 선을 행하는 것을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공의를 심는 것이라 해도 자기 존재가 확대되고 높아지는 것에 뜻을 둔 인간이 공의를 심는 일에 몰두하지는 않는다. 자기의 모든 것을 팔아 구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말한 것처럼 성경은 인간의 허위와 위선을 고발한다. 자기 이름을 드러내고 높이고 싶어 하는 탐욕으로 믿음을 자기의 열심과 선한 의로 포장한다. 하지만 그 속은 더러움으로 가득하다. 그렇다면 묵은 땅은 드러난 겉은 인간의 의로 포장되어 아름답게 보인다 해도 속은 더러움으로 가득한 상태를 의미한다. 이처럼 인간의 의로 굳게 포장된 땅에 공의를 심는다 해서 공의가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는 일은 없다.

 

 

묵은 땅을 기경하면 겉의 땅은 부서져 사라지고 감추어져 있던 속 땅이 드러난다. 즉 인간의 것으로 포장된 허위의 믿음을 부수고 더러운 속을 드러내는 것이 기경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묵은 땅을 기경하라는 것은 나의 선함으로 믿음을 포장하고 더러움은 감추면서 믿음 있는 척, 깨끗한 척하는 우리의 실상을 고발하는 고발장인 것이다.

 

 

너희는 악을 밭 갈아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었나니 이는 네가 네 길과 네 용사의 많음을 의뢰하였음이라”(10:13)라는 이것이 묵은 땅의 상태인 이스라엘의 실상임과 동시에 우리의 실상이다.

 

 

내가 원하는 나의 길에서 내게 힘 되는 것을 의지하고 힘이 있기를 원하는 욕망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악을 밭 갈아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는 허위와 위선이다. 이것이 자기를 위해 믿는 현대인의 실상이다. 그리고 이것이 여호와를 찾을 때 지금에 해당한다. 성경이 우리를 고발하여 허위와 위선을 드러내는 그때가 여호와를 찾을 지금이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늘 하나님의 말씀이 여호와를 찾을 지금에 해당하는 때로 함께한다.

 

 

여호와를 찾아야 하는 것은 여호와에게서 의가 오기 때문이다. 땅에는 우리를 의롭게 할 것이 없다. 이것을 알지 못하고 스스로 의롭게 되고자 했던 더럽고 악한 위선을 깨닫고 하늘의 의를 구하게 되는 것이 공의를 심는 것이고, 의가 있으므로 긍휼히 여김을 받는 인애를 거두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주도하므로 이뤄진다. 묵은 땅을 기경하라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말씀을 주심으로 말씀을 성취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말씀 안에 있는 성도는 주가 하신 일만 자랑한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15 히 6:4-6 신윤식 2022.02.07 232
114 히 5:13 신윤식 2023.02.11 128
113 히 2:11 신윤식 2023.03.25 126
112 히 11:1 신윤식 2023.07.15 122
» 호 10:12 신윤식 2023.08.26 121
110 행 5:3 신윤식 2022.08.13 132
109 행 1:8 신윤식 2022.12.17 134
108 행 19:2 신윤식 2022.09.10 116
107 행 16:6 신윤식 2022.06.04 114
106 행 16:31 신윤식 2022.02.26 188
105 합 3:2 신윤식 2022.07.03 195
104 학 1:8 신윤식 2022.07.17 116
103 창 6:3 신윤식 2022.02.07 221
102 창 4:7 신윤식 2022.02.07 287
101 창 3:15 신윤식 2024.02.03 65
100 창 3:10 신윤식 2022.02.07 328
99 창 32:28 신윤식 2024.01.27 47
98 창 2:3 신윤식 2022.12.10 129
97 창 19:26 신윤식 2024.03.16 55
96 창 11:9 신윤식 2023.12.09 115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Next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