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2.31 08:09

목사와 설교

조회 수 2092 추천 수 211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목사는 설교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설교는 목사의 전부가 되어야 한다. 교인들 역시 목사에게 원해야 하는 것은 설교뿐이다. 신자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만난 자로 사는 것인데, 설교가 인간의 언어를 동원하여 청중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설교는 그냥 말이 아니라 인간을 밑바닥까지 파헤쳐 악하고 더러운 것을 낱낱이 끄집어내어 자신의 실상을 여실히 보게 하는 거울이다. 자신의 실상을 보게 됨으로서 하나님 앞에 자신이 누구인가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목사는 설교를 이용하여 자신을 과시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설교는 목사의 능력을 보여주는 수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말의 재주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언어 표현력이나 언변 등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복음은 차이가 없다. 누가 설교한다고 해도 설교의 정신에 충실하고 있다면 그 설교에서 들을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일 뿐이다.


이것은 어떤 사람이 설교 한다고 해도 다르지 않다. 그리스도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복음만을 듣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누구의 설교에서도 그리스도가 있는가를 보게 된다.


말 잘하는 것 따위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소위 인기 있는 설교에도 관심이 없다. 아무리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하고 인기있는 설교자의 설교라 할지라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 영광을 즐거워하는 것이 없다면 설교로 인정을 하지 않게 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설교에서 복음을 들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귀를 족하게 하는 말을 들으려고 한다. 그래서 설교를 말하는 자의 재주로 인식을 하고 말 잘하는 설교자에게로 몰리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교회사학연구원이라는 곳에서 한국교회에서 설교 잘하기로 유명하다고 하는 10명의 설교가의 설교를 연구했다고 한다. 그리고 10번째 연구 대상자인 하용조 목사(온누리 교회)의 설교를 평가한 신학자들은 입을 모아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며 칭찬을 했다고 한다.


어떤 신학자는 하용조라는 이름으로 삼행시를 지어 그를 극찬함으로써 청중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고도 한다. 문제는 극찬의 이유가 그 설교에 예수 그리스도가 스며들어 있고 그리스도만을 높이기 때문이 아니라 청중을 움직이고 감동을 주는 그의 말재주에 있다는 것이다.


설교를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청중으로 하여금 의와 공변됨과 사랑과 은총으로 다가오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것으로 보지 않는 사람은 결국 사람을 위한 설교를 하게 되고 교회를 위한 설교를 하게 된다. 우리의 악함을 드러내시는 예수님이 보이지 않으니 보이는 것은 교회이고 사람일 뿐이기 때문이다.


목사가 설교를 이용하여 자기 욕망을 채우려고 하고, 설교를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는 기회로 여기고 이용한다면 그는 가짜 목사일 뿐이다.


설교를 통하여 예수님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는 것도 가짜들의 특징일 뿐이다. 그런데 목사는 항상 이런 유혹에 흔들린다. 설교로 자신의 능력을 보이고자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는 복음만을 설교함으로써 자신이 복음적인 설교자라는 것을 보이고자 하는 유혹에 있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설교를 듣는 사람은 설교로 설교자를 판단해서는 안된다. 즉 복음적인 설교를 하고 있으니까 복음적인 사람일 것이라는 판단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서 목사는 항상 설교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설교를 못해서 자신의 가치가 하락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설교를 자신의 인기 향상을 위한 수단으로 삼으려는 유혹에 대해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유혹에 빠지지 않는 것은, 설교에 대한 반응을 살피지 않는 것이다. 애당초 청중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싫어하는 사람으로 간주하고 설교해야 한다. 그런데 복음을 기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성령이 역사하신 결과임을 알고 복음을 전하고 그 복음으로 기뻐하는 사람이 있는 것으로 기쁨의 전부를 삼을 때 ‘인기’라는 유혹에 들지 않게 된다.


설교는 나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것임을 잊지 않는 그가 참된 설교자이다

(2005.11)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35 인생의 말년 신윤식 2009.12.30 2203
434 하나님께 영광 신윤식 2009.12.30 2210
433 하늘의 상 신윤식 2009.12.30 2058
432 성경과 현실 신윤식 2009.12.30 2074
431 목사의 역할 신윤식 2009.12.30 1923
430 용서 아래 사는가 신윤식 2009.12.30 1926
429 아버지와 아들 신윤식 2009.12.30 1803
428 기독교란 신윤식 2009.12.30 1858
427 성경은 신윤식 2009.12.30 2074
426 종교와 기독교 신윤식 2009.12.30 2049
425 욕심으로 사는 것 신윤식 2009.12.30 2182
424 사랑 그리고 자유 신윤식 2009.12.30 2013
423 복음과 교회 제도 신윤식 2009.12.30 2023
422 다빈치코드 신윤식 2009.12.30 2048
421 답을 아는 신자의 기도 신윤식 2009.12.30 2266
420 교회의 폐단 신윤식 2009.12.31 2026
419 목사의 폐단 신윤식 2009.12.31 1951
» 목사와 설교 신윤식 2009.12.31 2092
417 자아성취라는 욕망 신윤식 2009.12.31 2244
416 숫자와 교회 신윤식 2009.12.31 2088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23 Next
/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