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1.05 18:50

목사 20년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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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로 불리면서 교회의 담임목사라는 자리를 꿰차고 앉아 설교를 하며 살아온 세월이 어느덧 20년째다.

모 방송국의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종사하던 사람들의 놀라운 실력을 보게 된다.

내 기억에 남아 있는 어떤 사람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섬유 원단에서 아주 조그마한 불량을 찾아내는 놀라운 실력을 가졌다. 이 사람은 빠르게 지나가는 전철에 타고 있던 세 사람이 각각 손가락에 들고 있는 동전을 보고 그 액수를 맞출 정도로 신기에 가까운 실력을 가졌다.

그 외에도 호박 깎기의 달인, 면발 가늘게 뽑기의 달인 등등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놀라게 한다.

그렇다면 20년째 목사를 하고 있는 나도 달인이 되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목사가 달인이 된다면 그건 뭘까? 성경 구절을 줄줄이 암송하는 것인가? 아니면 어느 구절이 성경 어디에 있는지 막힘이 없이 알아맞히는 것일까? 그게 아니면 찬송가 몇 장을 말하면 제목을 척척 알아맞히는 것일까?

20년간 성경을 보고 예배를 인도해 왔다면 그 정도의 실력은 갖게 되는 것이 옳을 법도 하다.

그런데 나는 부끄럽게도 그런 실력자가 못된다. 지금도 성경 구절을 찾으려면 인터넷 성경을 이용해서 검색을 한다. 찬송가도 제목과 장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몇 장 안된다.

도대체 20년간 목사로 지내면서 한 것이 뭘까? 뭘 하며 살았기에 그런 달인이 되지 못한 것인가?

‘목사는 성경에 실력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니 복음만 전하면 되지 않습니까?’라고 말해준다면, 나같은 사람에게는 위안이 될 듯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나를 부끄럽게 하는 말이다.

그동안 설교를 했다 하면 십자가를 말하고 복음을 말하면서 예수님을 전한다고는 했지만, 정말 내 자신이 예수님의 편에 서고 나의 모든 마음과 관심이 예수님께 있는 상태에서 설교를 했는지 생각해 보면 나 역시 예수를 모른 자였다는 말이 맞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복음을 잘 아는 척, 믿음이 있는 척하면서 설교를 해왔으니 목사인 나의 정체가 매우 의심스러울 따름이다.

목사로서 20년 세월 돌아보니 남는 것은 설교하면서 밥 얻어먹고 살아온 것 밖에 없다.

20년 목회를 했으면 어느 정도 큰 규모의 교회를 이룰 법도 한데, 겨우 수십 명의 교인이 전부인 것을 보면 목회에 실패한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런 쪽으로는 후회도 아쉬움도 없다. 물론 교회를 향한 욕망을 초월해서가 아니다. 때로는 나도 큰 교회의 목사들이 눈에 들어오기도 하지만 그것은 나의 욕망일 뿐이라는 것이 감지되면서 마음이 다스려짐을 경험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20년의 세월동안 목사로서 뭔가 한 것이 없다. 그냥 예수님을 이용해 밥 먹고 살아온 구차한 인생만 생각난다.

그러한 세월 속에서 그래도 예수님을 전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한 일이 아님을 잘 안다. 나를 목사로 세워 놓으신 그 분이 나에게 관여하신 결과임을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언제까지일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설교하며 밥 얻어먹고 살아가는 인생일거라 생각한다.

목사로 20년을 살아 온 지금 ‘목사란 뭘 하는 사람인가?’스스로에게 물어 본다. ‘목사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라는 참고서 수준의 답도 있겠지만, 사실 목사가 복음에 대해 얼마나 알고 복음을 전하겠는가?

목사는 그냥 자신이 만난 예수님을 이야기해주는 사람이면 되지 않을까?

(200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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