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6.09 16:18

(75강) 다른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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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20:3http://onlycross.net/videos/exo/exo-2003.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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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3.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설교>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에 대해 불평한다면 그 이유는 자신의 일을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의 일을 도와주신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현실은 좋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실상, 인간으로서의 본질에 대해서는 소경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생명에 관계된 하나님의 사람으로 존재하기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하나님은 그들을 광야로 데려가십니다. 애굽에서 섬겼던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의 신이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시고 야곱을 애굽으로 가게 하신 그들이 알지 못한 새로운 하나님을 만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광야로 인해 이스라엘에게서 드러난 것은 죄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조금씩 하나님의 깊으신 뜻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깊은 곳에 자리한 죄를 밝혀내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이스라엘이 전혀 의도하지 않는 길로 데려가십니다.

 

 

이스라엘이 살았던 애굽은 광야가 없는 곳입니다. 비록 애굽의 종이라는 신분이었지만 광야가 없었기에 마실 물이나 먹을 양식으로 인해 죽음의 위기를 겪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광야에서는 죽음의 위기를 느껴야 했었고 그로 인해 애굽을 그리워하기까지 합니다. 즉 광야가 없는 환경을 그리워 한 것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민족이 지금의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은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절대적 사실로 다가옵니다.

 

 

인간은 죽음의 존재라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에게서 죽음의 흔적을 보기보다는 축복의 조건만 찾습니다. 행여 축복의 조건이 미흡하다 싶으면 그 조건에 자신을 맞추는 일에 힘씁니다. 우리의 눈에 제아무리 완벽한 조건을 갖춘다 해도 하나님에게는 단지 죽음의 존재로 간주된다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이스라엘을 광야로 데려가시는 새로운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이스라엘이 아니라 애굽과 동일하게 심판의 존재인 이스라엘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이 문제는 지금의 기독교인에게도 동일하게 자리합니다. 수십 년 교회를 다니며 성실하게 교회 생활하고 착하게 살아온 나로만 기억할 뿐이지 복 대신 저주를 받아야 할 나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누구인가를 십계명으로 보게 하십니다.

 

 

십계명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은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3절)입니다.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는 것은‘오직 하나님만 신이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만 신이시라는 것을 굳이 계명으로 세울 필요가 있을까요? 이스라엘이든 우리든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신으로 섬기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은 일반적으로 하나님만 신으로 인정합니다. 이것이 유일신 사상입니다. 하나님을 신으로 믿으면서도 미심쩍어 또 다른 신을 찾아 섬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혹 그런 사람이 있다 해도 극소수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일계명이 아니었다면 하나님 외에 가능하면 더 많은 신을 섬겼을까요? 설령 그렇다 해도 하나님은 ‘나만 신으로 섬겨라’는 의미로 일 계명을 주신 것은 아닙니다.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것은 인간의 성정 자체가 성경이 계시하는 하나님을 참된 하나님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족을 따라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즉 인간은 자기 취향에 맞는 신을 만들어 내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록 하나님을 입에 달고 산다 해도 그 속에 두고 있는 신을 끄집어 내 보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그 하나님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언약을 세우고 언약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오로지 믿는 자를 도우면서 광야가 없는 인생으로 데려가시는 하나님이 아닌 하나님이라는 것이 드러납니다. 그것으로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을 믿을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 증명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경에 계시하고 있는 하나님을 아무 불만 없이 하나님을 믿을 수 있습니까? 욥에게 고난이 있게 하시는 분이 성경에서 만날 수 있는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그 고난이 욥을 위한 것이라면 과연 그 고난을 하나님의 정당한 일로 받아들이면서 나 또한 고난으로 인도되기를 소원할 수 있습니까? 그러한 하나님은 분명 우리 취향에 맞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다른 신은 인간이 자기 취향을 따라 자기를 위해 상상해 낸 신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평생을 하나님을 믿었다 해도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신을 믿은 사태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신18:9-11절에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거든 너는 그 민족들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지 말 것이니 그의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자나 점쟁이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희 가운데에 용납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용납하지 말아야 할 것은 가나안 민족의 가증한 행위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는 가증한 행위는 표면적으로는 미신을 언급한 것 같지만 그 본질로 들어가면 자신의 미래의 평안과 안녕을 추구하는 종교 세계가 있습니다.

 

 

아들, 딸을 제물로 바쳐서 신에게 정성을 보여주는 것, 점쟁이 무당 박수, 이런 사람들을 찾는 이유는 자기 미래의 길흉을 알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미래가 흉하다면 그것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그들에게 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증한 행위로 말씀하는 것은 이스라엘을 책임지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주시는 땅에 들어간 것은 이스라엘의 현재가 미래에 영향을 주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의 현재는 항상 죄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가 미래에 영향을 주었다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 들어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심판이 그들의 현재가 되었을 것입니다. 때문에 길흉을 말하는 자를 찾는 행위는 심판의 존재인 자신에게 함께 하시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는 은혜를 멸시하는 가증한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땅에 들어갔다는 것은 이스라엘로는 들어갈 수 없는 땅에 들어간 것이고 받을 수 없는 것을 받은 것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은혜는 죄라고 하는 그들의 현재로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것입니다.

 

 

그런데 은혜의 땅에 들어가게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미래가 불안하여 길흉을 말해주는 자를 찾아 가는 것이 은혜에 대해 어떤 행위인가를 생각해 보면 가증한 행위로 말씀하는 이유를 알 것입니다. 이것을 염두에 두고 그리스도인에 대해 생각해 보면 현대의 교회의 심각성이 무엇인지가 드러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 부르심으로 거룩한 성도되게 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현재 실상을 들여다보면 도무지 예수 안의 세계에 어울리지 않는 자들일 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피로 모든 더러움과 악함을 씻으시고 거룩하다 선언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현재를 보지 않으시고 예수님의 피를 보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 안에서 우리의 미래는 영원한 영광으로 확정되었습니다. 이것은 흔들리지 않는 사실입니다. 세상에서 부요하든 가난하든 상관없이 신자의 미래는 영광이고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래서 신자에게 흉한 일은 없습니다. 교회에서는 이 사실이 선포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에서의 현재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복을 주고 문제를 해결해주는 다른 신을 찾는 것입니다.

 

 

호 13:4절에서 “그러나 애굽 땅에 있을 때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나 밖에 네가 다른 신을 알지 말 것이라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외에는 구원자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믿는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해도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이라면 구원과 상관없는 종교의 길을 갈 뿐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성경을 통해서‘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고 배우는 일에 전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현실에서 여러분이 상상했던 하나님이 아닌 새로운 하나님을 만나셔야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백성의 모든 죄를 독생자 예수의 피로 용서하시고 생명의 나라로 데려가십니다. 그 하나님만이 참된 하나님입니다. 그 외에 여러분의 취향을 따라 상상해낸 하나님은 다른 신일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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