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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많이 들을 수 있는 말 가운데 하나는 ‘예수님을 잘 믿으려고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신자들에게 당연한 말로 들려지고, 그래서 많은 신자들이 하나님을 잘 믿고자 노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결론적으로는 옳지 않다. 오히려 반대로 신자는 잘 믿으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애당초 믿음은 우리의 노력 여부와는 상관없이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음이라는 씨앗을 뿌려놓으시고, 그 씨앗이 잘 자라서 열매가 맺힐 수 있도록 가꾸고 관리할 것을 요구하신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믿음은 완벽하고 완전한 선물로 주어졌기 때문이다. 즉 신자가 힘써서 보충하고 채워야할 부족한 부분이 전혀 없는 믿음인 것이다.


그런데도 이미 완전하고 완벽한 선물인 믿음을 우리가 노력해서 더 나은 믿음으로 가꾸고자 한다면 그것은 믿음에 대한 곡해일 뿐이다. 믿음을 자신의 생산물로 여기고, 자신의 행위를 보면서 자기 믿음에 대해 불만족하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더 노력하여 자신의 행위로써 더 나은 믿음으로 만들어 보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믿음은 인간에 의해서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 능력이다. 완악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 안에 있게 한 능력인 것이다. 만약 그 능력이 완전하지 못하고 부족했다면 우리의 구원 자체도 믿을 수 없는 것이 되지 않겠는가?


믿음에 의해서 이미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고 하늘의 생명을 얻었는데, 믿음이 부족하다며 자신의 노력으로 보태고자 한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는가?


그러면 완벽한 믿음을 선물로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왜 신자에게서 완벽한 믿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은총의 선물인 믿음이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믿음의 능력 안에 있으면서도 그 능력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먼저 믿음을 전혀 허물이 없는 완벽한 행동을 하게 하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이 믿음을 주신 것은 죄를 짓지 않는 완벽한 인간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사망에서 구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은혜를 의지하는 새로운 인간으로 창조하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완벽한 믿음은 죄 없는 완벽한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은혜만을 의지하는 것이다.


이처럼 자기 행위에 의의 의미를 두면서 그것을 복의 통로로 삼고자 하는 완악한 우리를 깨뜨리고 그리스도만을 소망하게 하는 것이 믿음의 능력인데, 어떻게 그 믿음을 인간의 힘과 노력을 동원하여 더 낫게 발전시킬 수가 있다는 것인가? 이런 생각이야 말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자신의 노력과 힘을 보태고자 하는 발상일 수밖에 없다.


인간은 믿음의 결과에만 동참하면서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할 뿐, 믿음에 뭔가 보태야할 것이 없는 것이다.


롬 9:16절을 보면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 말씀한다. 즉 하나님은 잘 믿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을 보시고 구원하신 것이 아니란 것이다.  


물론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로 되어짐을 믿는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꼭 추가로 주장하는 것은 긍휼을 받았으니까 그 긍휼에 보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긍휼에 보답하기 위해서 잘 믿어야 한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에 대해 무지한 생각일 뿐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는 것을 기뻐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엡 1:6). 결국 교회가 ‘잘 믿기 위해서 힘쓰고 노력하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자를 생각하지 않고, 교회의 발전에 도움이 되고 유익이 되는 교인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신자는 하나님을 잘 믿어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믿음 안에 있는 자이다. 다른 말로 하면 신자가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인 믿음의 능력이 신자를 붙들고 있다는 것이다. 영원한 약속에 일방적으로 불려 온 것이다.


믿음은 더 강하게 잘 믿으려고 노력하는 일이 결코 아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약속에 이미 들어와 있으며, 이 약속은 결코 취소될 수 없음을 알고 누리는 것이 믿음이다. 그러므로 아직도 스스로 노력해서 잘 믿고자 한다면 아직 십자가의 은혜를 충분히 깨닫지 못했다는 증거다.


잘 믿으려고 하지 말고, 믿음에 의해 신자가 이끌려 들어온 세계가 어떤 세계인가를 알기를 힘써야 한다.

(20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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