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29 16:39

(4강) 다른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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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갈 1:6-10

갈 1:6-10http://onlycross.net/videos/gal/gal-010610.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6.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7.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8.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9.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10.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설교>

바울은 인간에 대해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3:10-12)라고 말합니다.

 

 

기록된 바라고 시작하는 것은 바울이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14:1-3, 53:1-3)는 인간에 대한 선언을 믿고 그것을 근거로 말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구약 시대의 인간이나 바울이 사도로 활동하는 신약 시대의 인간은 더러운 자가 되어 선을 행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같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은 선을 행할 수 없는 더러운 자이기에 의인은 하나도 없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복음을 가르치셨고 그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늘로 가신 후에는 성령이 오셨고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에도 성령이 함께하시고 일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의인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시고 성령이 오신 이유가 선을 행할 수 없는 인간을 선을 행하는 의인으로 만들기 위함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복음을 가르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깨달아 하나님을 찾고 믿으며 선을 행하는 자로 만들기 위함일까요? 오늘날 교회가 말하는 성화 된 인간을 만들기 위함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복음의 목적이라면 예수님이 복음을 가르친 것은 한마디로 실패입니다. 예수님의 시대에도 예수님이 하늘로 후에도 성화 되어 선을 행하는 자는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만약 몇 명이라도 선을 행하는 자가 있었다면 바울의 말은 거짓이 됩니다.

 

 

천국은 의인의 나라입니다. 의인만 들어가는 것이 천국인데 의인은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의인 되어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마음이 부패하고 행실이 가증하여 선을 행할 수 없는 인간이 어떻게 의인이 될 수 있는지의 여부입니다.

 

 

여기서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하는 것은 인간이 선을 행하여 의인 될 가능성은 없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행하고 온갖 경건의 모양을 갖춘다 해도 하나님은 의인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성경을 믿는다면 행함이 의로운 것이고 참된 믿음의 증거라는 생각은 먼지처럼 털어버리고 시작해야 합니다. 이것이 복음의 시작입니다. 그렇게 보면 예수님의 복음은 의인 될 수 없는 인간의 행위를 내세우며 의롭게 여기는 것을 저주로 선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선을 행할 수 없다면 행위로 인간의 선악을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예수를 핍박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이유로 사도가 될 수 없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사도 된 것을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라는 말로 편지를 시작한 것입니다. 따라서 누구든 사도가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처럼 사도 된 자신을 바라보게 한다면 속이는 것이 됩니다. 바울은 그것을 교회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는 것으로 경계합니다.

 

 

6절을 보면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다른 복음을 바울이 전한 복음의 내용과 다른 내용의 복음으로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믿음에 율법을 더하고 율법을 지키지 않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며 구원받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을 다른 복음으로 간주하게 됩니다.

 

 

물론 믿음에 행위를 더하는 것은 바울이 전한 복음이 아니라는 점에서 다른 복음입니다. 하지만 다른 복음의 의미를 이렇게만 이해하면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에서 우리 자신을 제외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나는 바울이 전한 복음을 믿는다라고 우리 자신을 복음에 대해 정당한 자로 인정하는 것입니다.‘인간은 선을 행할 수 없고 율법의 행위로 구원받을 수도 없으며 오직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의롭게 한다는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복음이고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8,9절을 보면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이 내용을 보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바울이 복음을 전합니다. 그런데 바울 자신이나 천사라 할지라도 바울이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합니다. 만약 바울이우리나 천사라도 예수님이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 그래서 나는 예수님의 복음만 전한다라고 말했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 자신도 자기가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말을 바꾸어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뜻일까요? 바울이 말을 바꾼다 해도지금 내가 전하는 복음이 진짜다라고 한다면 결국 듣는 자가 판단해야 하는 입장이 됩니다. 하지만 천사까지 동원하여 저주를 언급하는 것을 보면 단순히 말을 바꾸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지금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전하는 것을 사람으로 말미암은 행함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사도 되었기 때문에 복음을 알게 되고 그 복음을 전하는 것도 모두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으로 간주합니다. 복음을 깨닫고 전하게 되는 것은 선을 행할 수 없는 인간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있어서 인간은 칭송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복음 전하는 자신을 높이고자 한다면 비록 복음의 내용은 옳다 해도 다른 복음이 됩니다. 그리스도가 아닌 사람을 높이는 복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복음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하늘로부터 온 천사까지 언급하며 누구라도 복음을 빙자하여 높임 받을 수 없음을 분명히 합니다. 천사가 복음을 전한다 해도 그 또한 하나님이 보낸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행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한다 해도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할 수 없다는 인간성이 변하거나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선을 행할 수 없는 인간 그대로 복음을 전하는 것뿐입니다. 아마 쉽게 이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복음 전하는 것이 선한 행위가 아니냐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사람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는 말에 반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배를 드리건 기도를 하건 선을 행할 수 없는 더러운 자라는 것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어떤 신앙 행위든 나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행위로 칭찬과 높임을 받고자 하고 믿음을 인정받고자 하는 모든 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알고 있고 말하는 복음의 내용이 옳고 지극히 성경적이라 해도 다른 복음이 될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바울이 말하는 다른 복음의 의미를 주의 깊게 살펴야 합니다. 특히나는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고 복음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그러한 자신에 대해 심각한 마음으로 경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복음을 알고 있는 자신을 정당하게 바라보는 것이 사탄에게 속고 저주의 길로 가는 것이며 그것이 다른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이 복음이 무엇인가를 알고 싶다고 합니다. 성경을 바르게 배우고 싶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그런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은석교회는 복음을 전한다라는 생각으로 찾아오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복음을 알고자 하는 이유가 복음을 아는 바른 신자 되고자 하는 것이면 이미 자신을 목적으로 하고 있음을 눈치채어야 합니다. 사탄은 복음까지 동원하여 자기를 목적으로 하는 길로 가도록 유혹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알아야 바른 신자다라는 생각으로 복음에 관심을 두게 되면 결국 복음의 내용을 알고 이해한다는 것을 내세워 자신을 바르고 정당한 신자로 인정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누군가와 성경을 이야기한다 해도복음을 아는 나는 정당하다는 위치에서 시작할 뿐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바울의 사도직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바로나는 정당하다는 위치에서의 바울을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함이 나올 수 없는 인간의 자리에서 저주를 받은 자로 시작하지 않는 것이 심각한 오류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생각하면 우리는 자신에 대해 안일한 마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사탄은 세상의 복이든 구원이든 복음이든 우리가 추구하는 것을 세밀히 간파하고 그것을 도구로 유혹합니다. 그래서 복음을 깨닫고 바른 신자 되고자 하는 것도 사탄의 속임수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믿음에 율법을 더하여 바른 신자 되고자 하는 것이나, 율법의 행위를 부인하고 십자가만 믿음으로 바른 신자 되고자 하는 것이나 자기를 목적으로 하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를 목적으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자기에게로 치우쳐 하나님을 찾지 않는 무익한 인간입니다. 이러한 우리가 바른 신자 되겠다는 것이 잘못된 시작임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시작은 항상 잘못되어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자기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시작은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하루하루를 생각해 보십시오. 모든 날을 나를 목적으로 하고 시작합니다. 모든 날이 나를 위한 날이기를 원합니다. 세상의 모든 일도 나를 중심으로 나를 위해 움직이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실망과 아쉬움과 원망입니다. 비록 복음을 안다 해도 이러한 현실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복음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복음을 안다 해도 바른 인간이 될 수 없고 선을 행할 수 없는 인간 됨을 폭로 당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러한 폭로가 우리에게서 계속되어야 합니다.‘나는 바르다로 시작해서 다른 사람의 바르지 못한 성경 이해를 폭로시키기 위해 복음을 이용하는 것이 다른 복음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인간을 인정해주는 복음은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한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나는 복음을 전하기 때문에 참된 사도다라는 주장도 할 수 없습니다. 만약 바울이 그러한 주장을 펼친다면 그것이 다른 복음입니다. 그래서나는 복음을 전하기 때문에 참된 목사다라는 말을 하는 것이나,‘저 목사는 복음만 전하는 참된 목사다라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모두가 다른 복음을 전하는 것에 포함된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마태복음을 보면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1:1)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는 곧 생명의 계보입니다. 그런데 생명의 계보에 이름이 기록되었다고 해서 그가 바른 사람이 된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행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이 되는 생명의 계보에 일방적으로 포함된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면서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과 부르심에 대해 알게 됩니다. 구원이 우리의 행함으로 말미암지 않는다는 것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복음의 내용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복음의 내용이 인간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포함된 모든 복음의 내용은 우리의 구원을 보장한다는 취지로 증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의 능력을 체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10절을 보면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고 말합니다.

 

 

사람을 좋게 하고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 다른 복음의 특징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기쁨을 구하고자 한다면 사람의 눈치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사람이 싫어할 말은 걸러 낼 것입니다. 이처럼 자기를 위해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 악한 세대의 모습인 것이고 우리는 그렇게 자기를 위하는 인간으로 한통속이 되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악한 세대에 복음이 들어와 우리를 건져내었습니다. 그러면 바른 인간이 된 것입니까?‘복음이 우리를 악한 세대에서 건져 내어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구원받은 신자답게 신앙생활을 잘합시다라는 이것이 다른 복음입니다. 사람에게 초점을 두고 사람을 좋게 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복음은 우리가 악한 세대에 속했음을 알게 하고 그러한 자기 존재를 고백하게 합니다. 그리고 복음이 증거하는 십자가의 능력만 높이고 자랑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말하면서 복음의 능력을 가로막는 사태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때문에 복음을 안다는 것을 내세워 마치 복음 편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이 사탄에게 속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억할 것은 복음은 쉬지 않고 우리의 의를 허물고 나 대신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의 의에만 마음을 두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 안에 있게 되면 자기 부인이 나오게 됩니다. 이것이 악한 세대에서 건짐을 받은 신자에게서 나타나는 특징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나를 세우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악한 세대임을 알았다면 나를 허물어 주는 복음을 소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악한 세대에서 건져낸 복음을 따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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