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1.04 21:13

생소한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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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인터넷 검색 창에서 내 이름을 쳐보니 내 이름과 같은 인물들이 여럿 검색되었다. 벤처기업인도 있었고, ‘슬픈 토요일’이라는 노래를 작사, 작곡한 사람도 있었고, 하나로통신회사 사장도 나와 같은 이름이었다. 검색되지 않은 사람도 무척 많을 것이다.


이처럼 이 나라에는 수천만의 사람들이 살다보니 동명이인이 무척 많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름이 같다고 해서 사람도 같은 것은 아니다. 생김새가 다르고, 나이도, 성격도, 사는 곳도, 생각도 다 다르다. 이름은 같지만 그 사람이 내가 될 수 없고, 내가 또한 그 사람이 될 수 없다.


하나님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이라는 이름이 같다고 해서  하나님도 같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이름은 같은 하나님을 부르지만 얼마든지 다른 하나님을 생각하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나 말고 다른 신윤식이란 사람들을 전혀 알지 못한다. 때문에 그 사람들에 대한 프로필은 나에게는 매우 생소하게 다가왔다. 이름은 나에게 매우 익숙하지만 그들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고 만난 적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어떤가? 혹 이름은 아주 귀에 익은데 또 잘 알고 있는데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은 들은 적도 없고 만난 적도 없어서 매우 생소한 분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닌가? 하지만 인간이 알고 있는 하나님을 고집 부릴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누구도 하나님을 만난 적이 없고 하나님을 알 수 없는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이 제공하는 하나님에 대한 프로필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는 오직 성경을 통해서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마가복음 4:11-12절을 보면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한다.


마가가 말한 하나님은 하늘나라의 비밀을 오직 택한 자에게만 주시고 택하지 아니한 외인에게는 아예 듣고도 깨달을 수 없도록 비유로 말씀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을 구원하시는 분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마가의 하나님은 참으로 생소할 수밖에 없다.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이 오직 택한 자만 하늘나라의 비밀을 알게 하시고 택하지 아니한 사람들은 들어도 깨달을 수 없도록 비유로 말씀하신다니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는 또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난감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 분이 바로 성경이 계시하고 있는 참된 하나님이신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름 부르고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은 모두 내려놓고 시작해야 한다. 오직 성경에 계시되고 있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말씀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시는 하나님은 안다고 하면서, 나를 죽이시겠다고 다가오시는 하나님은 이해할 수 없다고 하면서 손사래를 친다면 그것처럼 이기적인 것도 없다.


사랑하는 독생자도 죽이시는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죽어 마땅한 나를 죽이기 위해 다가오시는 하나님을 모르고 이해하지 못한다면 결국 예수님은 죽어 마땅하고, 나는 죽어서는 안되는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인가?


구원은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신 하나님께 있다. 아들을 죽이시면서까지 택한 자를 살리시는 것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하심을 노래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아들을 죽이신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때때로 자기 백성을 깊은 탄식과 절망 속으로 밀어 넣기도 하시는 것이다. 외인은 오히려 평안함 속에 두시면서 말이다.


이러한 하나님이 생소하지 않다면 그는 참으로 기적을 입은 사람일 수밖에 없다. 세상이 말하는 하나님은 세상을 지켜주고 착한 사람에게는 복을 내리고 악한 사람에게는 벌을 내리는 분이다.


그런데 성경에서 만나는 하나님은 전혀 그렇지 않다. 세상을 지켜주는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을 깨뜨리기 위해 기다리시고 계시는 하나님이다. 사람을 위해 존재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해 존재하시는 분이다.


이러한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치지 아니 하고 오히려 믿고 의지하고자 한다면 그야 말로 성령으로 새롭게 된 성도가 아닐 수 없다.

(200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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