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2011.04.03 13:42

(성령 11강) 성령 세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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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3:15-17http://onlycross.net/videos/spirit/luk-031517.m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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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5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생각하니

16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17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설교>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분으로 말합니다. 이 말을 근거로 해서 신자는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하고 성령세례는 곧 불세례로 이해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불은 뜨거운 것이기 때문에 불세례를 받는 것은 마음이 뜨거워지는 경험으로 확인할 수가 있고, 불세례를 받은 사람은 신앙생활 또한 뜨겁게 변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령 세례든 불세례든 심리적이고 감정적인 어떤 경험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은 물로 세례를 베풀지만 자신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실 것인데 그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풀 것이라고 합니다. 요한의 이 말은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과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는 것을 서로 대비하면서 이것을 능력과 연결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즉 요한 자신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풀 능력이 없어서 단지 물로써 세례를 베풀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요한이 베푸는 물세례는 장차 능력이 많으신 예수님이 오셔서 베푸실 성령과 불세례를 미리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령세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려면 먼저 물세례의 의미부터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물세례는 사람을 물에 완전히 잠기게 하였다가 다시 나오게 하는 방식으로 행해집니다. 지금의 물세례는 특정 교단을 제외하고는 목사가 손에 물을 찍어 머리에 얹는 약식으로 행해지지만 중요한 것은 물세례의 의미를 아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 행해야 하느냐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물세례는 몸을 물에 완전히 잠기게 하는 것으로 ‘죽음’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물 밖으로 나옴으로써 죽음에서 건짐 받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노아 홍수를 통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홍수로 인해서 세상 모두가 물에 잠겼을 때, 즉 세상이 죽음이라는 심판 안에 있을 때 노아의 가족은 물 밖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방주라는 은혜의 결과였습니다. 방주가 그들을 물에 잠기지 않도록 받쳐주고 보호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물세례의 의미입니다. 심판이 마땅한 죄인을 주께서 건져 내시고 생명에 속한 자가 되도록 그리스도 안으로 불러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물세례를 받는다고 해서 물세례의 의미와 일치된 믿음의 길을 가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물세례를 수백 번 반복해서 받는다고 해도 그로 인해서 상람이 죄를 깨닫고 자신을 죽음에 합당한 여기면서 죽음에서 건져주신 예수님이 은혜를 바라보고 감사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자신의 물세례를 능력이 없는 것으로 말합니다.

 

 

이것은 오직 예수님이 오셔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셨을 때만 가능합니다. 자기 죄를 깨달으며 자신을 심판에 합당한 자로 보게 되는 것은 성령으로만 가능한 것이고 이것을 성령세례라고 하는 것입니다. 즉 성령세례는 심판을 받아야 하는 자신이 예수님의 은혜로 산자가 되었음을 깨닫고 온 마음이 주께로 향하게 되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러한 성령세례를 불과 함께 언급하는 것은 불은 곧 심판을 의미한다는 것에 초점을 두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심판에 해당하는 죽은 자로 보게 되는 것이 곧 불세례를 받은 것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세례는 개인적 체험으로 이해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성령을 주신 것은 성령으로 자기 백성을 인치시고 부르심으로써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자 하시는 뜻에 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오심은 새로운 나라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고 따라서 새로운 나라에서 나 개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연합된 관계로 존재하고 있고 그 관계를 드러내고 증거하는 것이 교회됨이기 때문에 개인적 신앙은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다른 사람이야 잘하든 못하든 나만 잘하면 천국 간다라는 사고방식은 자기중심으로 살아가는 세상의 방식이지 성령 세례 받은 자의 연합된 관계로 모이는 교회에는 합당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개 보면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연합된 관계로 존재하는 교회에 대해 소홀히 합니다. 신앙을 개인적인 삶으로만 여기면서 자신의 신앙으로 복을 받고 천국 가는 것에만 염두를 두기 때문에 타인이 신앙의 경쟁자로 비교대상자로만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령 세례 받은 신자가 존재하고, 그들이 하나같이 자신의 죄인 됨을 고백하면서 회개하고 주께 마음을 두고 살아간다면 이것은 같은 마음과 같은 뜻을 가진 새로운 공동체의 존재와 시작을 뜻합니다. 이것이 교회이기 때문에 교회는 어느 개인이 자신의 신앙을 내세울 수도 타인의 신앙을 판단할 수도 없는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타인의 신앙을 보면서 ‘저 사람의 신앙은 가짜일거야’라는 자기 주관적인 판단이 앞서면 안됩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도 타인의 신앙을 판단할 수 있는 시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판단이 아니라 분별은 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말이 복음인지 아닌지는 분별할 수 있지만 그 분별 또한 ‘너는 틀렸다’는 판단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함께 그리스도의 몸으로 자라기 위한 권면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세례 받은 신자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교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자가 자기 죄를 고백하는 것은 죄 속에 살아가는 자신을 실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누구든 자신을 옳다고 생각한다면 죄에 대한 고백은 형식일 뿐입니다. 자신을 옳다고 보면서 죄인이라는 말을 하는 것은 거짓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심으로 자신의 죄를 보면서 고백하는 성령 세례 받은 신자에게서는 타인을 향한 판단이 나올 수 없습니다. 자신이 믿음의 길을 간다면 그 또한 성령의 역사이고 주의 은혜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서로의 신앙에 대해 판단을 한다면 먼저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고백한 것을 스스로 부인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고 성령이 이루신 연합된 관계를 허무는 것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 타인을 향한 판단이 단지 비판과 욕이라는 도덕적인 문제라면 ‘잘못했다’는 반성만 하면 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는 성령으로 이루신 관계를 허무는 악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성령이 하시는 일은 심판이 마땅한 나의 실체를 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내가 예수님의 피의 은혜로 죽음을 이긴 산자로 주께 나아가게 됨을 보게 합니다. 과연 우리가 성령 받은 신자로써 그 같은 나의 실체를 바라보면서 주께 나오는지를 살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도 하나님의 심판과 상관없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속에 하나님이 택한 백성이 있고 그 백성을 건지기 위해 예수님이 오셔서 피 흘려 죽으신 것입니다. 택한 백성을 십자가의 피의 은혜를 믿는 백성으로 만드시기 위해 성령을 보내신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한다면 예수님의 말씀을 믿게 되고 피의 은혜를 알게 된 것이 참으로 복된 사건임을 부인할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을 알고 감사하고 기뻐하는 그 마음이 성령세례 받은 것이고 불세례 받은 것입니다.

 

 

마음이 뜨거워지는 느낌이 전혀 없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신자의 뜨거움은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자의 뜨거움이라면 내가 죄인인 것을 알고 그래서 예수님만은 놓을 수 없다는 마음입니다. 성령이 간섭하시는 이 마음으로 인해서 자신의 부족을 고백하게 되고 신자가 함께 모였을 때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일이라도 찾아서 말없이 행하게 되는 그것이 신자의 뜨거움입니다. 이 뜨거움이 있기에 괴롭고 힘들어도 주님이 가신 길을 가게 됩니다. 이것이 성령세례 받은 신자가 함께 한 교회라는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교회는 ‘주여 주여’라고 불러대는 신앙이 아니고 화려한 예배당이나 의식은 더더욱 아닙니다. 교회는 오직 예수만을 따르고자 하는 제자로서 예수님이 가신 길이 무엇인가를 알고 그 길에 서서 인생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면서 말없이 그 길을 가는 것이 성령세례 받은 신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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