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1.05 08:33

눈을 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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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이란 신자가 하나님에 대해 눈을 뜨게 됨으로써 세상에 대해서도 눈을 뜨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눈에 보이는 세상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새로운 세상에 대해 눈을 뜨는 것이다. 새로운 세상에 대해 눈을 뜨게 됨으로써 현재 보이는 세상의 헛됨을 알게 되고, 그동안 세상에서 열심히 노력하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살았던 모든 것이 결국 모래성을 쌓는 것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세상에 선포하셨던 첫마디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 4:17)였다. 이것이 이 세상이 처한 참된 현실이다. 이 현실을 볼 수 있었던 세례요한은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마 3:10)는 말을 함으로써 세상이 처한 긴박한 상황을 외쳤던 것이다.


천국이 가까웠다는 것은 기존의 세상이 끝난다는 것을 뜻한다. 세상에는 인간이 선하고 의로운 것으로 규정한 수많은 것이 존재하나 심판을 견디지를 못하고 무너지고 만다. 즉 심판을 피할 의로운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상이 그토록 선한 것으로 추구했던 윤리와 도덕도 심판을 견디지 못한다. 온 세상이 칭송할 정도의 선한 행위도 심판을 견딜 수 없다. 세상이 통째로 심판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이러한 세상의 현실을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인 것으로 표현을 한 것이다.


이것이 세상의 현실일진대 이 현실 속에서 자식을 영재로 만들고, 일류 대학에 보내고, 남들보다 잘먹고 잘입고 잘살기 위해 기를 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런데도 사람들은 온통 눈에 보이는 것만을 현실로 인정한 채 세상에 집착하여 헤어날 줄을 모른다.


이처럼 보이는 세상을 자신의 현실로 여기면서 천국을 소망한다면 그것은 기존의 세상이 부인된 새로운 생명의 세계로 소망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세상에서 자신의 것을 확보하고 나아가 천국까지 확보하고자 하는 탐심의 극치일 뿐이다.


신자는 세상에 대해 눈을 떠야 한다. 즉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만약 눈을 뜨지 못한 소경의 상태로 세상을 본다면 결국 자신의 경험과 상식과 욕망에 익숙한 세상만 보게 될 뿐이다.


이런 사람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는 말씀을 하시고,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마 24:9)는 말씀을 하신 예수님은 생소할 수밖에 없고, 예수님이 하신 모든 행동들 역시 비정상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교회의 현실은 세상에 대해 눈을 뜨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아는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다. 아예 하나님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것이다. ‘교회마다 선교와 구제에 열심이고,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일에도 열심인데 하나님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할 수 있겠지만, 그러한 일은 하나님에 대해 관심이 없이도, 즉 믿음이 없이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신자가 하나님에 대해 눈을 뜨게 되면 자신의 죽음을 맛보게 된다. 사랑하는 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하신 하나님을 보게 됨으로써 예수님이 달리신 그 십자가에서 자신의 죽음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세례 요한처럼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여 있는 세상의 참된 현실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신자에게 중요한 것은 세상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라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헛됨을 직시한 채 날마다 나그네로 사는 것이다. 이러한 신자는 세상의 것에 집착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오히려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헛된 세상의 것을 위해 부르는 것을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으로 여길 뿐이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라는 말을 하기도 하지만, 그 말을 먼저 예수님께 물어야 한다. ‘예수님은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십니까?’라고 묻는다면, 과연 예수님의 답은 무엇일까? 예수님이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셨다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는 말씀보다는 ‘열심히 살면 원하는 것을 얻고 장차 천국에도 들어가게 될 것이다’는 말을 하지 않으셨겠는가? 또한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신다면 심판에 대한 예언은 모순된 것이 아니겠는가?


예수님은 세상을 심히 부정적으로 보신다. 그것을 세상에게 붙들려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보여주셨다. 그러므로 악과 어둠의 세상에서 유일한 희망은 빛으로 오신 예수님뿐이다. 이것이 죽음에 처한 자신의 현실에 대해 눈을 뜬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예수님의 가치이다.


이것을 안다면 교회는 다른 말을 할 겨를이 없다. 오직 죽은 자에게 생명이 되는 예수님만을 외칠 뿐이다. 십자가의 은혜만 외치게 되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에 대해 눈을 뜨고, 세상의 현실을 보게 된 믿음의 증거물인 것이다.


따라서 누구든 예수님의 가치를 세상의 것을 복으로 확보하는 것에 둔다면 그는 사탄의 종이며, 하나님에 대해 눈을 뜨지 못하고, 세상의 현실이 어떠한지 보지 못한 소경일 뿐이다. 그래서 신자는 돈을 힘으로 여기는 세상 현실에서 예수님만을 힘으로 여기는 새로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돈으로 기뻐하는 세상에서 예수님의 은혜로 기뻐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눈을 뜬 신자다.

(20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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