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1.05 18:51

절기와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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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매년 세 번 절기를 지킬 것을 말씀하셨다(출 23:14). 절기를 지키라고 하신 것은, 절기를 지키는 것이 중요해서가 아니라 절기를 지키는 것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잊지 않기를 원하는 것이 있어서다.


만약 절기를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것이었다면 절기를 힘써 지켰던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칭찬을 받았어야 한다. 하지만 사 1:14절을 보면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는 책망을 받는다.


절기를 지키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스라엘이 절기를 지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절기를 하나님께서 싫어하신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절기를 지키라고 하신 뜻에서 벗어났음을 뜻한다.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하신 매년 세 번의 절기는 무교절과 맥추절과 수장절이다. 무교절은 유월절과 연결되어 있는 절기로서 누룩을 넣지 않은 맛없는 빵을 먹는 절기다. 하나님은 이 무교절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구출된 것은 죄 없는 어린양의 희생의 피로 인한 것임을 잊지 않기를 원하신 것이다.


유월절은 이스라엘과 애굽이 어린양의 피가 기준이 되어 죽음에서 살아난 자와 죽은 자로 구분이 됨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자신의 살아있음의 근거를 어린양의 피에 두어야 했던 것이다. 즉 땅의 것이 이스라엘을 살리는 힘이 아님을 유월절을 지킴으로 상기해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무교절을 통해서 이스라엘은 어린양의 희생, 즉 거룩한 존재의 고난에 동참해야 함을 보여준다. 따라서 무교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와 고난을 의미하는 것이고, 신자가 십자가의 피를 믿고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믿음의 길을 간다면 그것이 곧 무교절의 본질에 참여한 것이 된다.


맥추절은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둔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는 밭에 씨를 뿌리고 곡식을 거두어 먹지를 못했다. 씨를 뿌리고 곡식을 거두게 된 것은 약속의 땅에 들어갔을 때 가능했던 것이다.


즉 맥추절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로 약속의 땅에 인도받아 들어왔고, 하나님께서 여전히 자기 백성에게 함께 하시고 그들을 살리고 계신다는 증거물인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맥추절을 통해서 자신들은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살리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존재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했던 것이다.


이 맥추절은 오늘날 신자가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서 그리스도 안으로 부름 받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의 피의 은혜가 살려주는 복된 땅에 참여하고 있음을 믿는 것을 뜻한다.


수장절은 한 해의 마지막 추수를 하면서 하나님께서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하심으로써 모든 수고를 마치고 쉬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초막절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장막 생활했던 대로 장막을 치고 지냄으로써 장막절이라고도 한다. 수장절에 장막을 치고 지냄으로써 풍성한 열매가 자신들의 수고의 결과가 아님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한 것은 원망 밖에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하셨고,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하셨다는 것이다.


이 수장절은 신자가 악한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부름 받았으며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을 자라게 하시고 풍성한 열매가 되게 하셔서 추수 대가 되면 열매를 거두러 오실 것을 의미한다. 신자가 이러한 예수님을 믿는 것이 곧 수장절의 의미다.


이처럼 절기는 그리스도를 지향하고 있다. 즉 절기는 예수님의 오심과 십자가 사건, 그리고 부활과 다시 오심 모두를 보여주고 있다.


예수님이 절기로 오셨기에 예수님을 믿는 신자에게는 지켜야 할 절기는 없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지금 구약의 절기를 그대로 차용하여 지키자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 밖으로 나가는 것일 뿐이다.


주일을 어떤 이름을 붙여 지낸다면 그것은 그저 교회 행사로 보면 된다. 그럼에도 현대 교회가 온갖 명목의 절기를 만들어 내고 헌금을 강조하는 것은 단지 돈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200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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