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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12:1절의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는 말씀부터 제대로 이해해야 하는데요, 몸을 산 제물로 드린다는 것은 내 몸은 내 것이 아니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믿음 안에서 은혜가 왕 노릇하고 있는 신자는 자신을 위해 사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을 살리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 즉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도구로 존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영적예배라는 것은 추상적인 의미가 아닌 것이 됩니다.

사람은 자기 몸을 가지고 내 몸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직 자기를 위해 열심히 살 뿐입니다. 하지만 신자는 말한 대로 자신을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도구로 바라봅니다. 이러한 시각은 인간에게서 창출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에 의해서 가능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면서 살아가는 것이 영적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봉사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사랑에는 차별이 없다는 것입니다. 나와 너가 다르다는 의식이 없습니다. 모두가 동일하게 사망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긍휼로 구원 받았음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차별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3절의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는 말씀도 믿음은 우리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믿음의 차이를 가지고 차별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이 있고, 그 분량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내게 주어진 분량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믿음을 저울질하고 차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이라는 것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벗어난 생각을 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벗어날 때 나오는 것이 곧 자신에게 있는 것을 자신이 만든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자기에게 있는 것을 가지고 다른 이를 판단하고 차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2:4-5절에서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지만 모두가 한 몸에 속한 지체라는 것입니다.

받은 은사가 다르고 하는 일 또한 같을 수가 없지만 각기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목사는 설교하고, 장로는 형제들을 살피고, 집사들도 맡은 일을 하면서 서로를 유익하게 하는 일로 섬기고 봉사할 뿐이지 누구의 일이 더 낫다고 말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목사가 설교하는 것을 다른 신자가 하는 일보다 수준이 높다거나, 더 거룩한 일이라고 하는 것은 이미 차별이 존재하기 때문에 사랑이 아니고 봉사와 섬김도 아닙니다. 단지 목사라는 지위를 이용해서 자신을 높이는 교만이고 탐욕일 뿐입니다. 6절부터의 말씀은 이런 의미로 이해하시면 될 것입니다.  

13장에서 언급하는 세상 권세에 대한 말은, 눈에 보이는 세상 권세를 통해서 하늘의 권세가 있음을 보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권세자도 하나님이 세우셨습니다. 따라서 권세자들이 법으로 악에게 보응하면서 질서를 세우는 것도, 하나님께서 권세를 세워서 세상을 다스리게 하심으로써 세상의 악에 대해 반드시 보응하실 때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 권세자들은 자신 위에 또 다른 권세자가 있음을 모릅니다. 자신의 권세가 위로부터 주어진 것임을 모르기 때문에 권세를 힘으로 간주하고 약자를 괴롭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 권세자 또한 하나님의 심판에서 제외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신자는 권세자를 보면서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심을 실감해야 하고, 악에 대해 반드시 보응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 신자에게 주어진 사랑은 더욱 확고해집니다. 악에 대해 반드시 보응하시는 하나님 되심을 생각할 때, 십자가의 사랑은 더욱 크고 강한 능력으로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결국 권세자에 대한 얘기는 신자를 하나님의 사랑에 더욱 굳게 세워두기 위한 내용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다시 이웃 사랑 얘기가 나오는 것은, 믿지 않는 자에 대한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율법적인 것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사랑에는 차별이 나오지 않음과 동시에 판단 또한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을 율법이 아닌 사랑으로 대하셨습니다. 율법으로 대하셨다면 우리는 법에 의해서 사망에 처해져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덮으시는 사랑으로 대하셨고 용서하셨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하나님이 사랑을 받은 자 답게 이웃의 죄에 대해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해야 합니다. 그래서 9절에서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고 말합니다.

간음, 살인, 도둑질, 탐냄, 이러한 계명들은 이웃을 판단하고 정죄하기 위한 용도가 아니라, 내가 바로 간음한 자요, 살인하고 도둑질하고 탐심을 가지고 사는 죄인임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즉 우리 자신이 하나님이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죄인들인데, 하나님의 사랑으로 용서를 받은 것입니다. 즉 우리가 무엇으로 사는가를 보게 하는 것이 율법이기 때문에, 신자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율법을 지키는 것이 됩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는다는 것도, 이웃의 죄를 판단하고 정죄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때문에 사랑을 율법의 완성이라고 말합니다. 율법이 증거하고자 하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랑안에서는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14:1)는 말씀이 열매로 나타나게 됩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는 자신의 행함을 보면서 자기 믿음을 평가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타인에게 믿음이 좋다는 말을 들을만한 실천거리를 생각하게 됩니다. 음식을 가리고 날을 가리는 것도 그에 해당이 됩니다. 음식과 날을 구분하는 것으로 자기 믿음을 좋게 만들려고 하는 그들이 믿음이 연약한 자들입니다.

반면에 음식과 날을 초월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음식도 날도 모두가 동일하다는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지식을 앞세워서 날과 음식을 구분하는 사람들을 믿음이 없고, 성경을 모른다며 비판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타인만 바라볼 뿐 자신을 보지 않는 것입니다.

신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안다면, 사랑 앞에서 자신의 모든 것은 부인되어야 합니다. 자기의 의는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 사랑을 아는 것입니다. 믿음 또한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지 자신의 힘이 아님을 압니다. 그렇다면 음식과 날을 구분하지 않는 것도 성령의 지혜로 말미암아 깨달은 은혜인 것이지 자신의 지식일 수가 없음을 알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은 이웃의 믿음을 함부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이웃을 비판하는 것은 곧 내가 이웃을 심판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심판의 권세는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누가 누구를 비판할 수가 없고 믿음이 연약한 자라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이며 믿음이 강한 것입니다.

물론 믿음이 연약한 자에게 권면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성경을 알고 너는 성경을 모른다’는 차원에서 권면은 권면이 아니라, 자기 지식을 과시하는 것 밖에 안됩니다. 뭔가 차별을 두고 우월적인 자리에서 나보다 모르는 사람을 가르치려는 자세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자신을 보지 않는 것이고 사랑이 아닌 것입니다. 사랑은 믿음이 연약한 자로 하여금 함께 그리스도를 바라보도록 힘쓰는 것입니다(14:8).

15장에서 말하는 것은 사랑에서 나오는 또 다른 열매입니다. 그것은 수고와 희생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에서는 차별이 나오지 않고(13장) 비판이 나오지 않고(14장) 그리고 수고와 희생이 있다(15장)는 흐름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1절의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는 말씀이 수고와 희생이 있는 사랑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른 이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는 것이야 말로 수고와 희생이 있는 길을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길입니다.

예수님 역시 우리의 모든 약점을 담당하셨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는 길을 가심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가신 수고와 희생의 길이었고, 그 길을 사도들이 갔습니다. 그리고 이제 부름 받은 신자가 사도의 길에 순종되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기쁨을 위해 행동합니다. 다른 이의 약점은 담당해야 할 자신의 몫으로 여기는 것이 그 약점을 이용해서 자신의 강함을 나타내고 더 높은 자리에 차지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사랑이 없는 세상의 현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오히려 그러한 자들을 담당하는 수고와 희생으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사랑은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함으로써 그 흔적이나마 드러나게 일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그리스도를 바라볼 수밖에 없고 말씀을 통해서 주의 사랑을 깨닫기를 소원해야 할 것입니다. 말씀으로 인해 사랑을 알게 되고, 은혜가 파도처럼 밀려올 때 사랑은 신자를 통해 그 열매를 맺게 됩니다. 신자는 그 열매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실감하면서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 구절을 자세하게 해석하지 못했습니다. 제 로마서 강해를 참고 하시면 좀 더 이해하기 쉬우실 것입니다.)
  • 정미경 2011.01.13 19:20
    맨 아래에서부터 8째줄 끝부분에 '아니라'가 빠졌네요.
    <다른이의 약점은 담당해야 할 자신의 몫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그 약점을.......>
  • 빚진자 2011.01.14 00:59
    역시 우리 목사님,
    최고이십니다.
    성경이 이렇게 일관성 있게 읽어지네요.
    감사합니다. 목사님
    건강하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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