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06 15:39

(19강) 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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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전 5:4-7

전 5:4-7http://onlycross.net/videos/ecc/ecc-050407.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4.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하지 말라 하나님은 우매한 자들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서원한 것을 갚으라

5.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더 나으니

6.네 입으로 네 육체가 범죄하게 하지 말라 천사 앞에서 내가 서원한 것이 실수라고 말하지 말라 어찌 하나님께서 네 목소리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네 손으로 한 것을 멸하시게 하랴

7.꿈이 많으면 헛된 일들이 많아지고 말이 많아도 그러하니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지니라

 

 

<설교>

복음은 상식도 도덕도 아닙니다. 따라서 상식적인 사람이라거나 도덕적으로 산다는 것이 복음을 알고 복음으로 사는 증거가 될 수 없습니다. 그 말은 복음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은 세상에 없다는 것입니다. 복음 자체가 세상을 초월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믿음은 이럴 것이다는 선입견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자기 상식과 지식을 근거로 한 자기이해일 뿐 복음이 증거 하는 하나님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결국 사람이 성경도 알고 예수도 믿는다고 하지만, 그 실상을 잘 살펴보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자기 틀 안에서 이해하고 말하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절에서 전도자는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하지 말라 하나님은 우매한 자들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서원한 것을 갚으라고 말합니다.

 

 

인간관계에서는 누군가에게 서원을 했으면 지켜야 하는 것이 옳은 상식으로 굳어져 있습니다. 서원을 하고 지키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신뢰할 수 없는 자로 낙인찍힐 것입니다. 이러한 상식의 틀 안에서 성경을 이해함으로 해서 서원하였으면 갚기를 더디 말라는 내용을 서원한 것을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한 책망으로 듣게 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하나님께 서원을 했다면 이것은 양보할 수 없는 문제가 됩니다. 세상 규율에서도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서원을 했으면 지켜야 하는 것이 굳은 관례로 되어 있습니다. 물론 높은 자가 한 서원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높은 자리에 있다는 것 때문에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한 징벌에서 벗어나 있는 것입니다. 낮은 자가 높은 자를 벌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서원을 하고 지키지 않으면 그에 따른 불이익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습니다. 높은 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무시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서원하는 것도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하는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반드시 지켜야 하고 지키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벌을 주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있는 선입견이고 이 선입견이 성경을 이해함에 있어서 많은 경우 걸림돌이 되어 다른 생각을 차단해 버리는 것입니다.

 

 

5-6절을 보면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더 나으니 네 입으로 네 육체가 범죄하게 하지 말라 천사 앞에서 내가 서원한 것이 실수라고 말하지 말라 어찌 하나님께서 네 목소리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네 손으로 한 것을 멸하시게 하랴라고 말합니다.

 

 

서원을 갚아야 하고 갚지 않으면 범죄한 것이 되어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차라리 갚지 못할 것 같으면 서원을 하지 말라는 뜻일까요? 서원은 지켜야 한다는 선입견으로 접근하면 그런 의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자기 편리주의일 뿐입니다. 범죄하여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여 벌 받을 일은 아예 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믿음과는 무관한 것입니다.

 

 

서원에 대해 먼저 생각할 것은인간이 과연 하나님께 서원을 할 수 있는가?’입니다. 서원은 자기 행동과 실천에 대한 맹세입니다. ‘제가 이렇게 하겠습니다가 서원인데 인간이 이러한 서원을 할 수 있는 존재냐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인간은 하나님께 서원할 수 있는 존재가 전혀 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고 세상 자체가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세상은 인간이 자기 힘으로 자기 뜻을 위해 사는 것은 없습니다. 다만 자기 힘으로 산다고 착각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어떤 서원을 하든 서원을 갚기 위해서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가령 기독교인이 성경을 전혀 읽지 않는 것 때문에 마음에 가책을 받아 하루에 성경을 열 장 보겠습니다라고 서원을 했을 때 열 장 읽는 그 정도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사실 표면적으로 보면 짧은 시간만 내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실천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으로 평소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고 인간을 알게 되면 그런 서원을 하게 되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는 것을 잊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열장 읽든 한 장을 읽든 성경을 읽기 위해서는 많은 것이 허락되어야 합니다. 몸이 아프거나 눈에 이상이 발생하면 성경을 볼 수 없습니다. 또한 환경적으로도 여건이 허락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신자에게는 하루하루가 하나님의 허락과 베푸시는 은혜 안에서 사는 것이기에 한 장을 읽든 열 장을 읽든 읽지 못하든 하나님의 은혜로 존재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얼마나 실천하는가?’를 떠나서 은혜로 인해 감사하는 것입니다.

 

 

5:34-36절에 보면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맹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라고 예상되는 어떤 행위에 대한 자기 결의를 맹세라는 형식으로 보임으로써 자기 믿음을 증거하고, 그에 대한 대가로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현재의 것에 다른 것을 더 추가하려는 의도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기 위한 방편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맹세하지 말라고 합니다. 인간은 머리카락 하나도 자기 뜻대로 할 수 없고, 다만 세상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의 뜻에 사용되는 도구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자기의 뜻이 성취되는 것으로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뜻을 세우시고 일하시는 하나님이 기쁨의 원천이 되어 존재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이기에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전도자가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 말라는 것은서원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서원한 대로 되는지 해봐라는 뜻인 것입니다. 해보고 안 될 때 서원한 것을 실수로 변명한다 해도 이미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7절을 보면 꿈이 많으면 헛된 일들이 많아지고 말이 많아도 그러하니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지니라고 말합니다.

 

 

서원 또한 인간의 꿈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서원을 자기 꿈을 실현하고자 하는 방법으로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꿈이 많으면 서원을 포함한 헛된 일도 많아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꿈을 허락하시고 그것을 위해 도우시는 분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국 자기 욕심을 만족시키고자 하는 말만 많아질 뿐입니다.

 

 

전도자는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합니다. 11:7절에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였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경고는 세상의 악함에 대한 심판의 선포입니다. 따라서 노아가 하나님의 경고하심을 받아 방주를 예비하였다면 노아 자신 역시 심판의 대상인 죄의 존재로 여겼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노아의 하나님 경외였습니다.

 

 

우리는 보이는 세상 속에서의 자기 존재에만 마음을 둡니다. 세상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면 자신의 현재 모습에 불만이 있게 되고 서원을 해서라도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합니다. 세상에 대한 꿈이 많기에 헛된 일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노아처럼 하나님의 경고를 받는다면 나를 포함하여 세상을 정죄하게 될 것이고 유일한 희망은 우리를 죄에서 구출하신 예수님의 용서의 능력임을 알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입니다.

 

 

22:16절에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겠다고 맹세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맹세를 이루심으로 예수님이 제사장으로 오시고 아무 것도 한 것이 우리는 예수로 인해서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구원은 우리의 서원이나 실천과 무관하게 하나님의 맹세의 결과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우리의 것이 요구되지 않는 세계에 들어 왔음을 의미합니다. 다만 하나님이 맹세하시고 이루신 것이 기쁨이 되고 감사가 되면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맹세 아래 있고 그 맹세는 취소되지 않습니다.

 

 

Chapter 19

 

Vow

 

When thou vowest a vow unto God, defer not to pay it; for he hath no pleasure in fools: pay that which thou hast vowed.

Better is it that thou shouldest not vow, than that thou shouldest vow and not pay.

Suffer not thy mouth to cause thy flesh to sin; neither say thou before the angel, that it was an error: wherefore should God be angry at thy voice, and destroy the work of thine hands?

For in the multitude of dreams and many words there are also divers vanities: but fear thou God. (Ecclesiastes 5:4-7 KJV)

 

(Sermon)

 

The gospel is neither common sense nor ethics. Thus, one who knows the gospel and lives by it can’t be proven by one whose behavior makes sense or one who is moral. That is, there is no criteria to evaluate the gospel in the world because the gospel itself doesn’t belong to the world.

 

Yet, we have a prejudice of faith, according to our sense and knowledge, whose thought is different from that of God’s. Consequently, we say we know the Bible and believe in Jesus, but taking a look at it in depth, we find that what we say is nothing more than what we think is right in our own frame.

 

In Verse 4, the Preacher says, “When thou vowest a vow unto God, defer not to pay it; for he hath no pleasure in fools: pay that which thou hast vowed.”

 

It is a common sense that if one vows to another, one must keep it. Otherwise, one would be mistrusted. In such understanding of ‘vow’, we tend to see ‘when vowing, do not deter’ as a rebuke of not doing it.

 

What about the case of vowing to God? It is more than that. In the rules of the world, when one in lower position vows to one in higher position, one in lower position must do it. Of course, I don’t mean one in higher position doesn’t have to keep it. Yet, in many cases, one in higher position doesn’t get punished for not keeping it because one in lower position can’t punish for it. Yet, it is usually seen that one in lower position gets disadvantages for not keeping it, assumed one is rude and discourteous.

 

Thus, we often think our vowing to God is to the One in higher position, assuming if we don’t keep it, God will punish us. This is our prejudice, blocking us from the understanding of the Bible.

 

In Verse 5 to 6, it says, “Better is it that thou shouldest not vow, than that thou shouldest vow and not pay. Suffer not thy mouth to cause thy flesh to sin; neither say thou before the angel, that it was an error: wherefore should God be angry at thy voice, and destroy the work of thine hands?”

 

Do you think it means if one vows to God, one must keep it and if one doesn’t think one can keep it before vowing, one must not vow to God because God will punish one for not keeping it? If we see this in our prejudice of vowing, that’s the only way to understand it. However, we should know it is our pragmatism. It has nothing to do with faith, pursuing our benefit, not getting punished by God.

 

What should first be deemed in the matter of vowing is ‘can a man truly vow to God?’ Vow is a matter of one’s action and practice. Can one keep the vow one has made? The answer is absolutely ‘no.’ It is because God is the Creator, reigning over the universe. In such world, there is no living according to one’s will with one’s power. Even if there were, it would be a mere fantasy.

 

When keeping the vow, there must be an ability to so. For instance, when a christian gets pricked for not reading the Bible, he vows God to read 10 chapters everyday, thinking he is able to do such.

 

In fact, it superficially seems that anyone can do it if he or she wants. Yet, the fact that God is not his or her Master is revealed. Thus, knowing God and man, we learn that we haven’t remembered the grace of God through such vow.

 

Whether one reads 10 chapters or only one daily, many factors are needed. If one gets sick or pains in eyes, one can’t. It is environmentally the same. Therefore, it is by the grace of God for believers to live every single day no matter how many chapters of the Bible they read, by which they give thanks to God, not depending on how well they behave themselves.

 

In Matthew 5:34-36, it says, “But I say unto you, Swear not at all; neither by heaven; for it is God's throne: Nor by the earth; for it is his footstool: neither by Jerusalem; for it is the city of the great King. Neither shalt thou swear by thy head, because thou canst not make one hair white or black.”

 

What is the reason people vow a vow to God? By vowing to God with some actings that they think please God, they would prove their life of faith, through which they would get what they want from God. In short, it is a mere way to add to what they already have, using God.

 

Yet, the Lord says not to swear. It is because no one can even control one hair and all are tools God uses to fulfill His will. Thus, it is not that believers are pleased to see their will done but God is their source of joy, fulfilling His will. As it is faith, the Lord says to us not to vow.

 

In this sense, what the Preacher means by saying ‘When thou vowest a vow unto God, defer not to pay it’ is ‘look if you can do it accordingly.’ That is, ‘when you see yourself not being able to do it, it is nothing but under the judgement of God no matter what kind of excuses you make.’

 

In Verse7, it says, “For in the multitude of dreams and many words there are also divers vanities: but fear thou God.”

 

A vow is connected to a dream because one uses vowing to fulfill one’s dream. Thus, if there are many dreams, there will be many vanities, including vows. God never helps man’s dream come true. There will only be full of mere human words to satisfy their desires.

 

The Preacher says to fear only God. In the Book of Hebrews 11:7, it says Noah prepared an ark, being warned of God of things not seen yet. God’s warning is the judgement against the wicked world. Thus, if he prepared an ark in the warning of God, it means he sees himself also the one who deserves the judgement of God, which was his fearing God.

 

We are only interested in ourselves in this visible world. Comparing to others in the world, we come to have dissatisfaction, wanting to be better than them even by using a vow. There are many vanities due to many dreams. Yet, like Noah, if we are warned of God, we come to judge the world, including ourselves, realizing the only hope for us is the forgiveness power of Jesus Christ. It is the faith, fearing God.

 

In Genesis 22:16, God vows to Himself to bless Abraham. By God’s paying this vow, He sent His Son, through which we, dying sinners, are saved. Thus, our salvation is the result of God’s vow regardless of our vow or practice.

 

‘One’s believing in Jesus Christ’ means that one is in the world that requires one nothing. Only does one give thanks to God for what He fulfilled in His vow. We are under such vow and thank God it can never be cance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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