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2.31 08:51

지랄 같은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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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신앙 때문에 행복합니까?’아니면 ‘신앙 때문에 고민합니까?’ 누군가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나는 아마 목사로서 대답해야 할 당연한 것과 목사가 아닌 인간으로서 대답해야 할 나의 현실을 사이에 두고 갈등을 하게 될 것이다. 적어도 그리스도를 전하는 목사라면 ‘신앙 때문에 행복하다’는 말을 하는 것이 목사라는 직책에 걸맞은 것이 아니냐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현실은 신앙 때문에 고민하며 산다고 하는 것이 더 정직한 답이 아닐까 싶다. 신앙이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고민과 갈등의 울타리로 끊임없이 밀어 넣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목사라는 것 때문에 ‘물론 신앙 때문에 행복하죠’라는 말을 한다면 그것은 분명 가식이고 위선일 수밖에 없다. 목사라는 나의 자존심을 생각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럼 나에게 신앙은 무엇인가?


우리나라 시인 중에 ‘구상’이라는 원로시인이 있다. 2년 전쯤 작고하신 분인데 그분의 시를 읽어보면 신앙적인 냄새를 물씬 맡을 수 있다. 그래서 그분을 만나는 사람들이 간혹 ‘선생님은 신앙이 있어서 인생에 동요 없이 행복한 삶을 사시겠다’라고 말하면 그분은 속으로 ‘내 마음이 신앙 때문에 얼마나 지랄 같은지 몰라서 하는 말이지’라고 말한단다.


철이 나면서부터 나이 80이 넘도록 까지 신자이기 때문에 행복한 것보다는 신자이기 때문에 고민했다는 것이 더 정직한 고백일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신앙에 대한 그분의 표현 가운데 ‘신앙 때문에 얼마나 지랄 같은지’라는 말에 많은 공감을 한다. 즉 나도 ‘참 지랄 같은 신앙’이라는 말을 내뱉고 싶을 정도로 신앙은 나를 항상 고민으로 내 몰고 있는 것이다.


참된 신앙이 무엇인지를 몰랐던 예전에는 그냥 주일이면 습관처럼 교회에 나가서 예배드리면 되었고 간혹 교회에 무슨 일이 있을라치면 참여해서 도와주면 되었다. 예배에 빠지지 않고 교회 일에 부지런하다는 그것만으로도 얼마든지 신앙이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았기에 달리 어려울 것도 고민할 것도 없었다.


목사가 되고서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생각하고 원하는 대로 함께 흘러가주면 얼마든지 사람들의 마음에 드는 목사로 존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나의 편안함을 지랄 같은 신앙이 깨뜨려 버린 것이다. 신앙이 자신의 정체를 내 앞에서 드러냄으로서 나의 편안함은 사라지고 고민과 갈등이 시작된 것이다. 사람들이 생각하고 원하는 대로 함께 흘러가는 것이 목사의 일이 아니고 신앙도 아님을 알게 된 것이다.


성경을 공부하면 할수록 참된 신앙의 정체는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고, 세상 돌아가는 일을 알면 알수록 내 마음에서 편안함을 사라지고 대신 갈등과 고민만 더 커지게 된 것이다.


찬송가 470장을 부르며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라는 가사를 대할 때는 진짜 내 영혼은 평안한가? 영혼이 평안한 것과 마음이 평안한 것은 어떻게 다를까? 라는 생각을 자주 하기도 한다.


차라리 참된 신앙에 대해 눈을 감아 버리고 적당히 내 편안함을 좇아 살아갈까? 라는 생각을 해본 적도 있지만, 문제는 신앙이란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더란 것이다.


참된 신앙을 알게 된 것이 내 의지가 아니고 내 생각도 아니었기에 내 마음대로 외면하고 떠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결국 내가 신앙을 가진 것이 아니라 신앙이 나를 가진 것이고 붙들고 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참된 신앙에 머물게 될 수밖에 없고 고민과 갈등이 있으면서도 사람들이 생각하고 원하는 것과는 다른 길에 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신앙으로 말미암아 ‘내가 네 주인이다’고 외치신다. 그리고 나는 그 외침에 꼼짝 못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참 지랄 같은 신앙이다.

(20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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