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2017.01.21 15:21

(믿음 97강) 믿음과 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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슥 9:9-10http://onlycross.net/videos/faith/zec-090910.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9.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10.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설교>

‘믿음과 겸손’이라는 말에 담긴 뜻은 ‘겸손은 믿음으로만 가능하다’입니다. 이 말을 다르게 해석하면 겸손은 도덕, 윤리와 무관하며 가능하지도 않다는 의미가 됩니다. 아마 이 말에 많은 분들이 반발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마치 ‘도덕무용론’을 주장하는 것처럼 들릴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구원에 있어서 도덕은 쓸모가 없습니다. 도덕과 윤리는 단 1%라도 구원을 가능하게 하는 효능이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기독교인이 도덕과 윤리를 말하는 것은 구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 받은 이후에 신자의 삶에서 나타나야 할 덕목과 실천으로 이해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신자의 겸손도 그 중의 하나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고전 5:5절의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는 구절을 인용해서 한번 구원 받은 사람은 어떤 죄를 지어도 구원 받는다는 근거로 제시합니다.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사람은 육신으로 어떤 죄를 범하여도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도덕 무용론자’로 규정하기도 하지만 이들은 단지 도덕 무용론자들이 아니라 구원을 육신과 영으로 나누어 생각하는 이원론자들, 즉 영지주의 이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겸손이 믿음으로만 가능하다고 말씀드리는 것은 신자에게는 도덕이 필요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도덕과는 수준이 다른 세계에 존재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함입니다. 도덕과 윤리가 질서로 존재하는 세계가 아니라 믿음이 질서로 존재하는 세계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신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에게서는 당연히 도덕과 윤리의 모습을 볼 수 있지만 그것은 세상이 이해하는 수준의 도덕과 윤리가 아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도덕과 윤리에 환상을 갖고 있습니다. 세상이 도덕적이고 윤리적이 되면 살기 좋은 사회가 될 것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환상일 수밖에 없는 것은 사람은 도덕과 윤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포기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도덕과 윤리도 무시하고 짓밟는 것이 인간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자는 더욱 더 믿음의 시각으로 자신과 세상 보기를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9절에 보면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고 말씀합니다.

 

 

메시아에 대한 선지자의 예언인데, 예언 내용을 보면 장차 왕으로 오실 메시아는 겸손하여서 나귀 새끼를 타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여 바꾸어 보면 왕이라 할지라도 나귀 새끼를 타지 않고 말을 타면 교만하다는 뜻이 될 수도 있습니다.

 

 

왕은 누구나 말을 탑니다. 왕이 아니라 할지라도 돈과 힘이 있는 자라면 말을 탈 것입니다. 그런데 메시아가 왕으로 오셨으면서도 왕의 권위에 합당한 말을 타지 않고 나귀 새끼를 타는 것은 권위를 버림으로서 스스로를 낮추는 것이기에 겸손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이 이해하는 도덕과 윤리 수준의 겸손입니다.

 

 

하지만 말씀드린 것처럼 왕이 나귀를 타지 않고 말을 탔다고 해서 귄위적이며 도덕적이지 않고 교만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처럼 나귀 새끼를 타면 겸손이라고 하면서도 말을 탔다고 해도 교만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 도덕의 한계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도덕의 시각으로 이해하고 해석할 수 없다고 누누이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우리가 이해하는 겸손을 보여주기 위해서 나귀 새끼를 타신 것이라면 차라리 아무것도 타지 않고 걸어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어야 합니다. 굳이 나귀 새끼를 타실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현대의 시각에서는 나귀 새끼를 타신 것이 오히려 비난의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동물 학대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선지자는 왕으로 오신 메시아가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고 겸손하여서 나귀 새끼를 타신다고 말합니다. 즉 나귀 새끼를 타신 것이 공의가 되고 구원이 되며 겸손이라는 것입니다. 단지 나귀를 새끼를 타셨을 뿐인데 그것이 어떤 공의가 되고 구원이 되는 것일까요? 그리고 그것을 겸손으로 말하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나귀 새끼는 힘이나 영광을 연상할 수 없는 동물입니다. 오히려 보잘 것 없고 힘없음을 연상하게 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타셨다는 것은 왕이신 예수님이 가시는 길의 속성이 세상이 추구하는 힘과 영광과는 무관하며 오히려 외면당하는 보잘 것 없고 초라한 길임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이 바로 죄인 된 우리가 가야 할 길인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타심으로 보여주신 공의입니다.

 

 

만약 신자가 나귀 새끼를 타신 예수님을 보면서 보잘 것 없고 쓸모없는 자신이 세상에서 영광된 존재가 되고자 하고 힘을 얻고자 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원수된 것임을 깨닫는다면 그것이 겸손이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이 자신이 받아야 할 심판을 대신 받으시는 것임을 알고 그것을 예수님이 베푸신 은혜로 받아들이며 감사하게 되는 것이 구원인 것입니다.

 

 

10절을 보면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고 말합니다.

 

 

병거와 말과 전쟁하는 활이 있는 곳에 화평은 없습니다. 항상 충돌과 경쟁이 있을 뿐입니다. 자기 이름, 자기 영광을 추구하는 자로 가득한 것이 세상입니다. 이러한 세상에 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것은 병거와 활과 전쟁하는 황을 끊으시는 길로 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나의 힘과 영광을 얻기 위한 길이 아니라 오히려 그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되는 길로 가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세계에서는 겸손으로 인한 화평이 가능합니다. 자신을 심판 받을 존재로 여기고 예수님이 흘리신 피의 은혜가 충만과 만족이 되는 세계를 소망하는 사람들이 함께 하는 것이 믿음의 세계이기 때문에 화평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다스리는 세계의 질서는 겸손으로 말미암은 화평이며 이것이 교회의 질서로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마 11:28-30절을 보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런데 자기 목숨을 줄 많은 사람들이 모두 예수님 편에 있지 않은 반대자들입니다. 그런 자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셨다는 것은 예수님은 철저하게 자신을 위한 삶과 무관한 길로 가셨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을 위해 목숨을 내어 놓으신 그것이 예수님의 온유고 겸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 앞에서 좋은 신앙을 가진 훌륭한 사람이 되고자 하고 그런 사람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것 자체가 죄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알게 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허물이 있는 자 그대로 예수님께 나와서 심판이 당연한 죄인 됨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의 겸손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는 비판 받을 사람도, 비판할 수 있는 사람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용서를 누리는 관계로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믿음의 내용이 되고 묵상이 되고 생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용서를 누리는 관계로 함께 한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에게 겸손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십자가 구원 안에서 자신을 보는 것입니다. 신앙 좋고 훌륭한 나는 존재하지 않고 죄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을 내가 존재함을 보게 되면 죄인이라는 고백과 함께 세상과 다른 예수님이 가신 길에 참여되기를 소망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에 의한 겸손입니다.

 

Chapter 97

 

Faith and Lowliness

 

Rejoice greatly, O daughter of Zion; shout, O daughter of Jerusalem: behold, thy King cometh unto thee: he is just, and having salvation; lowly, and riding upon an ass, and upon a colt the foal of an ass.

And I will cut off the chariot from Ephraim, and the horse from Jerusalem, and the battle bow shall be cut off: and he shall speak peace unto the heathen: and his dominion shall be from sea even to sea, and from the river even to the ends of the earth. (Zechariah 9:9-10 KJV)

 

(Sermon)

 

'Faith and lowliness' means that to be lowly is only possible by faith, which could be interpreted that modesty has nothing to do with morality and ethics. I am sure many people will oppose to the statement. It might sound like 'claiming uselessness of morality.'

 

In fact, as far as salvation is concerned, morality is useless because there is no possibility for salvation in ethics and morality even a bit. Of course, many christians would say morality and ethics are not for salvation but for the life after they got saved, one of which is modesty.

 

Some say when one is saved, the salvation can't be nullified no matter what kind of evil acts one does by quoting 1st Corinthians 5:5, "To deliver such an one unto Satan for the destruction of the flesh, that the spirit may be saved in the day of the Lord Jesus." They say after getting saved by believing in Jesus, one remains in salvation with any sin in flesh. They could be viewed as people claiming 'uselessness of morality', but they should actually be viewed as people claiming dichotomy of salvation, severing flesh and spirit, that is the heresy, called Gnostics.

 

What I mean by saying to be lowly is only possible by faith is not to say we don't need morality but to say we are in another world, different from the moral world. Believers are the ones who are living in the world by the order of faith, not by the order of morality and ethics. Thus, although moral and ethical behaviors can be seen in believers, we should know what is seen in believers is not the same way that the world understands.

 

Most have fantasy with morality and ethics, believing that if people were moral and ethical, the world would be a better place to live. Yet, why it's only a fantasy is that the nature of man never gives up oneself to keep morality and ethics. Rather, our sinful nature ignores and destroys morality and ethics in order to keep ourselves. Therefore, believers ought to endeavor more and more to look at themselves and the world in the faith point of view.

 

In Verse 9, it says, "Rejoice greatly, O daughter of Zion; shout, O daughter of Jerusalem: behold, thy King cometh unto thee: he is just, and having salvation; lowly, and riding upon an ass, and upon a colt the foal of an ass."

 

This is a prophecy of the Messiah, saying He, the coming King, is as lowly as riding upon a foal of an ass. If I paraphrase it, keeping the literal meaning, it could be said that if the King rides on a horse, not a colt, He is a proud person, not modest.

 

Ever king rides on a horse. Even if one is not a king, one will ride on a horse if one is rich and powerful enough. Thus, many interpret this verse that putting oneself in the lowly position is modesty like the Messiah would ride on a foal, not a horse by disregarding his authority. This is what the world understands modesty at the level of morality and ethics.

 

However, even if a king rides on a horse, not a foal, as spoken earlier, we can't say the king is authoritative, immoral and proud. Likewise, we can't say the king is modest if he rides on a foal, either. This is the limit of morality. That's why I have told you many times the Bible can never be interpreted in the moral point of view.

 

If the Lord rode on a foal to show us His modesty, He should have just walked up to Jerusalem without any assistance. There wouldn't be any reason to ride on even a foal. Actually, it might be something controversial because it could be seen animal abuse in the modern society.

 

Prophet says the Messiah, who has come as the King, is just, having salvation, lowly and riding on a foal of a donkey, which means riding on a foal of a donkey is just and having salvation. How come only riding on a foal can be righteous and having salvation? Furthermore, why is it modesty?

 

A foal of a donkey can never be a symbol of power nor glory. Rather, it can be a symbol of weakness. Thus, His riding on a foal of a donkey shows us that the road for His work has nothing to do with power and glory that the world pursues and it is rather what the world hates and ignores. The road is where we, sinners, should walk. This is the righteousness that He showed us by riding on a fowl.

 

If a believer realizes that he is a mere enemy of God due to the fact that he, useless, is still pursuing his own glory and power in the world while looking at the Lord, riding on a foal of a donkey, we can say he is modesty. Then, if he comes to give thanks to God for the grace of the Lord, who received the judgement of God as the Substitute on the cross for his position, it is called salvation.

 

In Verse 10, it says, "And I will cut off the chariot from Ephraim, and the horse from Jerusalem, and the battle bow shall be cut off: and he shall speak peace unto the heathen: and his dominion shall be from sea even to sea, and from the river even to the ends of the earth."

 

As long as there are chariots and horses, there is no peace. There will alway be battles and competition. It is the world that there are full of pursuits of their own names and glory. In such world, the Messiah's riding on a foal to enter Jerusalem is to cut off the chariot, horse and battle bow. Therefore, 'believing in Jesus Christ' is to go to the way where we have to put aside our own names and glory.

 

That's how the peace is possible by modesty. Being aware that one deserves to be judged by God, one is with others who long for the world, full of richness and satisfaction of the grace of the blood of Jesus Christ, which is the world of faith. Thus, the order of the world, reigned by the Lord, is the peace by lowliness and it is the order, which the church should present to the world.

 

In Matthew 11:28-30, it says, "Come unto me, all ye that labour and are heavy laden, and I will give you rest. Take my yoke upon you, and learn of me; for I am meek and lowly in heart: and ye shall find rest unto your souls. For my yoke is easy, and my burden is light."

 

Jesus came to the world to give His life a ransom for many, but all the people, to whom He would give His life, were His opponents. The fact that He gave His life to such means that He walked His life, having nothing to do with Himself. It is His meekness and lowliness that He died on the cross for the people who crucified Him.

 

Before His meekness and lowliness, we can see our sinful nature in ourselves trying to be acknowledged and respected by others. Thus, what we can do as ones who have come to know Him is to confess that we deserve the judgement of God as transgressors as we are. This is the lowliness of a believer in Christ.

 

That's why there is no one to be criticized nor to criticize in Christ. It is because all are in the relationship to appreciate the love and forgiveness of God. I hope this should be what is kept in you mind as your meditation all the time. In other words, I pray that whenever we are gathered, we won't forget that we are in the fellowship of God's love and forgiveness.

 

Lowliness is possible for you when you see yourself in the salvation at the cross. Only then, will you desire to participate where He walked, of which the world can't even think, in the awareness that you deserve nothing but the judgement in your sinful nature. This is the lowliness by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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