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2017.07.29 16:41

(13강) 은밀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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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7.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8.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9.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10.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설교>

하나님을 아는 것을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을 인식론적으로 접근하여 생각하는 것입니다. 인식론(認識論)은 철학의 한 분야로 분류되는 학문입니다. 세상의 지식적인 문제에 대해 인간이 생각하고 분별하며 판단하여 아는 것을 뜻합니다. 이러한 인식론으로 ‘하나님은 누구신가’를 생각하게 되면 결국 ‘인간은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접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이 하나님을 아는 문제에 있어서 전제되어야 할 분명한 사실은 죄의 현실에 존재하는 인간은 하나님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인간에 의해 인식되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하나님을 인식 한다’는 말을 별로 달갑지 않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인식하지 않고 어떻게 하나님을 안다고 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고 할 수 있는가? 라는 의문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한 채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면 그것은 맹목적인 믿음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인식하십니까? 사실 ‘인간이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현대의 기독교인은 하나님을 인식하는 문제 자체에 관심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인식하든 못하든, 어떻게 인식하든 자신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해 볼 필요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 믿음이 여러분께 어떤 기쁨과 감사로 다가오는가? 입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다 해도 이유 없이 기쁨과 감사가 있게 되는 것은 없습니다. 기쁨과 감사는 어떤 일에 대한 신자의 반응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신자에게 믿음에 의한 기쁨과 감사가 있다면 그것은 예수그리스도로 인한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알게 되는 것을 두고 ‘하나님을 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인간의 생각과 지식에 의해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신자가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은 말씀드린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게 되고 그것을 믿음으로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하나님을 인식한다는 말보다는 ‘하나님을 인지하게 되었다’라고 말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입니다. 인지한다는 것은 어떤 사실을 인정하게 됨으로써 그것을 알게 되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하나님을 인식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두고 이것이 맞는가 틀린가를 판단하여 맞다고 생각되는 하나님을 믿는 것을 의미한다면 하나님을 인지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알게 되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인정하게 되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하나님을 인식한다는 것보다는 인지하게 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9절을 보면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눈으로 볼 수 없을뿐더러 하나님의 말씀을 귀로 들을 수도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도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들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을 인간이 인식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마음으로도 생각하지 못한다면 인간이 마음에 두고 생각하는 하나님은 모두 하나님이 아닌 가짜라는 뜻이 됩니다. 하나님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비 하신 것에 대해서도 동일합니다.

 

 

이것이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7,8절)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은밀한 가운데 감추어 두셨다는 것은 인간이 알 수 없음을 뜻합니다. 인간의 지혜, 능력으로 알 수 없고 마음으로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10절의 말씀처럼 오직 성령으로만 알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은밀하게 감추어 놓으신 것을 성령으로 보이신 것입니다.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는 그리스도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따라서 감추어진 것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어떻게 어디에 감추신 것입니다. 어떻게 감추셨기에 누구도 볼 수 없고 들을 수도 없고 마음으로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일까요?

 

 

만약 그리스도를 감추어 두신 곳이 세상이라면 인간은 자기의 지혜와 생각으로 능히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은밀한 가운데 감추어진 것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아예 인간에 의해 발견되도록 노골적으로 드러내신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예수를 잘 믿으면 천국 간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예수를 이용하여 구원 받고자 하는 욕망의 마음에 의한 생각입니다. 예수가 세상의 평화를 위해 오셨다고 말하는 것이나 예수를 믿으면 복을 받고 마음이 평안해진다고 하는 그 중심에도 자기를 위한 욕망이 존재합니다. 이것이 세상이 마음에 두고 생각하고 추구하는 예수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그처럼 인간을 위한 목적으로 세상에 오신 것이라면 예수님은 은밀하게 감추어진 하나님의 지혜라고 할 수 없습니다. 누구나 마음에 두고 생각하고 원하는 예수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인간이 원하는 그 어떤 것과도 무관한 분으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도무지 알 수 없고 생각할 수도 없는 분으로 오셨습니다. 예수가 누구시며 하시는 일이 어떤 것인가를 알려줘도 납득할 수 없고 믿을 수도 없기에 결국 거부하게 되는 분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라고 말하고 감추어졌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과연 예수님이 어떻게 감추어졌기에 누구도 인식할 수 없고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일까요? 그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십자가라는 은밀한 가운데 감추시고 성령으로 우리에게 보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을 받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섣불리 ‘나는 십자가를 알고 믿으니까 하나님이 은밀히 감추신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고 성령을 받았다’고 단정 짓지 않아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십자가를 알고 믿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바른 이해이기 때문입니다.

 

 

대개는 십자가를 믿는 것을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나의 모든 죄가 용서되고 나는 구원 되었다’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이것으로 십자가를 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의 속 중심에 무엇이 있으며 누가 있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바로 십자가를 믿는다고 자처하는 자신의 구원과 자신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욕망이라는 본성적 마음으로 생각하게 되는 예수고 십자가입니다. 물론 십자가를 아는 것도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믿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신이 예수를 믿고 있고 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과의 관계 안에 자신이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이유는 예수를 믿는 것으로 인정되는 신앙 행위가 자기에게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겔 7:22절에 보면 “내가 또 내 얼굴을 그들에게서 돌이키리니 그들이 내 은밀한 처소를 더럽히고 포악한 자도 거기 들어와서 더럽히리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은밀한 처소는 성전 안에 언약궤가 있던 곳, 즉 지성소를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밀한 처소를 가장 거룩한 곳으로 생각했고 하나님의 영광이 자리한 은밀한 처소가 자신에게 존재한다는 것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무한한 복을 받을 것으로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존재하시는 은밀한 처소를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만으로 복이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은밀한 처소가 이방인들에게 더럽혀지도록 하십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밀한 처소에 대한 이스라엘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전에 은밀한 처소를 두신 것은 은밀한 처소가 있다는 것으로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은밀한 처소로 인해서 인간에게 감추어진 은밀한 것이 드러나고 그것으로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반면에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은밀한 것은 감춘 채 하나님의 거룩한 은밀한 처소가 자신들에게 있는 것으로만 자부심을 삼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은밀한 처소가 이방인들에게 무너지게 하심으로 은밀한 처소를 소유하는 것으로 복이 된다고 여겼던 그들 생각을 무너뜨리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밀한 처소에서는 인간의 죄를 대신해 죽은 거룩한 제물의 피가 뿌려집니다. 이것은 인간의 죄가 하나님의 은밀한 처소에서 드러나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이 은밀한 처소를 두신 이유고 이 처소가 지금의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하나님의 은밀한 처소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기독교인들이 십자가를 믿는다고는 하지만 그 생각은 성전에 있는 하나님의 은밀한 처소를 바라보는 이스라엘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흠 없는 제물을 잡아 제사하고 그 피를 은밀한 처소에 뿌리면서 자신들의 할 일을 다 한 것으로 생각한 것처럼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십자가를 말하고 감사하는 것으로 십자가를 믿는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말씀드린 것처럼 은밀한 처소에서 피가 뿌려지는 것은 인간의 죄가 드러나는 것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가 드러나는 것을 체험하고 자신이 죽은 자임을 알게 되면서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그리스도의 은혜가 마음에 자리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은밀한 지혜를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하나님의 은밀한 지혜 우리에게 보이시기 위해서 성령을 보내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는 그들의 손으로 성전에서 행한 것이 있었습니다. 제물을 잡아 제사를 드렸고 성전을 귀하게 여기며 잘 보전해 왔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방인을 내세워서 그 모든 것을 부숴 버리고 은밀한 처소까지 이방인에게 점령당하게 하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를 잘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도 이스라엘처럼 손으로 행한 것들이 있습니다. 매 주일 하나님을 찾아 예배하면서 이것저것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여러 일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지혜인 그리스도를 우리 가운데 있게 하신 뜻에는 일치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손으로 행한 것이 많을수록 좋은 믿음이 된다고 생각하고 행함을 쌓는 일에 몰두합니다. 좋은 믿음을 가져야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모든 종교인들의 일반적인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사고였고 이들에게 성전의 은밀한 처소는 들어가지 못하고 보지 못하도록 금지되어서 은밀한 처소가 아니라 그들의 사고로는 알 수 없는 피의 세계였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결정적 오류는 하나님의 은밀한 처소가 이스라엘에게 자기 노출, 즉 죄의 노출을 요구한다는 것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손으로 행한 것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종교인의 오류이기도 합니다.

 

 

십자가는 인간의 깊은 곳에 은밀하게 자리하고 있는 죄가 드러나게 하고 그 죄로 인한 고백이 있게 합니다. 따라서 자기 죄의 노출과 고백이 없다면 그것은 십자가를 모른다는 결정적 증거가 됩니다. 그래서 자기 죄의 노출이 없는 자들에게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이신 그리스도가 감추어진 곳일 수밖에 없습니다.

 

 

십자가를 말하는 여러분이 아셔야 하는 것은 십자가는 예수님이 흘리신 피 앞에서 우리의 죄가 낱낱이 폭로되는 자리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노출이 있는 그것이 십자가인 것입니다. 이러한 십자가는 인간이 생각한 바도 없고 원하지도 않습니다. 인간에게 만족이 되는 십자가는 예수님이 죽으신 것으로 자기 죄가 해결되고 예수를 믿어주는 것으로 구원 받고 천국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을 확보하기 위해 예수를 믿는 악한 심보일 뿐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도 결국 예수님이 노출시킨 죄를 인정하기를 거부한 인간의 행위입니다. 죄를 인정하면 자기 손으로 행한 모든 공로가 함께 무너져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죄를 말하되 한편으로는 자기 공로를 인정해주는 십자가를 상상하고 거기에 예수를 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시는가를 아십니까? 성경을 공부하면서 이론적으로는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위해 살아가지는 않습니다. 내가 기뻐하는 것, 내가 사랑하는 것이 내 안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인식할 수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성령으로 그리스도를 보게 하심으로 내가 사랑하는 것을 위해 살아가는 모든 것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죄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 피가 우리가 알지 못했던 은밀한 처소에서 흘러나오는 은혜입니다. 이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 하나님이 보이시는 것을 보게 되는 성령의 체험입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밀한 지혜를 보게 된 신자는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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