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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고난 주간이 되면 교회는 다양한 행사를 계획하고 성도들의 참여를 독려한다. 어떤 카톨릭 국가에서는 주님의 고난을 실제 몸으로 느끼기 위해 십자가를 매고 채찍을 맞으며 거리를 걸어가기도 한다는데, 한국교회가 고난 주간에 가장 보편적으로 하는 것은 고난주간 동안의 특별 새벽기도회와 금식이 아닐까 싶다.


물론 고난 주간 내내 금식을 하는 것은 드물겠지만, 매일 한 끼 아니면 예수님이 돌아가신 금요일 하루만이라도 금식을 함으로써 고난주간을 지낸다. 물론 이러한 행사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행사에 참여함으로써 자신이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고 있다고 여긴다면 그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결국 교회는 고난주간에 행사를 만들어 교인들을 참여하게 함으로써 마치 자신이 주님의 고난을 깊이 생각하며 따르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고난은 육신의 고통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멜 깁슨이 감독한 영화 <그리스도의 고난 The Passion of the Christ>이 2004년 사순절에 나왔으니 그로부터 벌써 3년이 지났다. 그 영화가 예수님의 고난을 얼마나 사실적으로 그렸는지 모르겠지만, 예수님이 당하신 육체적 고난에 사실적으로 근접했다고 하더라도 그 영화는 예수님의 고난을 단지 육체적인 고통으로만 그려냈다는 점에서 성경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예수님은 육체적 고통을 겪으셨다. 하지만 그것만을 고난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의 고난에서 육체적 고통을 중심에 두고 있기 때문에, 결국 신자도 육체적 고통을 겪는 것을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으로 인식한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때문에 육체적 고통을 겪어야 하는 환난이 없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고난을 단지 생각하고 기념하는 것으로 고난에 동참하는 전부로 여겨버리는 것이다. 또한 금식하고 새벽 기도회에 참여함으로써 예수님의 고난을 따르는 것으로 착각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선 예수님의 육신적 고통만 해도 실제로 예수님이 당하신 고통을 그대로 당하면서, 십자가 처형으로 완전히 죽지 않고는 도무지 알 수 없다. 나아가 육신적 고통보다는 죄악과 사단과 사망의 권세에 눌려 있는 인간의 불쌍한 처지를 심령 깊숙이 통분히 여기며 우시는 주님의 그 눈물에 담겨 있는 사랑과 긍휼은 더더욱 나눌 수 없다.


그러므로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고통 자체에 동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고난당하신 의미와 목
적에 동참해야 한다.


주님의 뜻은 고난은 예수님이 받으시고 대신 죄인을 살리시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이제 신자는 구원의 기쁨만 누리면 된다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예수님이 세상을 사셨던 그 정신을 따라가야 하는 것이다.


한 알의 썩는 밀알의 자리에서 죄악으로 가득 찬 세상에 빛과 소금으로 존재해야 하고, 또 화목케 하는 말씀을 맡은 자로서 땅 끝까지 복음을 증거해야 한다. 이 일로 인해서 세상에서 어떤 손해와 희생과 핍박이 다가온다고 해도 기꺼이 감수하는 것이 예수님의 고난에 실제로 동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자에게 고난은 매일 계속되는 삶일 수밖에 없다.


금식으로 주님의 고난을 기념은 할 수 있다. 또 나름대로 의미는 있을 것이다. 고난주간 동안 새벽기도회에 참석하면서 고난을 묵상하면 나름대로 유익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행사가 해마다 돌아오는 고난주간을 지내기 위한 것이라면 참으로 악한 것일 수밖에 없다. 한 주간의 행사로 마치 자신이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하기 때문이다.


고난주간이 감상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예수님이 당하신 육체적 고통을 생각하며 감상적인 눈물을 흘린다고 해서 믿음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매일 같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의 정신으로 살고자 하느냐는 것이다. 매일 죽은 자로 예수님께 나오느냐는 것이다. 이것이 없이는 설사 40일 금식기도를 했다고 해도 그것은 믿음이 아니며 예수님의 고난과도 상관이 없는 것이다.


고난 주간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묵상하며 세상 것이 나의 힘이 아니라는 의미로 금식은 하되, 한주간의 금식으로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또한 금식을 했다는 것을 자랑하거나 금식을 한 것이 마치 신앙이 있는 것인 양 여기는 것도 버려야 한다.
신자에게 있어서 고난은 세상과 구별된 자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곧 고난이다. 믿음으로 사는 것이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이다. 이것을 한 주간의 고난 행사가 대신할 수 없다.

(20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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