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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가 기도하는 사람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기도하는 것으로 신자와 불신자를 구별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불신자도 기도는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의 기도는 ‘비나이다 비나이다’로 일관될 뿐이다. 절대자의 대답을 듣지 않는 일방적 기도다. 들을 수 있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 않기 때문에 들으려고 하지를 않는다. 자신의 소원이 응답될 때까지 일방적으로 한없이 빌기만 한다.

그들은 오직 자신의 소원을 이루기 위한 일념으로 가만히 앉아 비는 것만으론 부족하다고 여겨 탑을 3천 번 돌기도 하고 일천 배라는 것을 하기도 한다. 발이 부르트고 무릎이 까져 피가 나도록 까지 한다. 오히려 그러한 자국을 보며 자신의 정성의 증표로 여기며 마음 뿌듯해 하기도 한다.

신이 이런 자기 정성에 분명히 감복하여 소원을 이루어 줄 것이라고 스스로 자문자답하기 때문이다. 마치 하루 종일 대답 없는 자기들 신을 부르다 못해 자기 몸을 칼과 창으로 찔러 피를 흘리고 광란의 춤을 추는 갈멜산의 바알 선지자들과 다를 바 하나 없다.

그들에게 신은 오직 인간의 욕심을 채워주는 로보트다. 겉으로는 손을 싹싹 빌고 허리를 굽힐 대로 굽혀 절하지만 속으로는 인간이 신에게 명령하고 신은 인간에게 복종한다. 문제는 오늘날 기독교인의 기도가 이러한 수준에서 벗어나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오늘날 기도의 문제점은 하나님에게 온갖 미사여구로 아뢸 줄은 알아도, 정성을 보이고자 하는 열심은 있어도 하나님이 기도자에게 계시해 주는 말씀을 들을 줄 모른다는 것이다.

야고보 사도가 신자들에게조차 분명하게 경고하고 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 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약4:2,3)

신자가 불신자와 다른 점은 일방적으로 자기 욕심과 계획을 이루려고만 기도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하나님과 대화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자기 계획은 수정되는 것이 당연함을 고백하는 것이 기도다.

그러나 기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도하고 답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답을 가진 자로 기도하는 것이다.

시편 10:1절을 보면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라는 기도를 한다. 우리가 힘든 일이 있을 때 기도하는 심정과 별반 다를 바 없다. 힘든 일이 있음에도 하나님이 전혀 도와주시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 답답한 심정으로 특별 새벽기도회를 하면서 ‘하나님 왜 나를 돌아보지 않습니까?’라며 한숨을 내쉬는 우리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구절이지 않는가?

그러나 이 기도는 “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으니 저희 마음을 예비하시며 귀를 기울여 들
으시고 고아와 압박당하는 자를 위하여 심판하사 세상에 속한 자로 다시는 위협지 못하게 하시리이다”(17,18절)로 맺어진다.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기도를 마치는 것이다.

과연 기도자가 기도하는 도중에 하나님의 도우심, 즉 응답을 체험하여 이런 결론을 맺는 것일까?

하나 더 살펴 본다면 시편 13:1절을 보면 “여호와여 어느 때 까지니이까 나를 영영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언제까지 숨기시겠나이까”라는 기도를 한다.

이 역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우리의 심정과 다를 바 없이 보인다. 그러나 이 기도는 “나는 오직 주의 인자하심을 의뢰하였나오니 내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나를 후대하심이로다”(5,6절)로 끝난다.

도와주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도우심 안에 있는 자로 기도를 맺고 있는 것이다. 이 역시 기도하는 도중에 응답을 체험했기 때문인가?

기도하는 사람들은 기도한 후에 응답을 기다리지만 이렇게 되면 기도하는 자는 도깨비 방망이나 알라딘의 마술 램프를 가지고 있는 자에 불과할 뿐이고 결국 신은 도깨비거나 램프 속의 거인일 뿐이다.

신자의 기도란 사실 내 소원을 말하고 응답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누구나 하는 기도일 뿐이다.
신자의 기도는 이미 답을 가지고 있는 자의 기도다.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아는 자의 기도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자는 어떤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기에 어떤 일에서도 흔들림이 없이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 있는 지혜와 믿음과 소망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신자는 이러한 기도에서 하나님이누구신가를 거듭 확인하고 알아가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하나님다우심을 확인하는 것이 기도다.

기도란 세상이 아무리 험악하고 나를 넘어뜨리려 해도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으로 나는 그의 사랑 받는 자녀의 자리에 다시 든든하게 서게 하는 일이다.

(2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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