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1.04 20:58

능력없는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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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예배당 옮기는 문제로 신경이 조금 쓰인다. 좋은 장소가 눈에 띄어 전화해 보면 ‘교회는 안됩니다’라며 거절하는 곳이 많다. 또 어떤 곳은 월세를 요구해서 포기하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지금 있는 곳에서 은석교회가 시작하고 17년이 지났으니 한 곳에서 오래도 있었다. 다른 목사라면 교회가 시작된지 17년이 되었으면 몇 배는 부흥을 시키고, 예배당을 짓고도 남았을 법한데 은석교회는 여태껏 교인 수도 그만그만하고 작은 예배당도 하나 마련하지 못했으니 나도 흔히들 말하는 어지간히 능력 없는 목사인가보다.


능력 있는 목사는 교회에 큰 비전을 갖고 목회를 한다는데, 나에게는 그런 비전도 없으니 능력 없는 목사가 맞긴 맞는 모양이다.


아니 가만 생각하니 비전이 있긴 있다. 내 비전은 은석교회 신자들이 하루하루 그리스도의 말씀에 미쳐 가는 것이다. 말씀을 알아가는 재미에 맛을 들이는 것이다. 이게 무슨 비전이라고. 남들이 들으면 웃을 일이다.


하지만 이것도 내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일이니 그냥 바라기만 할 뿐 내 비전이라고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구경하는 구경꾼일 뿐이다. 이게 내 생각이다.


목사가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으니 교인들이 볼 때 얼마나 답답하고 한심스럽겠는가? 목사가 비전을 가지고 열심히 일해도 될까 말까 한데 구경꾼이라니. 교회에 큰 꿈을 갖고 있는 사람이 들으면 ‘저게 목사인가?’ 싶을 정도로 기가 찰 노릇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남들처럼 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물론 교인 수가 많아지는 것이 싫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만약 예수님이 복음을 모르는 교인 100명을 보내줄까? 복음을 아는 하나님의 백성 1명을 보내줄까? 라고 물으신다면 단호하게 복음의 아는 1명의 백성을 원하고 싶다.


복음을 모르고 복음에 관심 없는 교인으로 우굴 거리는 것보다는 복음을 아는 지체들이 모여서 주의 은혜를 나누며 교제하는 천국을 맛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복음을 모르는 100명의 사람을 받아서 복음을 알게 하면 더 좋지 않겠는가? 라는 극히 현실적인 계산이 머릿속에 맴돌 수도 있겠지만, 복음을 모르는 사람에게 복음을 알게 하는 것이 어디 나의 재주로 되는 일이던가? 결국 숫자에 관심을 두니 그런 생각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는 예수님은 목사가 교회 부흥시키지 못했다고 야단치고 예배당 건축 하나 못하고 죽었다고 핀잔주는 분이 절대 아니다.


예수님 앞에 부끄러움은 복음을 복음답게 제대로 증거하지 못한 것이다. 사람 바라보는 것 때문에, 교회 바라보는 것 때문에, 자기 체면과 자기 위신 때문에 실컷 복음을 가리면서 살다가 죽는 것이야 말로 부끄러움이고 예수님으로부터 ‘나는 너를 모른다’는 부인을 받을 일임을 알기에 오직 그 두려움으로만 살아갈 뿐이다.


세상이 나더러 능력 없다고 손가락질 하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내 체면과 이름 때문에 복음을 조금이라도 가리는 것이 있을까 두려울 뿐이다.


그래서 나는 교회를 자랑하는 목사들을 보면 기가죽기보다는 화가 난다. 예수님을 보지 않고 교회만 보고 살아가는 그들로 인해서 교회를 찾는 사람들이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세상이 볼 때는 많은 수의 교인, 큰 예배당이 현실일지 몰라도 적어도 나에게는 복음의 역사함이 현실이다. 복음은 말이 아니라 능력이고, 그 능력이 세상을 지배하고 다스리고 있기에 복음만이 참된 현실인 것이다.


스데반 집사가 말 한마디 잘못하면 죽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전혀 두려움이 없이 십자가를 증거하고, 결국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돌 던진 자들을 용서하여 달라는 기도를 하고 천사의 얼굴로 죽는 것이야 말로 복음의 능력이고 현실이다.


목사로 하여금 눈에 보이는 예배당 크기로 기죽게 하지 않고 다만 십자가 은혜를 증거하는 것으로 기뻐할 수 있게 하는 것이야 말로 복음의 능력이며 현실이다.


목사는 그 능력에 붙들려서 기쁨을 누리면 되는 것인데 목사가 능력이 있어야 할 이유가 뭐겠는가? 그래서 나는 복음이 일하는 그 능력 안에서 춤추며 살고 싶을 뿐이다. 평생 능력 없는 목사로 여김 받고 살다 죽어도 괜찮으니까 복음을 향한 마음만 계속 되기를 원할 뿐이다. 쭉~

(200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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