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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에게 설교란 무엇일까?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다. 수요일, 주일이면 어김없이 설교를 준비하여 강단에 서는 이유가 무엇일까? 과연 무슨 마음으로 무엇을 위해서 설교하는 것인가? 무엇이 솔직한 내 마음일까?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으면서 때로는 내 자신에게 깜짝 놀랄 때도 있다. 왜냐하면 많은 신자들이 아무 생각 없이 주일이기 때문에 교회를 찾는 것처럼 나 역시 주일이기 때문에 예배를 드리기 위해 설교를 준비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똑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면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다고 한다. 나 역시 설교의 매너리즘에 빠진 것이 아닌가를 돌아보면서 목사라는 나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목사에게 설교가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다시금 나의 생각을 정리한다면 ‘설교는 설교자를 위해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설교가 목사의 생계 방편이 되어서는 안되며, 자기 이름을 위한 설교가 되어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목사가 이 점을 분명히 하지 않는다면 결국 자신을 위한 설교에 빠질 수밖에 없다. 언젠가 설교 하면서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나는 지금껏 주례를 선 후, 신랑 신부와 함께 사진을 찍을 때 주례의 모습을 수정해주는 사진사를 본적이 없다. 신랑 신부에게는 턱을 어떻게 하고 머리를 어떻게 하라는 등의 수정을 하면서도 주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 것이다.


처음에는 고칠 것이 없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주례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다. 사진에서 살아야 할 것은 주례가 아니라 신랑 신부이기 때문이다. 사진사의 관심은 오직 신랑 신부에게만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설교가 바로 그렇다. 설교는 하나님의 관심만 선포하면 된다. 그런데 하나님의 관심은 설교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설교자가 설교를 통해 가리킬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다. 이것을 놓치면 설교자는 결국 자신이 살기 위해 설교를 이용하는 길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요즘의 현상은 설교자는 강하게 드러나는 반면 예수 그리스도는 감추어져 버린다. 목사의 설교는 갈수록 세련되어져 가나 예수님은 사라지고 없다. 설교자는 사는데 말씀은 죽어 버린 것이다.


설교는 설교자가 살기 위한 방편이 되어서는 안된다. 설교 잘한다는 소리를 듣기 위한 설교가 되어서도 안된다. 그런데 설교자가 살기 위한 설교를 하려고 하다 보니 설교가 청중들을 기분 좋게 하기 위한 위안잔치로 전락돼 버리는 것이 지금의 현상인 것이다.


설교자가 설교를 통해서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자신이 깨닫고 확신하는 영원한 세계를 가리키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 세계의 주인 되시는 분에 대해서 알려주는 것뿐이다.


설교자가 전해야 할 진리와 복음은 결코 값싼 것이 아니다. 참으로 귀하고 엄청난 선물이기 때문에 설교자는 항상 뒤로 감추어지고 진리와 복음만 고스란히 부각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설교자는 자신을 의식하지 않고 설교에만 집중해야 하는 것이다.


세례 요한은 자신을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고 했다. 세례 요한의 이 외침처럼 설교자는 단지 소리일 뿐이다. 예수님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이다.


소리는 예수님을 외친 것으로 할 일을 다 한 것이고, 손가락은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으로 할 일을 다 한 것이다. 설사 설교로 인해서 돌을 맞는다고 해도 괜찮다. 나는 죽어도 말씀은 살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돌 맞을 말은 피해 버리고, 대신 '은혜 받았습니다‘라는 말로 돌아올 설교를 궁리하다보니 결국 말씀은 죽어도 자신은 살기 위한 설교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설교는 설교자의 이름을 높이기 위한 수단도 방법도 아니다.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 높여져야 한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항상 죽어야 한다. 그래야 말씀이 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현대의 설교를 들으면  짜증만 난다. 그리스도만을 부각시키는 설교가 아니라 온통 청중을 선동하고 강요하고 웃기기 위한 수다로 전락된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말씀에 대한 진지함이 없고 생명에 대한 열망도 없고 청중의 영혼을 생각하는 것도 없이 주일을 지내기 위한 성의 없는 모습만 보이기 때문이다.


목사로서의 권위만 주장하고 내세울 뿐, 말씀의 권위는 잃어버린 지 오래다. 이런 현실에서 또 하나의 설교자인 나의 마음을 다시금 돌아본다.

(20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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