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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과  하나님의 징벌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창 3:24)

● 지난 내용
처음의 인간은 선악을 알지 못한 자로 지음 받았습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은 후 선악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죄를 범한 후의 달라진 인간입니다. 선악을 알게 된 인간은 무엇이 나에게 좋은 일이고 나쁜 일인가로 구분을 하게 됩니다. 나에게 좋은 일은 선한 것이고 나쁜 일은 악한 것이라는 구분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인간이 선악을 아는 것을 왜 원하지 않았을까요? 예를 들어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불구자로 태어나게 했습니다. 불구자가 만약 선악을 모른 상태라면 자신의 처지를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살려고 합니다. 그런데 선악을 아는 상태이기 때문에 불구인 자신의 상태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고 부끄러워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고 불행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즉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모습에 만족이 없고 감사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인간을 싫어하신 것입니다.



● 오늘의 내용
인간이 선악과 하나 따먹은 것이 우리가 볼 때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질 수 있습니다. 단지 과일 하나 따먹은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선악과를 먹은 것은 여러분이 이웃집의 사과나무에서 사과 하나를 따먹은 것과 같은 단순한 사건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간 자체가 달라졌고, 인간의 달라짐으로 인해서 세상에는 전쟁과 다툼과 온갖 악한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3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을 부르십니다. 그러자 아담은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10절)고 대답합니다. 다시 하나님은 아담에게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11절)고 묻습니다. 그러자 아담은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12절)고 대답합니다. 아담의 대답에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떠오릅니까?


죄를 범하기 전에 아담은 하와를 보고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23,24절)는 말을 합니다. 즉 하와를 자신과 똑같은 한 몸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그런데 선악을 알고 난 후 아담은 자신의 죄를 피하고자 모든 책임을 하와에게로 전가합니다. 한 몸의 관계가 사라진 것입니다.


그리고 하와는 또 뭐라고 합니까? 하나님께서 하와에게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라고 물으시자 하와는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고 합니다. 하와 역시 뱀에게 책임을 미룬 것입니다. 이렇게 선악과를 먹은 인간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하는 인간으로 변한 것입니다.


이러한 달라진 인간의 모습을 우리에게서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가령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이들도 말썽을 부린 후에 엄마가 ‘네가 그랬지’라고 하면 고개를 흔듭니다. 그리고 개가 보이면 개가 그랬다고 하고, 누나가 보이면 누나가 그랬다고 하기 일쑤입니다. 이런 것들이 곧 이 세상이 에덴동산의 죄 속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타인이 어떤 피해를 입는다고 해도 상관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악과를 먹은 결과이므로 단지 열매하나 먹은 것으로 그친 사건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이 죄로 물들어 버린 엄청난 사건입니다.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가 멀어진 것처럼 인간과 인간의 관계도 멀어진 것입니다. 사단이 하와를 유혹한 의도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와 한 사람을 죄짓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멀어지게 하고, 인간과 인간 사이를 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를 범한 인간에게 벌을 내리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징벌은 무엇일까요? 창세기 3:16-19절에서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고 말씀한 것이 하나님의 징벌의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징벌로 인해서 앞으로의 인간의 운명은 결정되어 버렸습니다. 아침에는 해가 뜨고 저녁에는 달이 뜨는 자연의 법칙을 인간이 변경할 수 없는 것처럼,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절대 변경할 수 없는 운명으로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너무 힘드니 취소해 달라고’아무리 요청해도 안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죄를 범한 것은 마치 쏟아진 물을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것처럼 원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여자에게는 자식을 낳는 수고와 남편을 섬기는 벌을 내리시고 남자에게는 땀을 흘리고 수고를 하여야 먹고 살 수 있는 벌을 내리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농사를 지어도 땅이 순순히 소산을 내어 주지를 않습니다. 잡초를 제거해야 하고 땅에 거름을 주어야 하고 농약도 쳐야 합니다. 많은 수고를 하여야 소산을 먹을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면 고생을 하지 않고 살 수 있는가? 라는 생각은 헛된 생각입니다. 고생과 수고를 하여야 살 수 있는 것이 죄를 범한 인간의 운명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진 결과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이러한 인간의 운명에 대해 전혀 깨닫지를 못합니다.


다만 환경과 형편이 좋지 않아서 고생하고 수고하며 사는 것으로 여기고 신세한탄을 할 뿐입니다. 신세한탄만 하면서 하나님은 전혀 생각지를 않습니다. 따라서 인생의 수고와 고생을 통해서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작정한 자라는 증거이기 때문에 그것으로 귀한 복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징벌에는 남자 여자 모두 흙으로 돌아가라는 것이 있습니다. 즉 육신이 모두 죽는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인간이 피할 수도 없고 바꿀 수도 없는 하나님이 정하신 불변의 원칙입니다. 이 원칙에 의해서 세상의 모든 사람은 죽습니다. 세상에서 제일가는 부자라고 해도 죽어야 합니다. 대통령도 죽어야 합니다. 착한 사람도 나쁜 사람도 죽습니다. 돈과 권세로 또는 선한 일로 죽음을 피하지 못합니다. 즉 죽음 앞에서는 모든 인간이 공평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은 단지 흙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끝나게 하지 않았습니다. 3:24절을 보면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 내시고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생명나무를 감추어 버린 것입니다. 즉 영생을 얻지 못하게 하시고, 지옥으로 가게 하신 것입니다. 결국 인간은 육체가 죽는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지옥에서 영원한 고통을 받아야 하는 운명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무서운 징벌입니다.


이렇듯 죄를 범한 인간에게 하나님은 무서운 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다른 뜻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출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죄를 범한 인간이 자신의 죄를 해결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죄를 해결할 분을 하나님이 보내신 것입니다. 그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징벌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세상은 이것을 알지 못하고 세상에서 잘사는 것을 최고로 여깁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아무리 잘 산다고 해도 70, 80세면 죽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는 영원한 고통의 세계로 들어가 빠져 나오지 못합니다. 그런데 세상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영원한 고통의 세계를 알지 못합니다.


전도서 7:2절에 보면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초상집에는 슬픔이 있고 잔칫집에는 기쁨이 있습니다. 이왕이면 슬픔의 집보다 기쁨의 집에 참여해서 신나게 노는 것이 더 좋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초상집에 가는 것이 더 나을까요? 초상집에서는 하나님의 징벌 아래 있는 인간의 운명을 볼 수 있고, 우리 자신의 마지막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운명이 어떠한가를 보게 되면 세상의 것에 희망을 두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에 있는 어떤 것도 우리 자신을 영원한 고통에서 벗어나게 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것을 소원하기보다는 나를 고통의 세계에서 빠져 나오게 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관심을 두게 됩니다. 그래서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를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외에는 누구도 우리의 구세주가 되지 못합니다. 모든 사람은 죄로 인해 죽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도 죄로 인해 죽었습니다. 그래서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 생명이고 소망이 되십니다.

(20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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