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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사랑을 말하지 않는 교회는 없다. 이웃 사랑을 교회가 해야 할 본분으로 말하면서 무료점심제공, 소년소녀 가장이나 독거노인 돕기 등 다양한 일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교회가 그런 일들을 통해서 주변 주민으로부터 칭찬을 듣기도 할 것이다.


물론 교회가 이웃 사랑을 실천한다는 명분 아래 어려운 주민들을 도와주는 것은 반대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한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은 있다. 그것은 이웃사랑에 대한 시각이다.


교회가 이웃 사랑을 말할 때 거의 모든 사람들은 교회 안과 교회 밖의 어려운 사람을 사랑의 대상으로 여긴다. 목사가 이웃 사랑을 외칠 때에도 생활이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래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임을 강조하면서 사랑을 실천하는 신자, 교회가 되자고 역설(力說)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크나큰 함정이 있다. 그것은 이웃 사랑의 대상을 생활이 어려운 사람으로 바라보는 시각이다. 이 경우 생활이 넉넉하거나 어려움이 없는 사람은 자연히 이웃 사랑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즉 생활형편이 기준이 되어 생활이 넉넉한 사람은 사랑을 실천할 사람으로, 생활이 어려운 사람은 사랑을 받을 사람으로 구분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웃 사랑은 모두 인간의 윤리와 도덕에 의해 조작되어진 것일 뿐이다. 즉 성경에 없는 이웃 사랑일 뿐이다.


이웃 사랑을 말할 때 가장 많이 예로 드는 것이 눅 10장에 등장하는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다. 예수님은 이 이야기에서 이웃은 고정되어 있는 존재가 아님을 말씀한다. 이웃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인해서 발생되어지는 관계인 것이지  ‘생활이 어려운 사람’으로 고정된 존재가 아니란 것이다.


이웃을 고정된 존재로 보게 되면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고정된 존재를 찾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 된다. 이것이 현대인이 생각하는 이웃사랑이다. 하지만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 만난 사람을 자신이 찾아간 것이 아니라 다만 길에서 만났을 뿐이다.


만약 사마리아 사람이 레위인과 제사장처럼 강도만난 사람을 보고도 그냥 지나쳤다면 그것은 이웃 사랑을 실천하지 않은 것으로 봐야 하는가? 아니다.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눅 10:36)고 물으신 것처럼 아예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 아닌 것이다.


예수님의 물음에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라고 답하고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이웃은 불쌍히 여기고 자비를 베푸는 것으로 그 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어려운 사람을 도와준다고 해서 이웃이 아니라는 것이다. 진정한 이웃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자비를 베푸는 것이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예수님의 마음이다. 저주 아래 있고, 사망에 갇힌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우리를 대신 살리심으로써 자비를 베푸신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참된 이웃이 되어주셨음을 의미한다.


신자에게 예수님의 이 마음이 있다면 모든 사람을 저주에 갇힌 죽은 자로 보게 된다.  물론 자신을 포함해서다. 그렇다면 사망에 갇힌 자에게 진심으로 필요한 것은 생명이 되신 그리스도임을 알게 되고 그리스도의 은혜를 전하고자 하게 된다.  이것이 자비를 베푸는 것이다. 또한 이것이 이웃이 되는 것이고 참된 이웃 사랑이다.


그런데 현대 교회의 목사는 사람을 강도 만난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그래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다. 때문에 자비를 베풀어야 할 대상으로도 보지 않는다. 다만 교회 부흥을 위해서 내 교회에 붙들어 두어야 할 대상으로 볼 뿐이다.


그래서 인간의 죄를 말하고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보다는 교인의 귀에 거슬리지 않으면서 그들의 열심을 부추길 수 있는 말만 하려고 한다. 이처럼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자비를 베풀려는 마음이 없는 목사에게 이웃은 없다.


(200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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