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1.30 10:24

이단 110 (관상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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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기도 운동의 관심은 그리스도께 있지 않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관심은 하나님과의 합일에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리스도를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한 중보자로 바라보지도 않는다. 단지 하나님과의 합일로 나아가는 수단으로 여길 뿐이다.

이처럼 그리스도를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합일의 근거로 여긴다는 것 자체가 사실 범신론에 속한다고도 할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들은 관상을 통하여 자신의 참 자아를 직관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고,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 그와 합일을 이루는 것이며 그리스도와의 합일이 곧 하나님과의 합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가 용서되고 거룩 된 신분으로 하나님과의 교통이 이루어졌다는 성경적인 기독론은 가능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관상기도운동이 성경적인 기독론에서 벗어나 종교다원주의를 향한 길로 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이들은 자신들의 육체 안에 성령이 계시므로 관상이란 특별한 방식으로 성령과 직접 교통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거기서 신과의 합일을 이루어 갈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찾기에 성령에 대한 성경적 견해로부터도 벗어나 있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관상기도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관심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라는 관계보다는 개인적인 종교적 체험에 욕구의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개인적인 하나님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관상기도는 공동체로서의 교회에 대한 의식에서도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수 없다. 천국은 개인적인 체험으로 들어갈 수 없다. 오직 그리스도의 피의 용서로만 들어갈 수 있기에 천국의 백성은 항상 그리스도를 소망하고 은혜에 감사할 수밖에 없다. 이들을 가리켜서 교회라고 한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개인의 신비적인 체험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관상기도는 개인의 체험에 초점이 맞추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역시 성경적인 교회로부터 크게 벗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관상기도는 기도에 대한 관점이 크게 왜곡되어 있다. 이들은 기도를 기도 속에서 정적과 침묵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뜻을 전달받는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호흡에도 영적인 의미를 두기도 하는데 들숨과 날숨을 통해서 죄가 나가게 하고 신적인 기운이 들어오기도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호흡을 하는 것이 명상에 도움이 된다는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러한 내용 자체가 성경과 상관없음을 알아야 한다. 또한 이들은 침묵을 동반하지 않는 기도는 진정한 의미의 기도가 아니거나 매우 수준 낮은 기도로 간주한다. 하지만 이 역시 성경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침묵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할 수는 있지만 침묵 자체가 기도의 본질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관상기도운동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위험한 신비주의 성격을 현대인의 정신에 맞게 교묘하게 변형하여 종교적 실천 속에 감추고 다가온 영성운동일 뿐이며,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아가는 기쁨으로부터 멀어진 사람들의 종교적 허기를 채우려는 수단이고 욕구의 발로일 뿐이다.

분명한 것은 어떤 식으로든 거룩하신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의 합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이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고 해도 그 내면을 죄 없는 상태로 정화시킬 수 없으며 신적인 정결의 수준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를 구속하신 그리스도의 은혜와 참된 능력을 경험한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합일을 허탄한 것으로 보게 된다. 하나님과의 합일을 통하여 자신이 영광된 존재가 되기보다는 하나님의 은혜를 높이고자 하는 열망만 있기 때문이다. 신자에게 자기 성찰은 자신의 죄인 됨을 뿌리 깊이 자각하는 방향으로 나아감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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