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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가 설교 할 때 가장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당연히 자신의 설교가 은혜가 되어서 교인들이 새롭게 변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대는 설교자가 젊을수록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의욕적으로 교인들의 변화를 촉구하는 설교를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항상 뻔하다. 설교를 들을 때는 ‘아멘’하면서 마치 설교에 감동을 받은 모습을 보여 주다가도 예배를 마치고 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본래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을 확인하게 되면 목사는 커다란 낙심을 맛보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기대 했다가 기대가 무너지는 과정이 세월의 흐름과 함께 반복되면서 목사는 자연히 인간이 기대를 걸만한 존재가 되지 못함을 깨닫기도 한다. 즉 사람은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을 배우고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목사 자신을 포함한 깨달음이다. 목사도 설교를 하면서 말씀에서 멀어진 채 살아가는 자신을 확인하면 할수록 인간은 변할 수 없는 존재임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신자가 변화되기를 기대하고 설교하지 않는다. 변화를 기대해봐야 실망만 할 것이니까 아예 기대를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가 변화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흔히 교회가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말을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오만한 말이다. 자신들조차 말씀 앞에서 변화되지 못하고 있음을 생각하지 못하고 기독교 특유의 큰소리, 즉 허풍만 늘어놓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세상을 변화시키자’는 말을 하기 전에 내가 다니는 교회조차도 변화가 되지 않고, 심지어는 자기 자신조차도 변화되지 못했음을 생각해 본다면 감히 세상을 변화시키자는 말 따위는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물론 ‘변화’라는 의미를 겉모습의 달라짐에 둔다면 얼마든지 변화를 말할 수 있다. 술 담배를 하던 사람이 술 담배를 끊고, 제사를 지내던 사람이 제사를 지내지 않고, 교회 일에 열심을 내는 이러한 것들이 변화의 의미라면 그런 변화는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그것은 교회에만 있는 변화가 아니라 교회와 나아가서 모든 종교를 초월해서 사람의 반성과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있는 변화다.


진정한 변화는 인간의 본성 자체가 달라지는 것이다. 과연 이러한 변화가 가능하기나 한 것인가? 아무리 천국을 소망한다고 해도 내가 살고 있는 집값이 오르기를 원할 것이고, 사교육이 문제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학원을 두 세 곳 보내서라도 자식만큼은 좋은 대학에 보내고 싶어 한다.


이러한 마음을 과연 바꿀 수가 있는 것인가? 교회에서 제 아무리 훌륭한 설교를 수십 년 들었다고 해도 그 마음들은 버려지지가 않는다. 변화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신자라고 해서 세상 사람과 다르게 사는 것도 없는 것이다. 그런 주제에 세상을 변화시키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자는 말을 서슴없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괜히 내가 낯 뜨거워진다.


지금 비기독교인들이 기독교를 비판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신자라고 해서 다를 것이 하나도 없이 보이는데, 오히려 더 엉망인데 세상을 변화시키자고 하고 있으니 비위가 상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의 기독교는 이런 현실을 눈치 채지를 못하고 있다.


이런 얘긴 이쯤 하고, 자 그러면 아무리 설교를 해도 신자가 변화될 수 없다면 목사가 설교는 왜 해야 하고 신자가 왜 교회에 모여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  목사의 설교가 신자를 변화시키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무슨 목적으로 설교를 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답은 신자가 어떻게 천국에 가게 되는가? 라는 물음에서 얻을 수 있다. 신자가 천국에 가는 것이 자기 변화를 통해서인가?  즉 신자가 변화가 되어야 천국에 가게 되는가?  아니다. 천국은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총을 믿고 감사하는 자가 들어간다. 그래서 믿음은 신자에게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변화되지 못하는 자신을 위해 피 흘리고 죽으신 그리스도의 은총을 바라보게 하고 감사하게 하는 것이다. 그 믿음이 신자를 천국에 있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설교는 신자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총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선포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혹 누구든 변화를 강조한다면 그것은 믿음이 무엇인가를 모른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설교가 무엇인가도 모르는 것이다.


신자는 변화할 수 없다. 하지만 변화는 있다. 즉 존재론적인 변화는 없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를 향해서 마음이 열리는 변화는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하나님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목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총만 설교할 뿐이다.

(200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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