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5.20 16:42

(27강) 첫째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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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7:14-19http://onlycross.net/videos/exo/exo-071419.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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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4.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의 마음이 완강하여 백성 보내기를 거절하는도다

15.아침에 너는 바로에게로 가라 보라 그가 물 있는 곳으로 나오리니 너는 나일 강 가에 서서 그를 맞으며 그 뱀 되었던 지팡이를 손에 잡고

16.그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왕에게 보내어 이르시되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나를 섬길 것이니라 하였으나 이제까지 네가 듣지 아니하도다

17.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니 네가 이로 말미암아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볼지어다 내가 내 손의 지팡이로 나일 강을 치면 그것이 피로 변하고

18.나일 강의 고기가 죽고 그 물에서는 악취가 나리니 애굽 사람들이 그 강 물 마시기를 싫어하리라 하라

19.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에게 명령하기를 네 지팡이를 잡고 네 팔을 애굽의 물들과 강들과 운하와 못과 모든 호수 위에 내밀라 하라 그것들이 피가 되리니 애굽 온 땅과 나무 그릇과 돌 그릇 안에 모두 피가 있으리라

 

 

<설교>

구원받는 사람과 구원받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겠지만 구원받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시는 것이 다릅니다. 다시 말해서 내어 버려두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함께 하심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대개의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자기중심으로 해석합니다. 나를 구원하시고 복주시기 위해서라는 것이 함께 하심에 대한 보편적 이해일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함께 하심에 대한 그러한 이해가 애굽의 신에 대한 사고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신에 대한 애굽적 사고방식은 자기로부터 출발합니다. 자기중심적인 사고가 애굽적 사고방식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자기중심적으로 이해한다면 애굽적 사고방식에 대한 이해로 전락됩니다. 결국 구원 받은 사람이나 구원받지 못한 사람의 신에 대한 이해에 차별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과 동일시하는 이유입니다.

 

 

17,18절에서“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니 네가 이로 말미암아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볼지어다 내가 내 손의 지팡이로 나일 강을 치면 그것이 피로 변하고 나일 강의 고기가 죽고 그 물에서는 악취가 나리니 애굽 사람들이 그 강 물 마시기를 싫어하리라 하라”고 말씀하는 것처럼 애굽에 재앙이 시작되고 첫째 재앙이 나일 강이 피로 변하는 것입니다.

 

 

나일 강만 피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강들과 운하와 못과 모든 호수의 물까지 피로 변하고 심지어 애굽 온 땅과 나무 그릇과 돌 그릇 안에까지 모두 피가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애굽에 마실 물이 없는 재앙이 내린 것입니다.

 

 

애굽에 이 재앙이 내릴 때 이스라엘 백성은 어떤 태도를 취했을까요? ‘우리를 괴롭히더니 꼴좋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하신 일을 박수를 치며 환영했을까요? 애굽사람에게만 국한되는 재앙이었다면 재앙을 좋아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물이 피가 되는 재앙은 애굽의 온 땅에 내려졌고 당연히 애굽 땅에 거주하고 있는 이스라엘도 재앙으로 인한 고통을 고스란히 겪어야 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도 물이 피가 되는 상황을 좋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구상에는 수많은 자연재해가 발생합니다. 인도네시아는 강한 쓰나미로 인해서 약 30만 명이 사망했고,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강한 지진으로 인해 수만 명이 목숨을 잃는 재해를 겪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재해에 대해 어떤 목사는 우상을 많이 섬기기 때문에 하나님이 내리신 심판이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아마 그런 생각을 하는 기독교인이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애굽적 사고방식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재앙이 없다는 식의 발상이야 말로 애굽이 갖고 있는 신에 대한 생각과 다르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재해 속에 하나님을 믿는 자신이 포함되어 있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그래도 재해를 우상을 섬긴 것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말하면서 ‘하나님 잘하셨습니다’하고 박수를 칠까요? 그럴 사람은 없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재해에 포함되어 고통을 겪어야 하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할 것입니다.

 

 

애굽의 재앙도 세상에서 발생하는 재해도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애굽의 사고방식으로 존재하는 애굽과 다를 바 없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은 신자를 세상의 재해로부터 지켜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파리 재앙부터는 애굽과 이스라엘이 구분됩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함께 하시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지켜주기 위한 의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만약 이스라엘을 지켜주기 위한 것이라면 처음의 재앙에서부터 구별되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재앙으로부터 구별되지 않은 것은 말씀드린 것처럼 이스라엘도 애굽처럼 재앙을 받아야 할 존재임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여러 재해로부터 신자가 구별되지 않는 것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비록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인 신자의 신분으로 존재하지만 실상은 구원될 수 없는 심판의 존재라는 사실에서는 세상과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재해를 겪지 않아야 할 이유와 명분이 우리에게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파리재앙부터 이스라엘과 애굽을 구분하시는 이유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그것은 모든 사람이 심판을 받아야 하는 존재이지만 심판에서 건져냄을 받은 사람이 신자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구별의 의미입니다.

 

 

신자는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하나님이 택한 거룩한 백성을 그리스도의 피로 건져 내시고 심판에 속한 자들과는 다른 길을 가도록 새로운 마음을 주시고 그 길로 붙들어 인도해 가시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으로 구원이 가능함을 믿는 것이지 삶의 평안과 복을 기대하고 믿지 않습니다. 이들이 바로 하나님의 함께 하심에 의해서 존재하게 된 거룩한 백성이며 이스라엘인 것입니다.

 

 

애굽의 재앙은 물이 피가 되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이 재앙에는 우리가 생각해야 할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 피로 시작한 재앙은 피로 끝납니다. 열 번째 재앙이 애굽에 처음 태어난 모든 것이 죽임이 당하는 것인데 그 재앙에서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집만이 죽음에서 건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4장에서 모세를 바로에게 보낼 때 보여주신 세 가지 이적에서 세 번째 또한 나일 강 물이 피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애굽에 내려진 재앙의 중심에는 피가 흐른다는 생각을 해볼 수도 있습니다.

 

 

피는 예수님이 흘리신 십자가를 생각하게 하지만, 성경에 등장하는 가인이 아벨을 살해한 최초의 피 사건 또한 간과할 수 없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가인의 살인은 죄로 인한 것입니다.

 

 

예수님 또한 죄로 인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따라서 애굽 전체가 피로 가득해진 것은 애굽이 곧 죄로 가득함을 보여주는 의미가 아닌가 생각 됩니다. 그리고 애굽 안에는 이스라엘도 속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이 피로 변한 것에서 생각할 수 있는 또 하나는 노아 시대의 홍수 심판입니다. 물로 인한 심판이 끝나고 방주에서 나온 노아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정결한 짐승을 잡아서 제사 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으신다는 언약을 세웁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죄로 인해 대신 피 흘려 죽은 제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재앙을 겪는 이스라엘도 애굽도 재앙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읽을 능력이 없습니다. 괴로움과 고통으로 인해 불평하고 싫어하는 모습만 보일 뿐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나약함이고 실상인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보면 이스라엘을 물이 피가 되는 재앙이 포함시킴으로써 이스라엘의 실상으로 드러내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물이 피로 변하는 것을 애굽의 요술사들도 흉내 냅니다. 그것을 본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우리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따라서 아론의 한 일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으로만 가능한 구원에 인간의 행함을 끼어 놓고자 하는 것이야 말로 지극히 애굽적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23절에 보면 “바로가 돌이켜 궁으로 들어가고 그 일에 관심을 가지지도 아니하였고”라고 말합니다. 애굽 온 땅의 물을 피가 되게 하는 재앙에 대한 바로의 반응입니다. 애굽의 요술사도 한다는 것 때문에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하며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의 완악입니다.

 

 

인간은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기도의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기도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결국 기도한다고 하지만 기도를 흉내 내는 수준일 뿐입니다.

 

 

모든 관심이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로만 향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피의 사건의 주범이라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행한 일을 자랑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실상에 눈을 뜬 신자는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함께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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