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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기독교를 가리켜서 사랑의 종교라고 말한다. 이는 분명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러나 기독교가 사랑의 종교라는 말에 대한 이해는 바르게 해야 할 것이다.


대개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라고 말할 때 생각하는 것은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원을 받았으니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웃에게 실천을 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사랑의 종교라는 말을 이런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모르긴 몰라도 다른 종교에서도 할 말은 많을 것이다. 너희만 사랑의 종교냐? 우리도 사랑의 종교다’라고 말이다.


세상에 어떤 종교가 사랑의 실천을 말하지 않겠는가? 분명 성경은 사랑을 말한다. 예수님도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말씀하지 않았는가? 나아가 원수도 사랑해야 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서도 기도하라고 말씀한다. 이러한 말씀 때문에 대부분의 신자들은 사랑을 실천하는 것을 신자의 덕목으로 여긴다. 그리고 사랑의 실천이 때로는 부담과 중압감으로 다가오기도 하는 것이다.


사랑은 사실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의 희생이 없이 안 되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신자들은 사랑을 실천하지 못한다는 것 때문에 죄책감을 갖기도 한다.


물론 사랑을 실천하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마음을 편히 가지라는 뜻이 아니다. 다만 무작정 사랑을 실천하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죄책감에 빠지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사랑의 실천에 대해 가장 크게 오해하고 있는 것은, 사랑을 단지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차원으로만 여기는 것이다.


가령 기름유출로 인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해안 지역을 찾아가서 기름을 제거하는 일을 돕는 것과 같은 것을 사랑의 실천으로 여긴다. 그러나 그런 사랑의 실천 정도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임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신자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한 자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엇인가? 그것은 죄로 인해서 멸망을 받아야 할 자들을 독생자 예수님을 대신 십자가에 죽게 하시고 용서하신 것이다. 멸망의 자리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셔서 아들의 피로써 죄의 값을 치르시고 자기 백성을 건지신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을 말할 때는 나 같은 자를 불쌍히 보신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을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이 참으로 초라하고 악하고 불쌍한 존재임을 자각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으로 이웃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이웃 또한 불쌍하고 안타깝게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에서 용서와 용납이 있게 되는 것이다.


이웃도 십자가 은혜가 반드시 필요한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지만 나는 더욱 더 악한  죄인 중의 괴수임을 철저하게 자각해야만 비로소 이웃의 허물보다는 나의 허물이 크게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랑이다.


물론 말로는 쉽지만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의지력이나 뜻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생각으로는 용서와 사랑을 실천하고 있지만 감성과 이성은 여전히 이웃에 대해 미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성령으로 새롭게 태어난 영혼에서 우러나오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온전히 체험한 신자라야 사랑의 흔적을 조금이나마 증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신자의 영을 다스리시는 성령님이 신자로 하여금 이웃을 사랑하도록 이끌어 가시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여전히 죄의 본성이 남아 성령님의 인도에 제대로 순종하지 못한다. 그래서 신자는 계속해서 기도하며 십자가로 확증된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를 깨달아가기를 기도해야 한다.


끊임없이 십자가 앞에서 자신을 비춰봐야 한다. 사랑하려고 하지 말고 나 같은 자를 불쌍히 여겨주신 하나님의 긍휼을 알기를 소원해야 한다. 그럴 때 이웃을 불쌍하게 여길 수 있게 되고 그들에게 십자가의 은혜를 전하고 나누는 것이야 말로 가장 귀한 선물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사랑이다. 이러한 사랑은 참된 기독교에만 존재할 뿐이다.

(20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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