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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15장에 등장하는 돌아온 둘째 아들의 이야기, 흔히 ‘돌아온 탕자’라는 제목으로 불리면서 교회 행사에 연극의 주제로도 많이 활용되는 이야기에서 사람들이 초점을 두는 것은 아버지의 재산을 모두 허비하고 돌아온 둘째 아들을 내치지 않고 받아주는 아버지의 사랑이다.


물론 이 이야기에서 아버지의 사랑은 절대로 간과할 수 없는 중심 주제다. 하지만 아버지의 사랑을 얘기하기 전에 또한 묵과할 수 없는 것은 돌아온 둘째 아들의 태도이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께 받은 재산을 모두 허비하고 갈 곳이 없어서 다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는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이었는가를 무시한 채 아버지의 사랑을 생각한다면 결국 자신을 위해 아버지의 사랑을 이용하는 결과만 초래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사랑을 이용하는 못된 모습은 지금의 기독교인들에게서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다.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아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시고 아들을 위해서 일하신다고 말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둘째아들은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로 근근이 배를 채우면서 가장 먼저 자신이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범했음을 깨닫는다.그리고 자신은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수 없는 존재임을 절감한다. 다만 종의 하나로 여김 받아야 할 뿐이라는 생각으로 아버지께 돌아온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를 만나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출 때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눅 15:21)는 말을 한다. 이것이 돌아온 아들의 진심이었다. 아버지의 환대를 받을 자격조차 없는 것이 곧 자신임을 절감한 것이다. 아들이 돌아와서 ‘아버지 그동안 헐벗고 굶주렸는데 좋은 옷과 맛있는 것을 좀 주세요’라는 요구를 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것이 아버지께 범한 자신의 죄를 절감하는 회개의 모습일까? 분명 그동안의 자신의 고생을 아버지의 사랑을 이용해서 해결하려는 것은 회개의 모습이 아니다. 진심으로 자기 죄를 알게 된 아들이라면 아버지께 그 어떤 요구도 할 수가 없다. 다만 악한 자신을 내치지 않으시고 여전히 아들로 받아주시는 것도 과분한 사랑임을 고백하며 감사할 뿐이다.


어느 교회에서든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고 사랑을 말한다. 그런데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범한 자로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아버지의 아들로 일컬음 받는 것도 포기한 채 아버지를 찾아오는 아들에 대해서는 가볍게 여긴다.


물론 ‘돌아온 탕자’라는 제목의 설교를 많이 들을 수 있겠지만 거의 모든 설교들은 탕자가 회개하고 돌아옴으로써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음을 말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 회개해야 한다는 말들이 주를 이룬다. 회개를 했으니 용서 받을 자격도 있고 사랑을 받을 자격도 있다는 것이다.


용서를 받을 자격도 없고 사랑을 받을 자격도 없는 것이 죄 가운데 있는 인간이라는 말은 좀처럼 들을 수가 없다.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관심보다는 사랑을 받는 자신에게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맏아들의 모습이었다.


돌아온 아들을 위해 잔치를 베푸는 아버지께 자신을 위해서는 그런 잔치를 열어준 적이 없다고 하면서 항변을 하는 맏아들이 바로 하나님께 사랑 받는 것에만 관심을 두고 살아가는 기독교인의 실상이다.


아버지께 돌아온 아들의 마음이 되어본다면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자신을 보게 될 것이고, 그렇다면 그는 아버지께서 자신을 아들로 받아주신 것만으로 기뻐하게 된다. 이러한 신자에게 세상의 문제는 염려와 걱정으로 쌓이지 않게 된다.

(200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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