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7.01 17:46

(32강) 바로의 타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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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8:25-32http://onlycross.net/videos/exo/exo-082532.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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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25.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가서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

26.모세가 이르되 그리함은 부당하니이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것은 애굽 사람이 싫어하는 바인즉 우리가 만일 애굽 사람의 목전에서 제사를 드리면 그들이 그것을 미워하여 우리를 돌로 치지 아니하리이까

27.우리가 사흘길쯤 광야로 들어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되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대로 하려 하나이다

28.바로가 이르되 내가 너희를 보내리니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광야에서 제사를 드릴 것이나 너무 멀리 가지는 말라 그런즉 너희는 나를 위하여 간구하라

29.모세가 이르되 내가 왕을 떠나가서 여호와께 간구하리니 내일이면 파리 떼가 바로와 바로의 신하와 바로의 백성을 떠나려니와 바로는 이 백성을 보내어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일에 다시 거짓을 행하지 마소서 하고

30.모세가 바로를 떠나 나와서 여호와께 간구하니

31.여호와께서 모세의 말대로 하시니 그 파리 떼가 바로와 그의 신하와 그의 백성에게서 떠나니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32.그러나 바로가 이 때에도 그의 마음을 완강하게 하여 그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였더라

 

 

<설교>

애굽에 재앙이 주어지는 것은 하나님이 일하고 계신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여러분이 지켜보고 계신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하나님이 행하시는 모든 일을 가장 지혜로운 방식이라고 인정할 수 있겠습니까?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하루 속히 애굽을 나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편히 생활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하나님의 방식은 참으로 번거롭습니다. 세 번의 재앙에서도 바로는 이스라엘을 보내지 않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아주 강한 재앙 하나면 바로를 굴복시킬 수 있는데 굳이 여러 번의 재앙이 필요한가라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단순히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을 주어 잘 살게 하는 것에 목적을 두지 않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지혜가 되기 때문입니다.

 

 

25절을 보면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가서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고 말합니다.

 

 

파리 떼로 인해서 애굽 땅이 황폐하게 되자 견디지 못한 바로가 결국 모세와 아론을 불러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고 허락을 하는데 광야로 나가지 말고 애굽 땅에서 드리라는 것입니다. 바로는 어느 땅에서든 제사만 드리게 해주면 될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모세와 아론이 바로를 만나서 맨 처음 요구한 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보내어서 광야에서 하나님 앞에 절기를 지키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절기를 지킨다는 것은 제사를 드린다는 뜻입니다. 즉 모세와 아론은 광야에서 제사를 드리겠다는 것이고 바로는 애굽에서 제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의 타협안입니다.

 

 

하지만 모세는 “모세가 이르되 그리함은 부당하니이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것은 애굽 사람이 싫어하는 바인즉 우리가 만일 애굽 사람의 목전에서 제사를 드리면 그들이 그것을 미워하여 우리를 돌로 치지 아니하리이까”(26절)는 말로 바로의 타협안을 거절하면서 사흘 길쯤 광야로 들어가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릴 것을 요구합니다.

 

 

파리 떼로 인해서 괴로운 바로는 결국 모세의 제안을 받아들이지만 너무 멀리 가지는 말고 자신을 위해 간구하라는 것으로 타협을 종결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말에서 드러나는 바로의 무지는 재앙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았고 그래서 모세와 아론에게 자기를 위해 하나님께 간구해 달라고 부탁하면서도 여전히 이스라엘이 자신의 손에 있다고 착각하는 점입니다.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이스라엘은 바로의 손에 붙들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로의 손에 붙여 놓으신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언제든 하나님에 의해 애굽에서 나올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재앙은 애굽이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음을 알게 하는 좋은 교재임에도 불구하고 바로는 그 사실에 전혀 눈을 뜨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관심은 현재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에만 집중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다스리는 현재의 삶에서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바로는 개구리 재앙에서 “여호와께 구하여 나와 내 백성에게서 개구리를 떠나게 하라 내가 이 백성을 보내리니 그들이 여호와께 제사를 드릴 것이니라”(출 8:8)고 말합니다.

 

 

그리고 파리 재앙에서 다시 “내가 너희를 보내리니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광야에서 제사를 드릴 것이나 너무 멀리 가지는 말라 그런즉 너희는 나를 위하여 간구하라”(출 8:28)고 말합니다.

 

 

바로는 현재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타협을 하는 것입니다. 재앙을 통해서 하나님이 애굽을 다스리시고 이스라엘도 주관하심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손에 있는 것을 포기 할 테니 파리 떼를 떠나게 해달라고 제안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바로에게서 지금 우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세상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이 주관하심을 믿는다고 할 것입니다. 바람 한 점도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일임을 인정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삶도 그러합니까? 여러분의 삶의 배후에도 하나님이 계심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에게는 여러분의 것이 아무것도 없어야 합니다. 건강도 재물도 여러분의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믿음이라면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면 이렇게 하겠습니다’라는 조건적 타협은 있을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현대 교회를 보면 바로와 같은 타협으로 가득합니다. ‘하나님, 이 일만 잘되게 해주시면 십일조를 성실히 하겠습니다’‘하나님, 이 문제만 해결해 주시면 열심히 교회를 위해 봉사하겠습니다’이러한 것들이 바로와 같은 타협입니다.

 

 

이러한 타협의 문제는 무엇일까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봉사를 하고 헌금을 하는 모든 행위들이 자신의 마음먹기에 달린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몸도 재물도 자기가 주관하는 자신의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그와 같은 조건적 타협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헛된 맹세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신을 찾아서 타협하는 것은 종교의 세계입니다. 신이 기뻐할만한 제물을 바치면서 원하는 것을 구하는 것도 타협하는 것입니다. ‘좋은 것을 바쳤으니까 신도 나에게 좋은 것을 주셔야 합니다’라는 조건적 협상이고 타협인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지금의 기독교가 진심으로 출애굽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모세와 아론은 사흘 길 쯤 광야로 가서 제사하겠다고 하고 바로는 애굽 땅에서 제사하라고 제안합니다. 모세는 바로의 제안을 애굽 사람이 여호와께 제사 드리는 것을 싫어한다는 구실로 거절하지만, 생각해 볼 점은 ‘광야에서 제사하는 것과 애굽에서 제사하는 것이 과연 다른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광야에서 제사하라고 하셨을까요? 제사가 목적이라면 먼저 애굽에서 제사하고 그 후에 나오게 할 수도 있습니다. 이 문제에서 알 수 있는 것이 출애굽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애굽도 신을 섬깁니다. 제사장이 있고 신전도 있고 신을 섬기는 의식도 있습니다. 그렇게 신을 섬기는 이유는 나라와 개인의 번성이고 행복입니다. 이것이 세상이 신을 찾는 이유입니다.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서 제사하라는 것은 애굽이 신을 찾고 부르는 이유와 목적으로부터 나올 것을 요구하시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개인의 번성과 행복을 위한 애굽적 사고방식으로 하나님을 찾고 부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 개인의 본성과 행복을 위해 존재하지도 일하시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출애굽의 진정한 의미는 애굽적 사고방식, 습성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주신 계명에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고 하시고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십니다. 다른 신이나 자기를 위해 새긴 우상, 모두가 애굽적 사고방식에서 찾는 신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광야는 실패의 현장입니다. 마실 것과 먹을 것으로 인해서 홍해를 건너게 하신 구원의 은혜는 잊어버리고 원망과 불평으로 대적합니다. 종으로 생활하던 애굽에서 먹던 것을 그리워하며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을 드러냅니다.

 

 

이것만으로도 이스라엘은 애굽과 다를 바 없는 하나님의 원수라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고 약속의 땅에 들어갈 자격 또한 없음이 드러났습니다. 따라서 광야에서 제사한다면 그 의미는 원수 된 자에게 함께 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로 모아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에 제사를 드리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의 제사에는 광야에서 멸망 받았어야 할 존재들이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들어와 그 땅의 소출을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한 기쁨과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애굽의 제사와 다른 점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 받은 자로 예배드립니다. 본래는 우리 또한 심판의 존재일 뿐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을 사람들입니다. 그런 우리가 예수를 주로 고백하며 예배에 참여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입니다. 이 은혜가 세상에서 먹고 사는 것보다 더 크기에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게 하신 은혜로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믿음에 자기를 위한 하나님의 타협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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