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20 15:46

(122강) 늘 드릴 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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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출 29:38-46

출 29:38-46http://onlycross.net/videos/exo/exo-293846.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38.네가 제단 위에 드릴 것은 이러하니라 매일 일 년 된 어린 양 두 마리니

39.한 어린 양은 아침에 드리고 한 어린 양은 저녁 때에 드릴지며

40.한 어린 양에 고운 밀가루 십분의 일 에바와 찧은 기름 사분의 일 힌을 더하고 또 전제로 포도주 사분의 일 힌을 더할지며

41.한 어린 양은 저녁 때에 드리되 아침에 한 것처럼 소제와 전제를 그것과 함께 드려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여 여호와께 화제로 삼을지니

42.이는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 회막 문에서 늘 드릴 번제라 내가 거기서 너희와 만나고 네게 말하리라

43.내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리니 내 영광으로 말미암아 회막이 거룩하게 될지라

44.내가 그 회막과 제단을 거룩하게 하며 아론과 그의 아들들도 거룩하게 하여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며

45.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거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니

46.그들은 내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서 그들 중에 거하려고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줄을 알리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설교>

하나님이 인간을 보시는 것과 인간이 인간을 보는 시각은 다릅니다. 따라서 인간의 시각으로 인간을 판단한다면 필히 인간에 대한 오류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오류는 믿음의 왜곡으로 이어집니다. 인간을 알지 못하고서 믿음에 대한 바른 이해는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인간을 어떻게 보시는가에 대한 문제는 신자가 소홀히 하거나 놓칠 수 없는 중요성이 있습니다.

 

 

6:3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6:3)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에 따른다면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즉 하나님께 기쁨이 될 수 없는 악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제가 되어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고, 이러한 이해에서는 신자가 믿음 생활을 잘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사고방식은 통용될 수 없는 것이 됩니다. 이렇게 믿음에 대한 내용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반으로 해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이 가진 상식과 종교성에 의해서 믿음을 이해하기 때문에 오류가 발생하는 것이고 믿음 아닌 믿음에 강요당하고 강요하는 결과만 초래합니다. 결국 믿음을 잘 알고 있고 이해하고 있다는 잘못된 자기 인식이 참된 믿음의 현실을 훼방하고 혼란스럽게 하는 원인이 된다는 것을 지금의 기독교인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은 영원히 인간과 함께 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45,46절에서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거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니 그들은 내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서 그들 중에 거하려고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줄을 알리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니라는 말씀을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이 육신이 되어 영원히 함께 하지 않으신다고 하신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이스라엘 자손 중에 거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되겠다고 하시느냐?’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육신의 상태에 있지 않은 특별한 인간이기 때문일까요? 이스라엘은 육신이 아닌 특별한 인간이어서 그들 중에 거하시는 것이면 이스라엘 민족을 데리고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나라를 세우시면 됩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면 되기 때문에 예수님이 오실 이유도 없습니다.

 

 

이스라엘 역시 아담 안에 있을 뿐이고 육신으로 존재하는 인간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할 수 없는 악한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러한 이스라엘 중에 거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되겠다고 하신 것은 이스라엘의 인간됨이 달라졌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실 수 있는 다른 무엇인가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것을 아는 것이 이스라엘을 택하여 부르신 이유를 아는 것이고 오늘의 신자 됨과 믿음의 내막과 내용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

 

 

42,43절을 보면 이는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 회막 문에서 늘 드릴 번제라 내가 거기서 너희와 만나고 네게 말하리라 내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리니 내 영광으로 말미암아 회막이 거룩하게 될지라고 말씀합니다.

 

 

회막문에서 늘 번제를 드리라 하고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겠다고 하신 것은 제사가 곧 하나님이 인간을 만나시는 거룩한 자리가 된다는 뜻입니다. 즉 제사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만나기 위해서 세우신 규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제사가 있게 됨으로서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게 된 것이기 때문에 제사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곧 믿음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으로 연결됩니다. 왜냐하면 정결한 제물의 죽음이 있는 제사는 예수님의 십자가로 완성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사의 의미를 모르고서 십자가를 안다고 할 수 없고, 십자가를 알지 못한 믿음은 믿음일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교회 생활의 열심으로 믿음을 판단하고, 예수님이 흘린 피가 죄를 용서한다는 사실만 받아들이면 십자가를 믿는 것으로 인정합니다. 제사에 담겨진 하나님의 세계를 알지 못하면서도 십자가를 믿는다는 고백 아닌 고백이 있다는 이유로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되는 것입니다.

 

 

10:3,4절을 보면 그러나 이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고 말합니다.

 

 

제사는 죄를 기억하게 합니다. 그렇다면 본문의네가 제단 위에 드릴 것은 이러하니라 매일 일 년 된 어린 양 두 마리니 한 어린 양은 아침에 드리고 한 어린 양은 저녁 때에 드릴지며”(38,39)라는 말은 매일 같이 죄를 기억하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매일 같이 제사하며 하나님께 정성과 헌신을 바치라는 의미가 아닌 것입니다.

 

 

죄를 기억하라는 것은 죄가 되는 행동이 있을 때 그 사실을 기억하고 회개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이 자신이 한 행동을 기억하고 돌이키며 반성하고 회개하는 것은 제사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제사가 없는 이방인이라 해도 자기 행동에 대한 반성은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양심이란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제사를 통해서 죄를 기억하게 하시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 통념의 죄가 아닌 다른 죄, 다시 말해서 죄로 여기지 않는 죄를 드러내어 알게 하는 것이 제사라는 뜻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은혜를 받고 믿음이 있으면 그것은 열심으로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은혜를 말하면서도 기도와 봉사와 헌신에 열심이 없는 것을 이상히 여깁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죽은 믿음으로 단정합니다. 하지만 은혜를 받았다는 것은 인간의 모든 가능성을 부인하게 됨을 뜻합니다. 선을 행할 수 없는 인간이 하나님께 나오게 된 것이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믿음 또한 인간의 행함과 의와 선함을 부인하게 합니다. 예수님의 피의 공로와 자신을 버리신 행함과 의로움으로 죄가 용서되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여김 받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행함을 선악으로 구분하면서 선한 행동이 있는 것을 믿음이 있는 것으로 규정하는 것이야 말로 십자가를 알지 못하는 것이고, 은혜를 멸시하고 예수님의 피를 믿지 않는 불신앙이며 죄가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제사를 통해서 드러나는 죄를 기억하지 않는 결과입니다.

 

 

하나님은 매일 아침, 저녁 일 년 된 어린양으로 제사를 드리라고 합니다. 매일 어린양 두 마리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오며 죄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죄를 기억하게 하시고 죄가 어떻게 해결되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존재하게 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매일 같이 어린양의 두 마리를 희생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매일 양 두 마리로 제사를 드렸다고 해서 이스라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죄를 기억하고 심판을 받아야 할 죄를 자신들에게 묻지 않고 죄 없는 어린양에게 물으시는 하나님의 용서와 긍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이스라엘인 것입니다. 이것이 늘 번제를 드리라 하시고 거기서 이스라엘과 만나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취지입니다.

 

 

매일 같이 양 두 마리로 제사하며 죄를 기억해야 한다면, 그것은 제사하고 제물을 바치는 인간의 행위가 죄를 없이 하지 못하고 의가 되지도 않는다는 뜻입니다. 어떤 행동이 있다 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죄가 있는 자로 설 뿐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자신의 모든 것에 선한 가치나 가능성을 두지 않아야 할 이유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이 신앙생활을 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를 알지 못한 인간의 헛된 자기 결단이고 환상입니다. 인간이 생각하는 신앙생활이 신앙이 아닐뿐더러 그 조차도 자기 뜻대로 잘할 수 없음을 모릅니다. 인간이 지푸라기처럼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에 무지한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불리하다 생각되면 평소에 신앙적인 행동으로 여겼던 것도 외면하는 것이 인간이며 자기 자신임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죄를 기억하게 되면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 안에서 의로움이 되어 우리가 거룩한 자로 여김 받고 생명에 속한 자가 되었음을 믿게 됩니다. 이것이 성령이 오셔서 죄를 깨닫게 하시는 이유입니다. 예수의 피를 믿게 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영광에 있게 된 모든 것을 예수님이 홀로 다 이루셨음을 믿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 믿음이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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