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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때로 무서운 심판주로 우리에게 다가오신다. 이 점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적어도 죄인의 몸을 입으시고 성육신 하신 예수님의 오심은 자기를 낮추시고 낮은 곳으로 임하신 자비의 하나님을 만나는 때이며, 죄인된 우리에게 다가오시고 함께 해주신 임마누엘 하나님에게서 위로와 희망을 발견하는 시간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심으로 우리에게 함께 하신다. 저주와 사망에 갇힌 우리를 구출하시기 위해 사랑하는 독생자로 하여금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신다.


그런데 우리는 자비와 위로와 생명의 하나님이신데도 불구하고 나에게서 멀리 계시는 분으로 느끼기도 한다. 성경을 읽으면서 고난과 죽으심이라는 예수님의 삶에 대한 말씀을 아무리 듣고 생각해도 그 때 뿐일 뿐 교회 문을 나서면 말씀은 내 생각에서 사라지고 하나님도 예수님도 내게서 멀어지고 나와 상관없는 분으로 한 주일을 지내게 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천 년 전에 전혀 가본 적이 없고 성경을 통해서 그런 곳이 있음을 알게 된 베들레헴이라는 곳에서 탄생하셨다는 예수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우리와는 무관한 먼 곳, 먼 옛날의 인물이다.


또한 문화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지금 우리 한국인들과는 전혀 다른 시대에서 다른 삶의 환경에서 살다가 떠나신 분이다. 다시 말해서 역사적 의미로 생각해 본다면 예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그 어떤 연계성을 발견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모든 역사적인 사건은 반복이 아니라 유일회적인 것이고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기 때문에 보편적인 의미를 지닐 수가 없다. 그래서 제아무리 중요한 사건이라고 해도 그것은 진정으로 나에게서 일어난 나의 사건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역사적 사건의 발발 계기와 결과를 통해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교훈으로 삼을 뿐이다.


예수님의 성육신이라는 사건도 이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IMF라는 사건은 내가 살고 있는 나라에서 발생한 재앙이기에 나의 사건이 되지만 (하지만 그것도 내가 IMF로 실직을 당하거나 파산하여 모든 것을 잃고 거리에 나 앉기 전에는 관념적일 경우가 많다.) 먼 옛날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난 예수님의 탄생 사건은 나와는 거리가 먼 무관한 사건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예수님이 아무리 위대한 삶을 사셨다고 해도 결론적으로 내가 예수님처럼 되지 않는 한, 다시 말해서 시대적인 차이는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예수님과 같은 환경에서 살면서 같은 길을 가고 같은 일을 겪지 않는 한 나의 얘기로 다가올 수는 없으며 결국 남의 얘기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과거에 존재했던 위대한 성인으로 본받을 존재는 될지언정 전혀 다른 시대에서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나를 구원해 주는 구주로는 여기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인 것이다.


예수가 위대한 일물로 부각될수록 나는 도저히 예수라는 인물을 따라갈 수 없는 존재로 드러날 뿐이고 작아지고 초라해지며 예수처럼 되지 못한다는 것 때문에 죄의식만 커질 뿐이다. 이것이 예수님을 역사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때 나타나는 신앙적 한계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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