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6.10 14:04

(30강) 셋째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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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8:16-19http://onlycross.net/videos/exo/exo-081619.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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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6.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에게 명령하기를 네 지팡이를 들어 땅의 티끌을 치라 하라 그것이 애굽 온 땅에서 이가 되리라

17.그들이 그대로 행할새 아론이 지팡이를 잡고 손을 들어 땅의 티끌을 치매 애굽 온 땅의 티끌이 다 이가 되어 사람과 가축에게 오르니

18.요술사들도 자기 요술로 그같이 행하여 이를 생기게 하려 하였으나 못 하였고 이가 사람과 가축에게 생긴지라

19.요술사가 바로에게 말하되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 하였으나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게 되어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설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시기 전에 애굽에 재앙을 내리십니다. 그리고 본문에 등장하는 세 번째 재앙까지는 이스라엘도 예외 없이 재앙으로 인한 고통을 겪게 합니다.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입장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이지만 우리를 이스라엘로 간주하고 애굽의 재앙을 생각하게 되면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당시 상황에서 여러 가지를 계산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이스라엘을 나오게 한 다음 애굽을 쳐서 완고한 바로를 심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 하나는 처음부터 이스라엘을 제외한 애굽에 강력한 수준의 재앙을 내려서 무너뜨린 뒤에 이스라엘을 나오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이것이 하나님의 강력한 능력을 보여주는데 효과가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인간 입장에서 인간을 위한 인간 중심의 생각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면 나에게 더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하나님이 행하시는 방식에 불만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하시면’라는 자기 의견을 하나님께 제시할 수 없습니다. 이유는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 자기 의견, 자기 생각 자체가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자기를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모세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싫어했던 것도 동일한 이유입니다. 노동이 가중되어 더 힘들어진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으로 드러나는 것은 이스라엘 또한 애굽에 속해서 애굽의 속성으로 살아가는 애굽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 재앙까지 애굽과 동일하게 재앙의 고통을 겪게 하신 것이 그것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다시 말해서 재앙은 인간의 죄를 드러내고 그 죄가 자신에게 있음을 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애굽의 첫째 재앙은 나일강 물이 피가 되게 하신 것이고 두 번째는 나일강에서 개구리가 땅에 올라오게 하신 것이고 세 번째 재앙은 티끌을 이가 되게 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 생존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는 물과 땅을 치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애굽에게는 풍요의 자랑이었던 나일강이 피가 됨으로써 풍요는 사라지고 고통만 남게 됩니다. 개구리가 땅에 올라오고 티끌이 이가됨으로써 그들을 풍요롭게 해주는 땅 역시 고통만 남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 종으로 지내면서 나일강이 있는 애굽 땅이 부러웠을 것입니다. 강과 땅으로 인해 누리는 부요를 바라보면서 자신들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의 약속이 있다는 사실은 잊어버렸을 것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생존의 진정한 근본은 물과 땅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보여주는 것을 재앙의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 존재할 때는 이스라엘과 애굽이라는 것에 차이가 없습니다. 그것이 애굽의 재앙을 이스라엘도 동일하게 겪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네 번째 재앙부터는 이스라엘이 구별됩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애굽에서 나오도록 조치될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과 애굽이 다르다는 차이는 하나님에 의해서 발생한 것이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붙들린 신자는 자기 스스로 자신의 다른 점, 차이를 보여주려고 할 이유가 없게 됩니다. 다만 애굽과 동일하게 심판의 대상일 뿐인데 하나님이 애굽에서 건져주심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에 거하게 된 것을 감사하는 것이 신자 됨인 것입니다.

 

 

그런데 18절에 보면 “요술사들도 자기 요술로 그같이 행하여 이를 생기게 하려 하였으나 못 하였고 이가 사람과 가축에게 생긴지라”고 말합니다.

 

 

애굽의 요술사들은 강물이 피가 되게 하는 일을 흉내 냈고 개구리가 땅에 올라오게 하는 것도 흉내 내었습니다. 그런데 티끌을 이가 되게 하는 것은 왜 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다른 재앙에 비해서 어려운 일이기 때문일까요?

 

 

물을 피가 되게 할 수 있을 정도면 티끌을 이가 되게 하는 것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능력 부족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들로 하여금 ‘할 수 없음’을 알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술사들은 자신들이 티끌을 이가 되게 하는 일은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바로에게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라고 말합니다. 요술사들이 평소 같으면 하나님의 권능을 말하지도 인정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모세와 아론이 행한 것처럼 지팡이를 뱀이 되게 하고 물을 피가 되게 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과시했을 것입니다. 그런 그들이 이가 생기게 하지 못함으로 하나님의 권능을 말하게 된 것입니다.

 

 

티끌을 이가 되게 한 것이 하나님의 권능이라면 물이 피가 되고 개구리가 땅에 올라온 것까지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요술사들이 모세와 아론의 일을 흉내 내었다 해도 이가 생기게 하지 못함으로 그들 역시 하나님의 권능 아래 있음이 드러난 것입니다. 따라서 진심으로 하나님의 권능에 굴복한다면 자신의 힘으로 되는 것은 없음이 함께 고백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무엇보다 실감해야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그 땅을 기업을 받게 되면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권능에 의한 은혜임을 알아야 하고 이스라엘에서 사라지지 않아야 하는 것도 은혜로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은 우리의 인생 전체에 관여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까지 우리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물론이고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것은 우리로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따라서 내 힘으로 되는 것과 하나님의 권능으로 되는 것을 따로 구별해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구원을 받는 것이 오직 하나님의 권능임을 알았다면 내 힘으로 산다고 생각했던 매일의 삶 또한 하나님의 권능임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은 심판의 대상일 뿐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마지막 때 모든 사람이 부활하여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나오고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온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생명의 부활로 나오게 할 선한 일을 행하는 것이 우리의 능력 밖의 일입니다. 따라서 만약 우리가 선한 일을 행한다면 그것은 분명 우리의 힘과는 무관한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받으면 선한 일을 행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선한 일을 행함으로 생명의 부활로 나오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행하심만 선한 일로 간주합니다. 따라서 신자는 독자적으로 선한 일을 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이 행하신 선한 일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예수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선한 일을 행한 것으로 간주하시고 예수님의 생명의 부활에 참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의 구원이기 때문에 신자가 외치는 것은 하나님의 권능일 수밖에 없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권능으로 되지만 우리가 선을 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것을 포기하지 못하는 완악함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약속 밖에 존재하는 세상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이루심을 믿는 것이고 이것이 하나님의 권능을 믿는 믿음입니다.

 

 

세상이 왜 심판을 받아야 할까요? 세상에는 악한 사람도 많지만 ‘저 사람만큼은 천국에 가야돼’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착하게 사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나님이 재앙을 내리는 애굽에는 착한 사람이 없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판에 해당된다는 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어떻게 보시든 세상은 심판에 대해 덤덤합니다. 하지만 신자는 하나님은 완악한 세상에 대해 분노하고 계시고 장차 예수님을 보내심으로 그 분노를 쏟아내시는 것을 현실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권능으로 우리에게 어떤 일을 행하셨는가를 알게 되고 하나님이 행하신 일에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은 여러분은 심판의 세상에서 나오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하루하루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허락되고 있고 어떤 형편에 있다 해도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가 있는 자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신자를 가리켜서 복의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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