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1.04 21:47

십자가와 예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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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서울에서 신학교를 다닐 때 밤에 버스를 타고 고가도로를 지날 때마다 느낀 것은 십자가가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높은 고가도로 위에서 내려다보는 서울의 거리는 오색 불빛으로 화려했는데 그 속에 여기저기 총총히 박혀서 빨간 빛을 토하고 있는 십자가는 정말 많기도 많았다. 그때가 20년도 훨씬 더 되었을 때니까 지금은 더 많은 십자가가 서울의 건물 여기저기서 하늘을 향해 솟아 있을 것이다.


십자가가 많다는 것은 굳이 서울에만 해당된 것은 아닐 것이다. 도시라면 예외 없이 건물 여기저기 세워진 종탑에 달린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물론 교회와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생각하면 당연한 것일 수 있다. 또한 십자가가 많다는 것은 교회가 많다는 것이고, 교회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복음이 활발하게 전파되고 있는 증거라고 생각한다면 오히려 반길 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를 못하니 문제다.


하늘을 향해 솟은 십자가처럼 하늘에 모든 소망을 두고 하늘의 복음을 세상에 전파하는 교회가 아니라 단지 이 땅에 내 교회를 굳건히 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세워진 교회가 즐비하니 결국 십자가가 너무 많다는 느낌으로만 다가올 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십자가가 너무 많다. 내 교회를 향한 집착과 욕망을 벗어 버린 채 홀로 고난과 낮아짐의 길을 가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에 순종할 사람들의 교회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뒤질세라 높은 종탑을 만들고 세운 십자가의 홍수. 정말 말 그대로 십자가의 홍수다. 심지어는 한 건물에 두, 세 교회가 세 들어서 같은 옥상 이곳저곳에 종탑을 만들고 십자가를 세우고 있으니 아예 십자가로 떡칠을 해 버린다.


그런데 그 십자가의 홍수 속에 이제 은석교회도 한몫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17년간 건물을 임대하여 예배를 드리면서 건물주가 종탑을 세울 것을 허락하지 않은 관계로 다른 예배당과는 달리 종탑도 없고 십자가도 없이 지냈는데, 이제 느닷없이 뾰쪽하게 세워진 종탑위에 십자가가 달리고 저녁이면 하얀 불빛을 토해내는 네온 십자가가 달린 건물이 생겼으니 저녁이면 십자가로 떡칠이 되는 광경에 은석교회도 한몫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종탑을 뜯어 버릴 수도 없는 일, 또한 종탑을 뜯어 버린다고 교회되는 것도 아니니 바라건대 은석교회가 교회로서의 바른 모습을 힘써 찾아갔으면 싶다. 건물 위에 솟은 십자가가 은석교회의 성도들의 마음에 세워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건물의 치장은 순간은 깨끗하고 좋아 보이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내면의 모습이다. 교회의 교회됨을 증거하는 것은 건물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의 증거물을 마음에 두고 살아가는 참된 성전된 신자이기 때문이다.


은석교회가 도심의 야경에 자리하고 있는 수많은 십자가의 하나로만 존재한다면 참으로 끔찍한 일이다.
그래서 교회가 해야 할 역할과 십자가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은 채 건물만 바라보고 좋아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예배당은 그냥 예배당으로만 바라봤으면 좋겠다. 예배당이 교회 소유든 남의 건물을 빌린 것이든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는 아무 상관이 없다. 예배의 질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은석교회라는 이름으로 소유된 건물이 있고 없고의 차이일 뿐이다. 이 차이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으면 한다. 예배당 건물이 바뀌었으니 예배드리는 환경은 달라졌을지언정 그 본질은 결코 달라짐이 없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흘리신 피의 은혜는 무엇으로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고 귀한 것이다. 지금의 예배당보다 훨씬 더 크고 호화로운 예배당이 생겼다고 해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는 것만 잊지 말라. 이것을 잊지 말고 좋아하자.


그리고 도심의 하늘을 떡칠하고 있는 십자가의 하나로 전락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조심하자. 과연 은석교회가 교회의 본질을 잊지 않고 바른 길을 가고 있는지 살피면서 종탑의 십자가가 아닌, 내 심령에 세워진 십자가로 말미암아 교회됨이 증거되는 길을 살피면서 그 길만을 힘써 달려갔으면 좋겠다.

(200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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