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19 17:26

(61강) 칭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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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고후 10:18

고후 10:18http://onlycross.net/videos/co2/co2-1018.m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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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8.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설교>

성경은 우리에게 있는 신앙의 틀을 부수는 일을 합니다. 만약에 성경에 의해서 신앙의 틀이 부서지는 경험이 없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자기의 틀에 갇혀서 항상 자신이 옳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반대로 자기 틀에 맞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는 신앙이 잘못되어 있다는 비난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몇몇 사람에 대한 말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자기 틀에 갇혀서 인간 본래의 특성을 드러내며 행동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자신의 틀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자기로부터 자유롭게 된 사람은 없습니다.

 

 

성경은 틀에 갇힌 인간의 존재 자체가 죄에 속한 것이고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음을 알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힘이나 신앙이 아닌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이 우리를 살게 하는 힘이라는 사실에 눈을 뜨게 되는 것이 틀이 부서지는 경험입니다. 그렇게 자기의 틀이 부서지는 경험과 함께 서로가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을 의지하는 자로 함께 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일방적인 은혜와 사랑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교회에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기대하게 되는 것은 서로 사랑하며 은혜를 함께 나누는 관계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러한 기대를 무너뜨리며 실망만 있게 합니다. 사도 바울도내가 너희들로 인해 실망했다는 말을 노골적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편지의 내용을 보면 고린도 교회의 교회답지 못한 여러 모습으로 인해 실망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교회의 교회답지 못한 모습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교회다움과 바울이 말하는 교회다움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교회다움을 좋은 인간관계가 유지되어 평안의 분위기를 이루고,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는 바람직하고 훌륭한 일의 업적을 쌓는 것에서 찾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교회다움을 처음부터 끝까지 십자가 복음에 두고 말합니다. 비록 좋은 인간관계를 이루고 세상이 인정하는 활동을 많이 한다 해도 복음에서 벗어나 있다면 교회가 아니라는 것이 바울의 시각인 것입니다. 심지어 고린도 교회의 수많은 문제도 교회다움을 훼방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부정적으로 보이는 문제들조차 하나님은 교회를 교회로 드러내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17)고 말합니다. 주 안에서 발견하게 되는 하늘의 것을 진정한 자랑거리로 삼는 것이 교회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교회다움은 주 안에서 발견하게 되는 은혜와 사랑으로 증거되는 것이기 때문에 바울은 교회의 문제로 인해 실망했다기보다는 이 은혜와 사랑이 훼손되는 것으로 인해 실망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로 인해 실망하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문제인 것입니다.

 

 

주 안에서의 자랑을 말한 바울은 이어서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18)고 말합니다.

 

 

자기를 칭찬하는 것은 자기가 자기를 인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받은 추천서가 있다는 이유로 자신을 높이고자 하는 것도 자기를 칭찬하는 것입니다. 추천서가 없는 바울은 사도로 부족하다 하면서 추천서를 자기 증명의 도구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자들의 세계인주 안에서를 훼손하는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주 안에는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이 신자에게 남긴 은혜와 사랑이 있습니다. 은혜와 사랑 앞에서는 인간이 자랑하는 어떤 것도 자랑거리가 되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추천서라는 것과 바울보다 낫다고 자랑하는 외적인 것들을 내세워 바울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남긴 것을 무시하고 훼손하는 것이기 되기에 바울은 실망하고 분노하면서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주께서 칭찬하는 자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인정하는 것은 사실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이 만족과 보람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구원의 영광이 되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사람에게 인정받는다는 것으로 자기 칭찬에 붙들릴 위험이 농후하며 주께서 십자가에서 남기신 것보다 사람의 인정과 칭찬을 즐기는 길에 매몰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실감 되는 것은 주께서 칭찬하는 것보다 사람의 칭찬입니다. 주께서 누군가를 칭찬하신다 해도 실제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늘에서내가 너를 칭찬한다는 음성이 들리는 것도 아니고,‘주가 나를 칭찬하시는구나라고 알 수 있는 어떤 표징이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보면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는 바울의 말은 사실 막연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그에 비해 사람의 칭찬은 현실적이기 때문에 주의 칭찬보다 사람의 칭찬을 따라가기에 십상인 것입니다.

 

 

우리는 바울의 말을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라 주께 칭찬받는 신자가 돼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그렇게 되면 또다시주께 칭찬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인간적 생각에 치우치게 됩니다. 결국 주께 칭찬받는 자기 존재에 관심을 두는 것이기 때문에 이 또한 예수님이 남기신 은혜와 사랑이 아닌 자신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일 뿐입니다.

 

 

자기를 칭찬한다는 것은 자기 의로움에 머물러 있다는 뜻이 됩니다. 자신의 의로운 행동과 조건들을 통해서 신자다움과 사도다움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기 칭찬입니다. 그 예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리새인의 기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18:11-12)

 

 

바리새인의 기도는 자신이 의롭다고 여기는 자기 의에 머물러 있습니다. 바리새인이 언급한 토색, 불의, 간음은 하나같이 인간이 부정적인 행동으로 여기는 것들입니다. 누구든 토색하고, 불의를 행하고, 간음했다고 하면 하나님께 벌을 받아야 할 죄인으로 간주합니다. 그런데 그것들은 하나같이 인간의 노력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토색, 불의, 간음이라는 문제에 붙들려 있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바리새인의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자신만 의롭다고 생각하고 세리를 무시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불의를 행하는 자를 주의 사랑으로 용서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일까요? 기독교인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교회다움은 바리새인처럼 신앙이 좋고 의를 행하는 사람이 믿음이 없고 불의를 행하는 사람을 도와주면서 서로 사랑하는 모습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람이 꿈꾸는 교회 환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십자가로 드러내시는 교회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고전 11:18-19절에 보면먼저 너희가 교회에 모일 때에 너희 중에 분쟁이 있다 함을 듣고 어느 정도 믿거니와 너희 중에 파당이 있어야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는 말을 합니다.

 

 

우리에게 파당은 교회다움을 무너뜨리는 부정적인 요소로 인식되어 있습니다. 누구라도 교회다움은 서로 사랑하는 연합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파당이라는 부정적인 요소에서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들이 나타나게 된다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합니다.

 

 

우리는 파당을 일으키는 사람들을 옳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정작 주로부터는 옳다고 인정받는 자들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께서 옳다고 하시는 기준이 우리와 아예 다르다는 것이고 옳음은 인간의 노력과 행위가 아니라 주의 일하심에 의해 증거된다는 의미의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파당이라는 우리의 실패, 죄의 행함으로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교회다운 모습으로 나타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하심인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은혜와 사랑을 남기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주께서 칭찬하는 자가 누구겠습니까? 주가 남기신 은혜와 사랑이 있어서 그것을 나타내는 신자입니다. 그런데 항상 자기 칭찬에 익숙하고 자기를 칭찬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는 것에 시선을 둔다면 은혜와 사랑이 중심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겉으로 연합하고 관계가 좋은 것처럼 보이는 위선보다는 파당이라는 불의가 나은 것입니다. 파당이 인간의 죄를 보게 하는 기회가 되고, 죄를 봄으로써 우리가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칭찬받게 할 선한 일이 없음을 알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로 남겨진 은혜와 사랑만이 우리가 의지할 전부임을 증거하게 되는 이것이 자기의 틀이 부서지는 경험이며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주께서 칭찬하실 자는 주로 인해 만들어지고 주가 만들어 내십니다. 때문에나는 주께 칭찬받을 자인가?’의 문제로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사람에게 칭찬받기 위해 행동할 이유도 없습니다. 다만 세상 모두에게 칭찬받을 선한 업적이 있다 해도 인간의 본질은 하나님의 긍휼히 여겨주심이 없다면 망하는 존재로 끝날 뿐이라는 것에 분명한 인식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자기를 칭찬할 선한 것으로 가득하다 해도 마음은 십자가로 남겨진 은혜와 사랑으로 향할 것입니다. 이것이 택하여 부르신 자기 백성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총이기 때문에 실패라고 할 수밖에 없는 불의가 선명하게 드러나게 되는 현장에서도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으로 인한 감사며 신자를 신자 되게 하고 교회를 교회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입니다.

 

 

교회는 십자가라는 시각에서 보면 불의한 자들의 모임일 뿐입니다. 그런데 불의한 자가 함께할 뿐인데도 불구하고 옳다 인정함을 받는 주께서 칭찬하는 자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말씀이 역사하는 결과라는 것이 바울이 증거하는 내용입니다.

 

 

바울이 사도로 부족하다고 비난받았던 이유는 추천서가 없다는 것과 함께 몸이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이 복음에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인간의 불의도 복음이 나타나고 전파되는 일에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복음은 인간의 선함에 담기는 것이 아니라 불의에 담겨서 주의 은혜와 사랑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용서로 가는 것이 천국이기 때문에 우리의 죄를 보게 하시고 예수의 피로 죄에서 건지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자가 되게 하여 천국으로 데려가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훼방하는 것이 불의가 아니라 오히려 자기를 칭찬하게 하는 선한 조건들이라는 것이 놀라운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이유도 불의한 우리의 실상을 보게 하기 위함이라는 점에는 율법은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알고 있던 믿음은 인간의 행함과 윤리에 기초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행함과 윤리에서 미흡하다고 생각되는 모습이 발견된다면 믿음도 함께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리고이렇게 부족한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천국에는 갈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 붙들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것이 자기 칭찬의 근거가 깨어지는 것과 함께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롬 8:35-37절에서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사랑을 환난, 곤고, 핍박, 기근 등의 단어를 동원하여 말하는 이유는 우리가 견딜 수 없고 이길 수 없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은 놀라운 능력으로 우리에게 함께 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환난이나 곤고 등의 상황에 부딪히면 지금까지 고백해 왔던 십자가, 은혜 등의 모든 것을 부인해 버리는 존재에 지나지 않지만, 하나님은 그런 우리에게 기어이 십자가로 증거된 은혜와 사랑을 남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을 알게 되면 자기를 칭찬하게 되는 조건들 하나하나는 아무 가치 없는 헛된 것으로 남게 됩니다. 내가 행하는 일이 아니라 주가 행하시는 일이 우리를 신자로 나타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자기를 칭찬할 수 있는 선하고 좋은 조건을 가진 자로 나타나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이 능력으로 함께 함을 아는 자인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자기가 자기를 헤아리는 것, 사람이 사람을 헤아리고 판단하는 것은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예수님의 사랑을 무시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 바울의 시각입니다. 우리가 불의를 행할 때도 예수님은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으로 함께 하셨고, 환난과 핍박과 곤고한 가운데서도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죽음의 순간에도 은혜와 사랑으로 함께 하심으로 우리의 영혼을 천국에까지 보장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불의하고 연약한 존재입니다. 죄 밖에 나올 것이 없는 멸망의 존재입니다. 이것이 우리에 대한 우리의 평가입니다. 그리고 아무 가치 없는 우리를 버리지 않고 여전히 함께 하는 것이 끊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천국으로까지 이어지는 보장입니다. 사랑이 불의한 우리를 주께서 칭찬하는 자로 만들어 천국에 있게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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