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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 중에 이런 내용이 기억난다. 개구리 한 마리가 추운 겨울을 어떻게 지낼까 걱정하다가 따뜻한 남쪽나라로 가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스스로의 힘으로는 그 먼 곳을 갈 수가 없어서 남쪽으로 가는 기러기에게 부탁을 한다.


그런데 문제는 기러기가 개구리를 어떻게 데려가느냐였다. 한참을 궁리한 개구리가 나뭇가지를 자신과 기러기가 양쪽에서 물고 가면 되겠다는 방법을 생각해 낸다. 기러기는 개구리에게 절대로 말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그 방법대로 개구리는 기러기의 도움으로 하늘을 날게 되었다.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은 개구리가 하늘을 나는 방법이 너무 신기해서 도대체 누가 저런 방법을 생각해 냈는지 참 대단하다며 칭찬을 한다.


그러자 우쭐해진 개구리가 도저히 참지를 못하고 ‘내가 생각했다’라고 소리를 쳤다. 결국 말을 함으로써 물고 있던 나뭇가지를 놓친 개구리는 땅에 떨어져 죽고 말았다는 얘기다.  


재미있는 동화면서도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내용이기도 하다.왜냐하면 우리에게도 이런 개구리와 같은 모습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는 말을 기억하고 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용납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그러면 앞서 얘기한 개구리의 얘기에서 무엇이 개구리의 교만이라고 할 수 있는가? ‘내가 생각했다’라고 말한 그 말이 교만일까? 아니면 자신을 자랑하고 싶은 것이 교만이었을까?


그러면 개구리가 ‘내가 생각했다’는 말을 하고 싶은데도, 그 말을 하면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생각하고 참았으면 교만하지 않고 겸손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도덕이고 윤리일 뿐이다. 도덕과 윤리가 말한 교만과 겸손이 바로 그런 수준이기 때문이다.


잘 한 일이 있어도 ‘내가 했다’고 말하지 않고 숨기면 겸손이 되고, ‘내가 했다’고 자랑하면 교만이 되는 것이 도덕과 윤리인 것이다. 하지만 겸손과 교만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정의됨을 알아야 한다.


개구리의 교만은 자신이 어떻게 날아가고 있는가를 보지 않은 것에 있다. 자신이 궁리해 낸 방법이 자신을 날게 하는 것이 아니라 기러기로 인해서 날고 있음을 보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겸손은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기러기로 인해 날고 있음을 아는 것이고, 교만은 기러기를 보지 않는 것이다. 즉 신자에게 있어서 교만은 나를 붙들어 인도하고 계시는 분을 보지 않는 것이다.


내 생각과 내 방법으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붙들어 살게 하시는 분이 있음을 잊는 것이 교만인 것이다. 그래서 교만을 패망의 선봉이라고 말하는 것도, 교만하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벗어나 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부인하고 원망하고 불평하며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런 우리에게 주님이 먼저 찾아오셔서 사랑으로 용서 해주셨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모든 것이 내 생각에 의한 것도 아니고, 내 의지에 의한 것도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 안에 부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에게 오신 예수님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바라보며 나의 믿음을 보고자 하는 것이 교만인 것이다. 그러므로 겸손은 주님의 은혜와 사랑 앞에서 나의 모습은 너무 악하고 더럽고 추하다는 것을 가슴 깊이 깨닫는 것이다.


나야 말로 죄인 중의 괴수라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면 자연히 ‘내가 생각했다’라는 말은 나오지 않게 된다.
예수님께 붙들려 가고 있는 주제임을 알기에 자신에게는 내세울 것이 아무것도 없을 알게 되는 것이다.


신자가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을 크고 귀하게 본다면 다른 세상의 것에 대해서는 아무 가치를 두지 않게 된다. 그럼 자연히 자랑할 것이 사라지는 것이다. 사람이 무엇인가를 자랑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그것을 가치 있게 보기 때문이다. 결국 자랑했다는 것이 교만이 아니라 사망에 처한 나를 건지신 주님의 은혜와 사랑의 가치를 부인하는 것이 교만인 것이다.


그러므로 신자가 천국을 세상보다 더 귀하게 여긴다면 그 증거는 십자가만을 자랑하는 것으로 나타나기 마련인 것이다. 천국은 오직 십자가로 말미암아 들어가기 때문이다.


신자의 겸손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시작한다. 십자가로 시작되지 않은 겸손은 그냥 도덕일 뿐이다. 겸손한 신자는 다만 십자가만 자랑하고 살아간다.

(20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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