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1.04 20:49

나는 싸움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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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신학교 다닐 때, 같은 동료들과 심심찮게 많이 했던 것이 성경토론이었다. 좋게 말해서 성경토론이지 사실은 주먹질만 하지 않은 싸움이나 마찬가지인 토론도 많았다. 하지만 그것도 솔직한 심정으로는 한 대 패주고 싶을 만큼 뚜껑 열리게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전도사고 신학생이라는 것 때문에 그러지 못했을 뿐이지 마음속으로는 죽지 않을 만큼 패줬던 사람도 여럿 있었다. 그중에 기억나는 것은 하나님이 남성이냐 아니냐는 문제였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동기들과 함께 모여 얘기를 하는데 한 동기가 ‘하나님이 남자인가 여자인가?’를 묻는다. 그래서 ‘하나님은 영이시니 남자도 여자도 아니다’라고 했더니 하나님은 남자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증거로 제시한 것이 헬라어 문법이다. 헬라어로 하나님을 ‘데오스’라고 하는데 데오스라는 단어가 ‘남성명사’인 것이 하나님은 남자라고 주장하는 근거였던 것이다.


그리고 성경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있으니 하나님이 남자가 아니냐는 것이다. 그래서 데오스란 단어가 남성명사인 것은 하나님이 남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언어의 문법일 뿐이며, 하나님을 아버지로 호칭한 것도 남자여서가 아니라 하나님과 신자의 관계성에 대한 것이라고 설명을 했다.


그런데도 그 동료는 하나님은 남자라는 자기주장을 굽히지를 않고, 나 역시 그의 말은 성경에 무지한 말도 안되는 주장이었기 때문에 내 주장을 굽히지 않음으로써 결국 고성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급기야 내 뚜껑이 열리면서 ‘당신 같은 사람이 무슨 신학을 배운다고’라는 말까지 내 뱉게 되었다.


이 사건은 헬라어 시간에 교수에게 ‘데오스’가 남성명사인 것이 하나님이 남자이기 때문인가?에 대한 나의 질문에 ‘하나님이 남자라는 의미가 아니라 단지 언어학적인 문법일 뿐이다’라는 답을 얻어 냄으로써 ‘거 봐라 앞으로 까불기만 해봐라’며 그 동료를 싹 째려보며 승리라는 쾌감을 맛보게 하는 것으로 종결되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면 참 쓸데없는 싸움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을 두고 남자라고 주장한 그나 하나님이 남자가 아닌 것을 증명하기 위해 뚜껑까지 열리며 열을 올린 나나 결국 자기 지식에서 한발도 물러가지 않으려는 쓸데없는 싸움에 열 올린 것 밖에 더 되는가? 결국 내 것을 주장하기 위한 싸움 밖에 아니었던 셈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싸움에 쉽게 휘말리며 살아간다.


이 싸움은 항상 내 것을 주장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설사 종교적인 신념과 신학과 교리를 두고 싸운다고 해서 그 싸움이 정당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신념도 신학도 교리도 내 것으로 삼고 있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흔히 복음을 지키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을 본다. 예전에는 나도 복음을 지키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산 적이 있었다. 그것이 얼마나 내 자신을 알지 못한 무지한 생각이었는가도 알지 못한 채 복음의 투사가 된 기분으로 내 생각과 다른 사람들에게 반박하고 논쟁하기에 부지런 했던 것이다.


지금도 간혹 그런 기질이 나오기도 하지만, 복음을 지키겠다는 내 생각이 얼마나 건방진 것인가를 알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복음을 지키겠다는 것이야 말로 나의 한계를 보지 않고 있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내가 복음을 훼방하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은 채, 성경에 대한 나의 지식만을 생각하며 마치 복음에 대해서는 오류가 없다는 착각에 빠짐으로써 나 자신을 복음의 투사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상대방을 정죄하는 입장에서 울타리를 쌓아 버리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깨달은 진리의 도를 포기할 수 없는 입장으로 인해서 한계를 그을 수밖에 없는 경우가 수없이 있다. 상대방을 정죄하고 판단하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쌓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포기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나를 그렇게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것이 내게 있는 싸움이다.


내 것을 주장하고 지키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포기할 수 없는 그것을 포기하지 않고 증거하는 것이 나의 싸움이다. 그래서 나는 싸움꾼이다. 그리고 나를 싸움꾼으로 만드신 분은 예수님이다. 세상에 오신 이유가 화평을 위해서가 아니라 검을 주기 위해서라고 말씀한 그 분이 자기 백성을 몽땅 싸움꾼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복음이 있는 곳에서는 비복음과의 갈등과 투쟁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울타리를 쌓아라는 것이 아니다. 비복음과는 타협하고 양보할 수 없는 한계가 있음을 잊지 않고, 오직 복음만을 말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20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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