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1.04 13:29

여호와 이레

조회 수 2573 추천 수 226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성경을 보면 여호와를 여러 별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여호와 닛시' '여호와 샬롬' '여호와 라파' '여호와 삼마' '여호와 이레' 등의 칭호가 그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이 칭호로 위로와 힘을 얻기도 한다.
여러 칭호의 뜻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을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준비 하신다’라는 의미의 ‘여호와 이레’도 다를 바가 없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준비 하신다’는 의미의 이름을 하나님께서 자신들이 가는 인생길에 있을 걸림돌을 제거하시고 설사 어려운 일이 있어도 해결책과 피할 길을 미리 준비하시고 기다리시는 분으로 해석한다.


그러니 여호와 이레라는 칭호가 어찌 힘이 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여호와 이레’를 신자의 앞일을 하나님이 미리 좋은 쪽으로 준비해 놓으시고, 또한 신자가 기도하면 모든 일이 술술 풀릴 수 있도록 해결책을 준비해주시는 하나님으로  해석하고 적용하면 결국 신앙의 큰 갈등에 빠질 수밖에 없다.


즉 “하나님이 다 준비해 주신다고 했는데 왜 내 앞날에는 이런 불행만 일어나는가?”라는 의심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한 여호와 이레의 의미는 그런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은 그런 의미로 ‘여호와 이레’를 말하지 않은 것이다.


창 22:14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고 말한다.


성경에서 말한 여호와 이레는 분명히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이다. “하나님이 미리 다 알아서 준비해 주시리라”고 하지 않았다. 신자가 여호와의 산에 있을 때, 즉 세상에서 벗어나 믿음에 있을 때 여호와 이레를 맛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백세에 얻었다. 더군다나 독자인지라 자기 목숨보다 귀했을 것이다.  이런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바치라는 것은 차라리 자기더러 죽으라는 말씀보다 더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주저하지 않고 순종한다. 아브라함은 분명 여호와의 산에 올라와 있었다. 믿음에 서있었다. 아브라함이 단순히 착하고 의로워서 하나님의 말씀을 무조건 순종한 것이 아니란 것이다.  하나님은 분명히 자신과 독자 이삭에 대한 온전한 계획을 갖고 있기에 이런 일을 명했다는 확신이 있었다는 의미다.


하나님이 내 앞길을 형통케 해놓았을 것이라는 기대가 아니라 내 앞에 어떤 환난이 닥치더라도 그것조차 하나님의 계획이며 또 그 환난 뒤에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또 다른 영광이 드러날 것이라고 온전히 믿었던 것이다.


그 믿음에는 만약 하나님이 이삭을 데려가더라도 또 다른 이삭을 주시던지 아니면 이삭을 부활시켜서라도 자기의 후손을 하늘의 뭇별 같이 많게 해 주시겠다는 약속을 반드시 지키리라는 믿음까지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즉 이삭이 죽는다고 해도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님을 믿은 것이다. 아브라함은 자식을 얻을 수 없는 불가능의 상황조차 극복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체험했다. 또 그 동안의 삶에서 아브라함은 비록 많은 실수가 있었어도 하나님은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하나님의 일을 실패 밖에 없는 자신을 통해 진행시켰음을  철두철미하게 깨달았다.


심지어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신 어린 양이 이삭일 가능성마저도 인정하고 순종했다. 이삭이 죽는다고 해도 그것으로 하나님의 또 다른 영광이 반드시 드러난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희생양이 없음을 이상하게 여기는 이삭에게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창22:8)고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인생의 전부가 하나님의 계획에 참여되고 있음을 확신했다. 하나님의 계획에 참여된 인생이기에 모든 준비는 하나님께서 완벽히 준비해 놓고 이끌어 가심을 믿는 것이다. 비록 그 인생이 자신에게는 여전히 힘들고 괴로운 것이라고 해도 그것조차 여호와 이레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이레’는 여호와의 산에서만, 하나님의 일을 바라보는 믿음의 자리에서만 깨닫고 알 수 있는 것이다.


열심히 기도하였더니 일이 잘 풀리더라는 의미는 여호와 이레에 없다. 여호와 이레는 하나님이 벌리시는 하나님의 일에 참여된 자가 자기 인생을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다루시고 통치하심을 믿고 기뻐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것으로 구원 얻음을 기뻐하는 것이 여호와 이레인 것이다.

(2006.10)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55 이단 132 – 대구교회(이현래 목사) 2 신윤식 2015.05.02 8535
454 간증이란 신윤식 2010.01.04 7562
453 평강이란 신윤식 2010.01.05 4128
452 하나님이 함께하심의 의미 신윤식 2010.01.05 3768
451 평신도란 없다 신윤식 2010.01.04 3681
450 이단 92 (신사도적개혁운동) 신윤식 2014.07.20 3476
449 이단 139 – 아이합(국제 기도의 집, IHOP) 신윤식 2015.07.11 3110
448 이런 결심은 신윤식 2010.01.04 2633
447 이단 74 (만민중앙교회-이재록) 신윤식 2014.03.16 2620
446 하나님께는 후회가 없다 신윤식 2012.10.07 2607
» 여호와 이레 신윤식 2010.01.04 2573
444 (독후감) 심리학에 물든 기독교를 읽고 신윤식 2010.01.04 2555
443 간청하는 기도에 대하여 ① 신윤식 2010.10.11 2528
442 (독후감) '사람에게 영적 리더쉽은 없다'를 읽고 신윤식 2010.01.04 2522
441 하나님은 행한 대로 갚으신다 신윤식 2010.01.05 2507
440 (독후감) 새 하늘과 새 땅은 어디인가 신윤식 2009.12.23 2505
439 이단 111 – 큰믿음교회(변승우 목사) 신윤식 2014.12.08 2490
438 행함이 없는 믿음 신윤식 2010.01.04 2476
437 (영화평) 웰컴 투 동막골 신윤식 2009.12.31 2438
436 (영화평) 밀양을 보고 신윤식 2010.01.04 2417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23 Next
/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