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2.30 12:10

다빈치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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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4월에 출간된 ‘다빈치코드’는 많은 사람들에게 흥미를 유발시키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이 책을 접한 대다수 사람들의 의문은 ‘이 책의 내용 중 어느 정도가 과연 진실일까?’에 있을 것이다.

예수님이 마리아와 결혼했다는 것. 사라라는 딸이 있다는 것, 그리고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의 오른편에 앉은 자가 마리아라는 것, 이 모든 얘기가 기독교인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는 내용들이고, 기독교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는 기독교의 허구를 드러낼 수 있는 좋은 도구로 받아들여질 것이기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몇 달 전에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진 ‘다빈치코드’를 본 적이 있다. 그리고 얼마 전 집사람이 빌려온 ‘다빈치코드’가 집에 있어서 가볍게 훑어보게 되었다. 충분히 사람들의 흥미를 유발시킬 수 있는 내용이었지만, 그 결론은 사람을 맥 빠지게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마 이 책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느낌을 가지지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소설의 결말이 많은 사람의 궁금증을 풀어주지 않고 끝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해 아이를 낳았고 그 후손들이 살아 있으며 그에 대한 기록과 증거가 많았음에도, ‘예수님의 신성(神性)’ 교리를 억지로 성립시키려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와 카톨릭 당국이 결탁하여 모든 기록과 증거를 말살했다며, 남녀 두 주인공이 온갖 사건에 뒤얽히고 생명을 던지는 모험을 하면서 끝까지 그 진실을 밝히려 추적했지만, 결국 저자는 어떤 식으로든 아무런 해답을 주지 않은 채 흐지부지 결론을 맺어 버린 것이다.

저자는 왜 이런 식의 결말을 내어 놓은 것인가?  저자가 결론을 내리지 않으면 결국 결론은 독자의 몫이 된다. 즉 독자 스스로 온갖 상상에 빠져들게 되고 그 상상은 예수에 대한 독자의 기존의 생각을 흔들어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저자는 이것을 의도했는지도 모른다. 만약 저자가 책의 내용을 따라 예수에 대한 결론을 내리게 되면, 즉 ‘예수에 대한 기독교의 주장은 거짓이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면  어쨌든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은 반발을 하게 될 것이다. 자기 종교에 대한 반사적인 방어태세를 가지는 것이다.

그러나 결론을 내리지 않음으로서 ‘예수에 대한 기독교의 주장은 거짓일 수 있다’는 여운을 남기게 되면 결국 독자 스스로 책의 내용에 입각해 ‘그럴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하게 되고, 이 상상으로 인해 예수에 대한 기존의 생각에 흔들림이 올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저자가 의도하는 농간에 이미 걸려든 것이라고 본다. 저자는 소설 전반에 걸쳐 아주 교묘한 덫을 쳐놓고 저자가 원하는 쪽으로 독자들을 유도하려 한 것 같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예수는 탁월하고도 거룩한 선지자였던 것은 분명하지만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단지 한 사람의 평범한 인간이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뜻이다.

저자가 중세부터 오랫동안 호사가 내지 몽상가들이 꾸며내고 전해 내려오는 설화와 전설들을 얼기설기 짜집기해서 보는 이들로 괜히 신비하고 아주 심각한 내용인 양 착각하게끔 교묘하게 농간을 부려 놓은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독자들의 흥미를 불러 일으켜 자신이 의도하는 쪽으로 끌고 가고자 하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이런 면에서 ‘다빈치코드’는 탁월하다고도 볼 수 있다. 어쨌든 많은 사람을 열광하게 하는 책으로 성공했으니 말이다.
이 책은 저자가 단편적 지식으로 짜깁기 하다 보니 도저히 논리가 일관되지 않는다.

그런 허구들을 그것이 사실이기를 바라는 불신자들의 심리를 역이용하여 독자들로 마치 사실인 양 느끼도록 한 것을 보면 분명 글 솜씨는 있다. 그러나 만약 기독교역사에 정통한 분이 읽으면 그 수도 없는 허점투성이들을 정확히 집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성경 외에 예수님에 대해 명확히 밝힐 자료는 세상에 없다. 예수가 구세주인 가장 중요한 이유는 역사적인 자료에 의해서 사실로 증명되기 때문에 아니라 지금도 성령이 역사하여 전적으로 타락했던 한 죄인이 말씀으로 인해 죽었다가 되살아나 그 인생이 완전히 뒤바뀌는 놀라운 기적이 계속 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나간 역사는 그 시대로 되돌아가지 않은 한, ‘이것이 사실이다’는 결론을 내릴 수 없다. 다만 사실일 수 있다는 가정을 가질 뿐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지나간 역사와 함께 파묻힌 분이 아니라 지금도 자기 백성을 모으시는 일을 하고 계시는 현실에 존재하는 분이다.

그러므로 역사적인 사실로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증명하고자 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것이다.

소설은 한마디로 시시했다. 이러한 책에 열광하여 저자의 농간에 놀아난 독자들이 불쌍할 뿐이다.

(2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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