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2011.12.18 13:26

(교회 18강) 교회와 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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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 3:2http://onlycross.net/videos/church/hab-0302.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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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2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설교>


현대 교회에 있어서 부흥의 문제는 외면할 수도 무관심할 수도 없는 민감한 사항입니다. 부흥이 곧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은혜 주심의 증거로 제시되고 있으며 목사에게는 자신의 목회 능력과 열심을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열매이기에 오직 부흥을 중심으로 교회의 모든 일이 진행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대다수의 교회가 부흥을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라는 사명으로 생각하면서 부흥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하나님의 뜻이라 여기고 정당화하는 세태는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성경을 살펴봐도 교회 부흥을 하나님의 뜻으로 말하는 것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물론 부흥을 말하는 사람들도 성경 구절을 제시하면서 부흥이 하나님의 뜻이며 예수님이 맡기신 사명인 것처럼 말하지만 부흥의 당위성을 말하기 위해 인용된 성경들은 모두 교회 부흥과는 관계가 없으며, 성경 해석 또한 부흥을 주장하기 위해 말을 꿰맞춘 것일 뿐 올바른 해석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부흥의 당위성을 주장하기 위해 많이 사용하는 구절 중의 하나가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는 것이지만 여기서 말하는 ‘내 집’의 의미가 예배당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신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알 수 있는 상식적인 내용입니다. 설사 신학을 공부하지 않은 일반 교인이라고 해도 조금만 성경 지식이 있고 상식이 있다면 이 구절을 사람을 강권해서 데려다가 예배당을 가득 채우라는 뜻으로는 해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부흥이라는 유혹에서 허우적거림으로써 이미 성경에 대한 안목이 닫혀 버린 상태이기 때문에 성경에서 진리를 깨닫고 진리를 전하려고 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성경을 이용하는 것만 있을 뿐입니다.

 

 

오늘 본문에 대한 이해도 다르지 않습니다. 본문에 보면 성경에 단 한번 ‘부흥’이라는 용어가 등장합니다. 그래서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라는 이 구절을 근거로 해서 교회 부흥이 마치 주의 일인 것처럼 말하기도 하지만, 이것이야 말로 성경의 본 뜻을 무시한 채 오로지 자신의 말을 하기 위해 성경을 이용하는 인간의 욕망을 드러내는 것일 뿐입니다.

 

 

또한 이상한 것은 교회 부흥이 하나님의 뜻이고 교회의 사명이라면 신약성경에서 사도들은 왜 교회 부흥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을까요? 오늘날 여기저기서 외치고 있는 것처럼 ‘살아있는 교회는 부흥하는 교회입니다’ ‘성령이 역사하는 교회는 부흥합니다’ ‘부흥은 교회의 사명이며 하나님의 뜻입니다’라는 말을 전혀 외치지 않았을까요? 그 이유는 사도들이 목숨을 다해 전했던 복음은 교회 부흥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즉 복음이 지향하는 것은 생명이지 교회 부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박국 선지자는 어떤 의미로 본문의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하박국 선지자가 활동할 당시에 유다는 앗수르에 의해서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의 백성인 유다가 이방나라에 의해 고통을 받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항변을 한 선지자로 유명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선지자에게 하나님은 화를 당할 자가 누구인가에 대해 말씀하셨고, 하박국 선지자가 깨닫게 된 것은 유다라고 해서 고통을 당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유다 역시 하나님이 말씀한 화를 당할 자의 기준에 해당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한 화를 당할 자는 자기 소유가 아닌 것을 모으는 사람,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사람, 이웃을 부끄럽게 하는 사람, 우상을 섬기는 사람 등이었습니다. 사실 이 기준에 해당되지 않을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하나님을 믿든 믿지 않든 화를 당할 자의 기준에서 예외일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선지자가 본문의 기도를 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본문의 내용에서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선지자가 말하는 부흥은 유다의 부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유다라는 한 국가의 부흥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기 때문에 본문의 ‘부흥’이라는 단어를 교회 부흥으로 연결하여 말하는 것은 성경의 앞뒤의 내용을 전혀 살피지 않고 오로지 본문 한 구절만을 가지고 자기 구미에 맞도록 각색하여 말하는 수준일 뿐입니다.

 

 

선지자가 말하는 부흥은 유다의 부흥도 아니고 사람의 일의 부흥도 아니라 주의 일의 부흥입니다. 따라서 선지자가 말하는 주의 일이 유다가 강대국이 되는 것이 아니고, 오늘날 교인수가 늘어가는 것도 아니라면 이 구절을 교인 수가 늘어가는 교회 부흥의 의미로 해석을 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주의 일은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라는 내용에서 그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말아달라는 것은 긍휼을 베푸심으로 진노를 거둬 달라는 기도가 아닙니다. 만약 진노를 거둬 달라는 의미로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하나님의 긍휼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진노를 피하는 것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긍휼에 마음을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다가 이 같은 하나님의 긍휼을 알기를 원하는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구원을 유다이기 때문에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으로 여기지 않고 유다 또한 하나님의 진노가 당연하지만 하나님의 긍휼이 유다를 붙들고 있음을 배우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지자가 말하는 주의 일이며 이런 의미로 주의 일을 수년 내에 부흥케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선지자가 생각하는 주의 일의 부흥은 긍휼의 하나님을 알게 되고 긍휼을 구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고침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여러분께 있어야 하는 참된 부흥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부흥은 있지만 그것은 교인 수가 늘어가는 부흥이 아니라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이 긍휼의 하나님을 알아가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고 긍휼로 감사하는 자로 고침 받아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심령의 부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지자가 말하는 주의 일은 지금도 여러분께 계속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을 하나님이 진노의 자리로 끌어내며 그 자리에서 긍휼의 하나님을 만나게 합니다. 육신의 편안함을 위해서 함께 하고, 세상의 복으로 가득 넘치게 해주는 하나님이 생명이 아니라 진노가 당연한 나 같은 자를 건지시기 위해서 독생자를 보내신 긍휼의 하나님이 생명이심을 알게 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행해지는 주의 일이며 이 일로 인해서 하나님이 긍휼을 감사하게 되는 것이 주의 일의 부흥입니다. 우리가 구할 것은 바로 이 같은 부흥인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로 나오면서 잊기 쉬운 것은 나 또한 진노에 해당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나도 ‘화 있을진저’에 해당된다는 것을 잊어버리기 때문에 하나님의 긍휼로부터 마음이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통과 어려움이 있으면 하박국처럼 항변하고 원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를 진노의 자리로 나오게 하여 나의 실체를 제대로 보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이 우리의 죄의 깊이를 보게 하며 우리에게 당연한 것은 구원이 아니라 진노이며 심판임을 보게 합니다. 그리고 심판이 당연한 우리가 구원에 속하게 된 것이 긍휼로 인한 것임을 알게 하셔서 하나님의 긍휼을 감사하고 찬송케 하시는 것이 주의 일입니다.

 

 

하나님이 과연 교인 수에 관심을 두시겠습니까? 교회 재정에 관심을 두시겠습니까? 주의 일이라는 것이 교인 수를 늘리고 재정이 늘게 하는 것이겠습니까?

 

 

교인 수를 늘리는 것이 정말 주의 일이라면 모든 교회가 동일하게 숫자가 늘어가는 것이 옳습니다. 모든 교회가 동일한 규모로 부흥하는 것이 공평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도 교회 부흥을 주께서 원하시는 주의 일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타당한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1인 1 전도하기’ ‘배가 운동’ ‘태신자 맺기’ 등등 부흥을 목적으로 하는 수많은 일들을 보면 성경에 관심이 없는 현대 교회 실상이 참으로 심각한 지경에까지 도달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교회 부흥은 단지 인간을 만족케 할 뿐이지 하나님의 기쁨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독생자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긍휼과 자비를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으로 인해 감사하고 찬송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이 같은 신자로 세워 가시기 위해 일하십니다. 이러한 주의 일로 인해서 우리는 긍휼을 알고 감사하는 심령으로 고침 받으며 자라갑니다. 이것이 주의 일의 부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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