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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때 철저하게 점검해야 할 것은 그 믿음이 과연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주어진 믿음인지 아니면 인간에게 있는 종교심을 믿음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것이다. 믿음이냐 종교심이냐. 이것은 신자에게는 참으로 중대한 문제이다. 왜냐하면 구원은 믿음에만 있지 종교심에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생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였지만 결국 구원과는 상관없는 종말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문제는 중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믿음과 종교심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성경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믿음과 종교심을 구분할 수밖에 없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믿음이 어떤 것이며 또 인간의 종교심이 어떤 모습인가를 말해주고 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는 믿음이다. 즉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신뢰를 믿음이라고 한다.


믿음은 신자에게 세상을 향한 집착에서 떠날 것을 요구한다. 세상에 대한 소망을 버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떠나고 버리는 것이 믿음이다. 따라서 믿음은 신자가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보이지 않는 것에 소망을 두고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삶을 살아가도록 한다.


믿음에는 세상을 향한 내 소망이나 내 뜻은 자리잡을 수 없다. 심지어는 천국에 가고 싶다는 내 소망도 믿음에 포함시킬 수 없다. 피조물된 인간은 오직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며 사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대로 순종하는 것이 믿음이다. 그런데 종교심은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내 뜻을 하나님에게 전달하고 관철시키기 위해서 믿음을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이것은 절대 믿음이 아니다.


인간은 철저하게 하나님께 반역하는 존재이다. 인간이 자기 이름을 내기 위해서 바벨탑을 쌓았던 같이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이름을 내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한다. 그리고 그 노력이 헛되이 되지 않도록 위해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게 되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 교회를 찾아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의 마음에 들고자 열심히 노력하게 되고 그 노력이 종교행위로 드러나는 것이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오직 세상에서의 복이다. 이 복만 자기에게 주어진다면 어떤 수단과 방법이라도 다 구사하겠다고 결심한다. 그리고 죽어서는 천국까지 가게 된다니 얼마나 금상첨화인가? 그래서 사람들은 교회를 찾고 절간을 찾는가보다.


사람들의 종교심은 수많은 종교를 이 땅에 만들어 냈다. 그 수많은 종교가 각기 추구하는 신의 대상은 다르고 교리나 의식이 다르다고 할지라도 종교가 가진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종교는 다같이 윤리와 도덕을 앞세운다는 것이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종교를 통해서 인생의 행복을 누리기를 소원한다는 것이다.


종교심은 자연과 인간의 인생, 즉 운명이 초월자에 의해서 주관되고 있다고 믿는다. 여기에서 성경적 믿음은, 그 초월자인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시고 그 정하신 대로 끌고가시는 우리의 인생에 만족해하는 것이다. 내가 원하지 않는 인생이라고 반발하고 원망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그런데 인간의 종교심은 정해진 운명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행복을 얻기 위해서 인생의 운명을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 조절 방법이 곧 종교의식이다. 이런 종교의식이 민간신앙에서는 무당종교, 또는 기우제나 산신제 등 여러 형태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의식에는 그 의식을 주관하는 대리자가 있기 마련이다. 무당종교에서는 신이 내렸다고 하는 무당이 제사를 주관하고 거기에 참석한 사람들은 무당을 통해서 자신의 복을 빌게 된다. 결국 종교의식을 주관하는 대리자를 신격화하는 현상으로까지 발전하는 것이다. 이런 종교현상과 인간의 종교심이 어울려서 발생한 것이 신흥종교이고 이 신흥종교의 교주들은 어김없이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신격화되어서 추종을 받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통해서 현재의 기독교를 비춰 볼 때 결국 성경의 하나님과 상관없이 인간 스스로가 자신의 종교심에 의해서 하나의 수호신을 만들어 낸 것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움직인다. 즉 신에게 내 운명을 그대로 맡겨두지 못하겠다는 발상이다.


신에 대한 불안감이 있기에 신을 달래고 신의 도움을 받아서 자신의 운명을 조절해보고자 하는 것이 곧 종교의식이다. 그리고 그 종교 의식에는 의식을 주관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인간의 종교심이 교회에도 그대로 침투해 들어와 있다.


신자들은 자신의 인생을 조절하기 위해서 교회를 찾는다. 그리고 의식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고 복을 빈다. 기도도, 예배도, 십일조도 모두가 복과 연결되어서 행해진다. 그 의식의 중간에는 목사가 존재한다. 목사를 의식을 주관하는 주관자로서 자신들을 대신해서 하나님께 복을 빌어주는 대리자로 여긴다. 따라서 사람들은 목사를 자신들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로 여기게 된다. 심하면 목사를 신격화까지 하게 된다.


무당이 신내림을 받아서 귀신을 쫓아내고 액운을 몰아내는 영험이 있다고 믿는 것 같이 목사도 일반 신자와는 다르다고 생각한 나머지 목사에게는 신자들과는 다른 힘이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교회에서 평생을 하나님을 위해서 봉사하는 사람이기에 하나님은 목사를 일반 신자와는 다르게 대하실 거라고 여긴다.


기도를 해도 장로나 집사가 하는 것보다는 목사가 기도하는 것이 응답이 더 잘 될거라고 믿는다. 그래서 신자들은 목사가 자신의 집에 심방 와서 복을 빌어주는 것을 최고로 여긴다. 이것은 눈에 보이는 목사를 자신과는 다르다고 여기고 하나님은 목사라는 존재를 통해서 일하시기 때문에 목사가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이 전적으로 응답하실 거라고 믿는 것이다.


목사를 위대하거나 거룩한 존재로 여기며 모든 것을 목사 중심으로, 목사에게 하나하나 물어가며 의존하려고 한다. 결국 교인들은 스스로를 목사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한 존재로 전락시켜 가는 것이다. 목사가 있어야 교회가 되는 줄로 믿고 있고 목사를 잘 섬기는 것이 복을 받는 비결이라고 아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목사를 믿고 있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하나님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목사가 두려운 존재이다. 행여 목사에게 잘못 대해서 자신에게 저주가 내릴까 두려워한다.


목사가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도 가관이다. 목사를 공격하고, 목사를 반대하고, 목사에게 순종 안하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서 집안에 일이 생기게 되거나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고 엄포를 놓기도 하고 목사에게 순종하고 목사를 잘 섬기면 그것이 곧 복을 받는 길이라면서 엄청난 사기극을 연출하는 것이다. 이런 자들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모양이다.


성경에는 목사를 섬겨야 복을 받는다는 것은 없다. 복이란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주어지는 것이다. 신자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알고 그 십자가 아래서 세상에 대하여는 죽은 자로 의에 대하여는 산 자로 존재할 때 그것이 곧 복이다.


복이란 희생과 섬김을 아는 가운데서 주어지는 것이지 절대로 목사에게 순종하고 목사를 섬김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교회는 목사가 있어야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또 목사가 있어야 교회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목사를 단지 가르치는 자로 세우신 것 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가르치는 자가 목사이다. 신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가르치며 십자가의 희생과 섬김을 알려주어야 한다. 세상에서 잘되는 것이 복이 아니라 좁은길로 들어가는 것이 복이며 희생하고 손해보며 세상의 것에 소망을 버리는 것이 신자임을 전해야 한다. 설사 그 소리가 듣기 싫어서 사람들이 교회를 떠난다 해도 오직 성경만을 외치는 자가 목사이다.


교회에서 목사들은 목사라는 직과 신자가 절대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목사는 기름부음받은 종, 또는 제사장이라고 가르친다. 목사와 목사 아닌 자를 철저히 구분해 놓고 목사 아닌 자가 감히 목사 앞에서 도전하지 못하도록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마치 신자들의 구원과 복을 목사가 책임지고 있는 것 같이 여기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도대체 성경 어느 곳에 목사를 가리켜서 기름부음 받은 자라고 말하거나 제사장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구약에서 기름부음 받은 자는 제사장과 왕이다. 제사장이란 제사를 위해서 하나님이 세우신 자이며 제사는 더러운 존재가 정결한 존재의 희생을 통해서 깨끗케 되는 의식이고 제사장은 그 제사를 주관하는 자이다.


그렇다면 기름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제사 제물에 있어서 인간이 먹을 수 없는 부위가 있는데 기름과 피다. 기름은 태워져서 하늘로 올라가고 피는 뿌려져서 부정한 것을 깨끗케 한다. 부정한 것을 깨끗케 하는 피는 오직 기름이 바쳐지는 제물의 피다. 결국 제사에 있어서 기름과 피는 부정한 것을 깨끗케 하는 필수적인 요소였던 것이다. 동물의 기름과 피에 효능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물이 희생됨을 통해서 깨끗함을 입는 것이다.


제사장이 기름 부음을 받은 후에 제사장 직분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은 제사장도 죄인된 인간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름을 통해서 자신이 깨끗하게 되어야 했던 것이다. 결국 하나님이 원하시는 희생 제물은 예수님이었다는 것을 볼 때 기름과 피는 제물되시는 그리스도를 가르키고 있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기름부음받은 자로서 피를 흘리셔서 우리를 깨끗케 하신 분이다. 기름과 피는 희생을 담고 있다. 제사장이 그 역할을 하는 것은 제사장의 희생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살리는 것이다.


또 왕에게 기름을 부은 것은 기름부음받은 자의 역할이 제사장에서 왕으로까지 나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왕이 나라를 다스리는 것처럼 기름부음받은 자가 기름에 담겨 있는 희생을 보이므로 그 희생정신을 추종하는 모든 자들에게 왕으로 존재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사의 기름과 피를 통해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물이 되셔서 스스로를 희생하고 자신들을 깨끗케 할 메시야를 바라본 것이고 그 메시야의 다스림에 있기를 소원하는 그 믿음이 그들을 구원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기름은 우리의 구원과 연관이 있기 때문에 목사를 가리켜서 기름부음받은 종이라는 용어를 쓴다는 것은 안될 말이다. 그런데 신약에서는 신자를 가리켜서 제사장이라고 하고 있다(벧전 2:5,9). 이 말은 제사장의 역할을 가리켜서 말한다.


구약의 제사장은 자신의 희생을 통해서 다른 사람을 살리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 제사장의 완전한 모습을 보이신 분이 그리스도이시다. 신자는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는 자이다. 그렇다면 신자 또한 그리스도에게 담겨 있는 희생과 섬김의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으면서 어느 곳에서나 희생과 섬김의 모습을 보이는 자가 제사장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지금의 제사장은 자신의 몸을 산제사로 드리면서 희생과 섬김의 모습을 보이는 그 자가 제사장이다. 목사라고 해서 제사장 되는 것은 아니다.


목사는 신자의 구원이나 복을 책임질 수 없다. 단지 가르칠 뿐이다. 어떤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인지를 목이 터져라고 외치는 자가 목사이다. 교회일 열심히 한다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이 아님을 가르쳐야 한다. 기도 많이 한다고 신자되는 것이 아님을 가르쳐야 한다. 십일조를 철저히 하고 헌금많이 한다고 복받는 것이 아님을 가르쳐야 한다. 교인 숫자가 많이 늘어가는 것이 교회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가르쳐야 한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신자는 주일 아침에만 예배당에 앉아 있는 그런 교회인이 아니라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자임을 가르쳐야 한다.


듣는 사람들의 부정적인 반응이 두려워서 해야 할 말을 감춰 버리고 듣기 좋은 말을 부지런히 해서 자신의 자리를 탄탄하게 만들려고 하는 것은 목사 아닌 자가 하는 것이다. 목사라고 대우하려고 하지도 말고 받으려고 하지도 말라.


목사는 하나님의 대리자가 아니며 복의 근원도 아니며 제사장도 아니고 기름부음받은 자도 아니다. 목사를 믿지 말고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 신자이다. 신자가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으며 주님의 뜻을 자신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희생과 섬김의 자리에서 헌신하고자 할 때 그 자가 곧 제사장이며 하나님의 복 안에 있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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