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2.31 08:04

교회의 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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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공로를 높이는 자들의 모임인 것만으로 전혀 부족함이 없다. 그래서 교회는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왜 우리가 죄인일 수밖에 없는가를 계속 바라보며 예수님의 피의 은혜를 노래하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옳다고 하면서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고’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한다면 그것은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교회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즉 내가 원하는 교회를 만들고자 하는 욕망이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고’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사실 십자가만으로 족하다고 하는 교회는 목사의 체면을 세워주고, 권세를 얻는 일에 전혀 도움이 되지를 못한다. 큰 교회가 곧 목사에게는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는 수단이 되고, 교단에서도 큰 소리를 칠 수 있는 힘이 되기 때문에 많은 목사들은 십자가만으로 족하다고 하는 교회를 원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를 인간이 만들어 내게 된다.


성경에서 전혀 말씀한 적이 없는, ‘부흥하는 교회’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것 또한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라고 말한다. 이 모든 것에 교인들이 동조하는 것은 교인들의 사고방식 역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교인들 역시 자신이 소속한 교회의 이름이 높아짐으로써 자연 그러한 교회에 소속된 자신의 가치가 높여질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 목사와 교인들 모두가 인간이 원하는 교회를 만들어 내기 위해 매진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교인들은 목사의 말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게 되고, 목사는 교회를 부흥시킴으로써 자신의 입지를 확고하게 굳히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끊임없이 교인들로 하여금 기도와 헌금에 힘쓰면서 교회생활을 잘할 것을 촉구한다. 교인들은 교회생활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교회생활을 잘함으로써 신자다워지고 복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열심 있는 자신의 교회생활을 바라보면서 스스로 신자라는 위선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대로 교회는 그 수가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자랑하고 십자가의 은혜로 감사한다면 그것으로 완벽한 주님의 교회다. 이것은 인간이 어떤 교회를 꿈꾸고 있으며 어떤 교회를 칭송하는가와 상관없다. 어차피 인간은 교회가 무엇인가를 모른다. 교회가 무엇인가를 모르는 세계의 인정을 받고자 하는 것부터가 모순일 뿐이다.


교회의 폐단은 인간이 원하는 교회를 만들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복음을 말하나 실상은 복음에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교회, 사람들에게 내세울 수 있으며 내게 힘이 될 수 있는 교회를 만들고자 하는 것에만 관심을 둘 뿐이다.


그래서 성행하는 것이 ‘교회성장 비결’과 같은 세미나들이다. 소위 내 목회에 도움이 될 만한 모임에 기웃거리는 것이다. 그러한 모임에 참여해서 몇 시간 어떤 방법적인 얘기를 들었다고 해서 교회가 금방 부흥될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으면서도 참석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유는 한편으로 답답한 자신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인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교회가 부흥되지 않아 초조하고 답답한 마음을 그러한 세미나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참여하지만 결국 공허한 마음 그대로 돌아오는 발걸음만 남을 뿐이다. 유명연예인을 초청하여 간증집회를 하기도 하고 총동원전도주일이란 것을 하기도 하고 부흥회를 열어보기도 한다.


물론 목사 역시 한두 번 해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것들로 교회가 크게 부흥될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러한 행사를 부지런히 하고자 하는 것은 교회를 부흥시키지 못한 목사로서의 부족함을 일을 많이 하는 것을 보여서 감추려고 하는 심리적인 요소도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모두는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않는 것으로 인한 폐단이다. 그리스도를 보지 않음으로 스스로에게 속고 있고 철저히 자신을 가리는 위선에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는 것은 그리스도를 보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무엇을 원하시는가를 정직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구주이신 예수님 앞에 큰 교회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직 ‘누가 십자가의 은혜로 감사해하는 예수님의 백성인가?’만을 물으시기 때문이다.

(20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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