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2207 추천 수 232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목사는 교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이며 또 무엇으로 만족해야 하는 사람일까? 목사는 교회를 찾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해주는 사람이다. 이것이 목사의 위치며 역할이다. 다시 말해서 목사는 중매쟁이라는 것이다.


중매쟁이는 두 남녀를 소개하여 만나도록 도와주는 역할자다. 그러므로 중매쟁이에게 있어서 기쁨은 두 남녀가 서로 마음에 들어서 교제하고 결혼까지 하는 것일 것이다. 이것으로 중매쟁이의 역할은 다 한 것이다.


그런데 만약 중매쟁이가 ‘내가 너희를 중매했으니까 나를 대접해야 한다’고 하면서 중매한 사람들로부터 대우를 받고자 하거나 그들의 생활에 간섭을 한다면 이것은 분명 중매쟁이의 역할을 넘어선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중매쟁이인 목사에게 기쁨은 무엇일까? 목사가 온 힘을 기울이고 성의를 다해서 소개한 예수님을 좋아하고 그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믿음을 목격하는 것에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현대 교회의 대부분의 목사는 중매쟁이로 만족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아니 아예 처음부터 목사의 역할이 중매쟁이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그저 목사라는 직분의 위상만 찾고 누리려고 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서 교회에 발생하는 문제점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대개의 예배당 건물에는 목사의 서재가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그 서재 문 위에는 ‘목양실’이라는 명패가 붙어 있다. 신자를 양으로, 목사를 목자의 위치에 둠으로서 상대적으로 신자는 목사의 가르침과 양육 아래 있음을 은연중 나타내는 것이 아니겠는가?


또한 목사가 거주하는 집을 흔히 ‘목사관’이라고 부른다. 그냥 자택이라고 해도 될 것을 굳이 ‘목사관’이라고 칭하는 이유가 뭐겠는가? 역시 목사를 교인과 다른 위치에 두고자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점에서 현대 교회에서 목사라는 직분은 심하게 왜곡되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솔직히 구약의 선지자와 제사장과 신약의 사도 등의 직분이 의미하는 것이 바로 목사인 것처럼 심하게 왜곡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천주교의 사제론에 사로잡힌 착각일 뿐이다.


고전 3:5절을 보면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고 말한다.


아볼로와 바울을 사역자로 지칭한다고 해서, 오늘날 목사가 곧 사역자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여기서 말하는 사역자란 ‘믿게 한’ 역할을 한 사람을 뜻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예수님을 소개하고 예수님을 믿을 수 있도록 돕는 일은 목사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예수님을 알게 되고 믿게 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사역자란 예수님을 전하고 소개하는 모든 신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다만 목사는 전문적으로 성경을 연구하고 예수님을 소개하는 역할자라는 것이 다를 뿐이다.


목사가 할 일은 신자가 예수님을 알게 되고 예수님과 아름다운 교제를 하도록 돕는 것이지 신자의 신앙생활까지 간섭하고 다스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잘못된 길로 간다면 바른 진리로 그를 붙들어서 예수님을 향한 길로 가도록 도와야 한다. 그러나 신자들의 모임, 즉 교회에서 소위 지도자라는 위치를 차지한 채 교회의 모든 것을 스스로 주관하고자 하는 것은 중매쟁이의 역할을 뛰어 넘은 것일 수밖에 없다.


교회의 모든 일은 신자 스스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목사의 지시를 받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교회의 유익과 복음 증거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활동하도록 도와줘야 하는 것이다.


요 3;30절을 보면 요한은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는 말을 한다. 이것이 목사의 정신이 되어야 할 것이다. 목사는 예수님을 소개하고 예수님을 소개받은 사람들이 예수님만을 높이고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을 보면서, 즉 그리스도가 흥하는 것을 봄으로써 기뻐하면 된다.


목사는 자신의 인기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고자 존재하지도 않는다. 다만 내가 알고 내가 만난 예수님을 소개하고 전하는 것뿐이다. 이것이 목사라는 직분에서 누릴 수 있는 참된 위상이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고 세상이 대접하지 않는 위상이라고 해도 괜찮다. 목사의 위상은 세상이 알아주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목사가 목사의 길을 가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2007.7)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95 마술의 세계 신윤식 2010.01.04 2168
94 나는 싸움꾼이다 신윤식 2010.01.04 2026
93 왜곡된 보도와 왜곡된 설교 신윤식 2010.01.04 2005
92 평신도란 없다 신윤식 2010.01.04 3681
» 목사는 중매쟁이일 뿐이다 신윤식 2010.01.04 2207
90 (영화평) 밀양을 보고 신윤식 2010.01.04 2417
89 잘 믿으려고 하지 말라 신윤식 2010.01.04 2110
88 괴물같은 교회 신윤식 2010.01.04 2042
87 하나님의 공의 신윤식 2010.01.04 2352
86 십자가로 시작하는 겸손 신윤식 2010.01.04 2040
85 예수님의 고난과 고난주간 신윤식 2010.01.04 2194
84 설교자와 설교 신윤식 2010.01.04 2146
83 신자의 정직 신윤식 2010.01.04 1991
82 목사가 죽어야 말씀이 산다 신윤식 2010.01.04 2083
81 목사의 위기 신윤식 2010.01.04 2051
80 옆으로의 사랑 신윤식 2010.01.04 2046
79 향방있는 열심 신윤식 2010.01.04 2212
78 기독교의 위기 신윤식 2010.01.04 2024
77 유시민씨가 본 교회 신윤식 2010.01.04 2269
76 다른 기도 1 신윤식 2010.01.04 2370
Board Pagination Prev 1 ... 14 15 16 17 18 19 20 21 22 ... 23 Next
/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