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2.31 09:10

이중적인 인간

조회 수 2187 추천 수 279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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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모 방송국에서 <현대판 노예 - 할아버지의 짓밟힌 50년>이라는 제목으로 방영한 내용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누구든 그 방송을 봤다면 가해자에 대해 분노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그 노인은 고통의 세월을 살아왔던 것이다.


노인을 취대했던 제작자도 노인에 대한 가해자의 행동을 보는 순간 육두문자가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 사실 방송을 본 사람이라면 가해자에 대해 육두문자보다 더한 욕이 튀어나왔을 것이다.


현 사회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일들이 비일비재 일어난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감동도 하고 분노도 하면서 사건 속에 빠져든다. 그러나 그러한 사건들 속에서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옆으로 걸어가는 게의 모습처럼, 모든 인간은 이중성(二重性)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50년간 한 노인을 괴롭힌 가해자에 대해 분노한다고 해서, 그리고 그 사람과 같은 행위가 나에게 없다고 해서, 자신에게는 그 가해자와 같은 악함이 없을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악의 다스림을 받는 인간의 본성이 얼마나 나약하고 힘이 없는 존재인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얼마나 악하고 이중적인 존재인가를...


이중적이라고 하는 것은, 그 내면은 악으로 다스림을 받으면서 외면은 선으로 위장을 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그 어떤 선으로 자신을 위장한다고 해도 자신의 절대적 목적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악함도 거부하지 않고자 하는 이중성(二重性)의 모습들은 이 사회의 솔직한 자화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이중성을 날마다 자기 자신에게서 경험하면서도 악의 모습들이 보여 질 때면 순진하게도 분노하곤 한다. 그것은 자신도 이중적이지만 자신보다 위선의 도가 지나친 인간에 대해서 분노하며 비난의 화살을 멈추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분노가 자신의 이중성과 악함을 가린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즉 분노의 대상이 나타날 때마다 그보다는 낫다고 할 수 있는 자신의 모습에서 선이 아닌 선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을 도구 삼아 자신을 감싸고 있는 악의 굴레를 깨뜨려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그러한 이중적인 사람들에 대해서 스스로 잣대를 가지고 판단할 수 있을까?
이것을 알지 못하기에 다른 사람들의 악함에 분노하고 또한 교훈적으로 가르치면서도 자신은 죄(罪)를 범하는 모순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인간의 이중적인 존재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그런 현실 속에서의 최선은 무엇일까?


50년간 노인을 괴롭힌 가해자에 대해 분노가 일어날 때 가해자의 그러한 악함이 나에게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람이라면 그럴 수가 없다’는 분노가 일어날 때,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악함이 나로부터 끊임없이 분출된다는 것을 발견해야 한다. 사람에 대한 사람의 도리를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도리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선하게 살 수도 악하게 살 수도 있는 존재가 아니다. 즉 선을 택할 수도 악을 택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사람은 악을 추종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선을 택할 능력 자체가 인간에게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에 대해서도 자신의 잣대를 내밀 수 없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세상에서 보여지는 악한 모습에 대해 분노하라. 그러나 그 분노를 자신의 의로 여기지는 말 일이다. 그러나 할 수 있다면 타인의 악함에 대한 분노의 방향을 자신에게로 돌리라.이것이 아니라면 결국 우리 모두는 자신의 이중적인 모습에 스스로도 속은 채 자신의 잣대로 타인을 판단하며 분노를 분출하는 것이 전부일 뿐이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분노를 만나야 한다. 그 모든 분노를 자신의 몸으로 짊어지신 그 분의 은혜가 깊은 감사로 우리 마음에 남아야 한다. 이것이 최선이다.

(2006.5)
  • 라연재 2010.01.01 16:25
    목사님,
    새해 인사드립니다. 홈페이지가 아름답게 바뀌어서 보기 좋습니다.
    여기 올려주시는 글과 설교들 인해서 은석교회에 감사드립니다.
  • 이혜임 2010.01.02 14:37
    목사님
    새해 인사드립니다. 모처럼 들어왔는데 홈페이지가 산뜻하게 바뀌었네요.
    보내주시는 마데테스와 설교테이프 즉, 생명의 말씀에 늘 늘 감사드립니다.
    그것을 통해, 언제나 깊숙이 숨겨져 있는 나의 이중성과 끊임없이 세상을 향하려는 욕구를 발견하면서
    어쩔 수 없는 나약한 인간임을.. 하나님이 아니면 안됨을 깨닫고 또 깨닫으면서
    그 분의 은혜에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목사님의 말씀과 설교를 통해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도리"를 생각할 수 있기에 감사드리며, 자주 들리겠습니다.
  • 신윤식 2010.01.03 01:18
    라연재 님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함께 진리를 알아가고 복음의 교제가 있기를 바랍니다.

    이혜임 집사님
    못본지가 오래되었네요. 잘 지내시죠.
    귀원에 친구와 함께 한번 놀러간다는게 쉽지가 않네요.
    언제 한번 들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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