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7.08 16:07

(33강) 다섯째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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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9:1-7http://onlycross.net/videos/exo/exo-090107.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에게 들어가서 그에게 이르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2.네가 만일 보내기를 거절하고 억지로 잡아두면

3.여호와의 손이 들에 있는 네 가축 곧 말과 나귀와 낙타와 소와 양에게 더하리니 심한 돌림병이 있을 것이며

4.여호와가 이스라엘의 가축과 애굽의 가축을 구별하리니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것은 하나도 죽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고

5.여호와께서 기한을 정하여 이르시되 여호와가 내일 이 땅에서 이 일을 행하리라 하시더니

6.이튿날에 여호와께서 이 일을 행하시니 애굽의 모든 가축은 죽었으나 이스라엘 자손의 가축은 하나도 죽지 아니한지라

7.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본즉 이스라엘의 가축은 하나도 죽지 아니하였더라 그러나 바로의 마음이 완강하여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니라

 

 

<설교>

사람이 사주를 보고 토정비결을 보고 궁합을 보는 것은 자기 인생과 운명을 미리 알아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바꾸어 살아보겠다는 의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현실을 살고 싶은 욕망의 의지인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기독교인들이 자기 인생에 대한 자기의 뜻을 하나님께 구하는 것도 사주나 토정비결, 궁합을 보는 인간의 습성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역시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살고자 하는 욕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이 행하실 여러분의 미래의 일을 미리 알려주신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내일 힘든 일이 발생하지만 며칠 지나면 다른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는 식으로 인생에 있을 모든 일을 미리 안다면 과연 사는 것이 행복할까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실 일을 미리 알고 믿는다면 지금 힘든 일이 있어도 나중에 잘되게 하실 것을 생각하며 슬퍼하거나 낙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에 어떤 일을 하실 지를 말씀하지 않습니다. 다만 예수님이 다시 오시고 세상이 심판을 받을 때 자기 백성은 주와 함께 영원한 영광에 나라에 들어가게 하신다는 것만 약속하고 계실 뿐입니다.

 

 

그렇다면 신자가 알아야 하는 것은 마지막 때 하나님이 이루실 일입니다. 지금 현재의 삶이 어떻든 상관없이 마지막은 영광으로 마무리 된다는 것이 분명히 약속된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마지막 때의 약속을 소망하고 믿는 자로 사는지의 여부는 현재를 어떻게 살아가는 가로 드러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문제없는 인생만 추구합니다. 자기 인생에서 일어날 수 있는 힘든 문제들을 하나님이 모두 해결해주기만을 바랍니다. 그리고 인생의 끝에 도달했을 때 하나님이 약속하신 영광에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인생의 성공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은 도외시한 채 아름답고 행복한 자기 인생만을 꿈꾸는 인간의 욕망입니다.

 

 

바로는 이스라엘로 인해 재앙을 겪게 될 것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나름대로 신을 섬기면서 풍요로운 애굽만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와 아론이 등장하면서 예기치 않은 재앙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시 하나님이 애굽에 재앙을 내리는 방식으로 자신들을 인도하여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하실 것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도 애굽도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현재를 겪으면서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재앙은 단지 애굽을 고통스럽게 해서 이스라엘을 보내게 하고자 하시는 의도라기보다는 바로의 완악함을 낱낱이 드러나게 하시고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통하여 애굽으로부터의 구별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보이고자 하시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다시 “바로에게 들어가서 그에게 이르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1절)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보내는 것을 거절하고 억지로 잡아 두면 애굽의 모든 가축에게 돌림병이 있을 것을 예고하십니다.

 

 

바로가 재앙에서 벗어나는 길은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스라엘을 보내주면 됩니다. 그렇게 간단한 일을 바로가 하지 않고 반복되는 재앙으로 고통을 겪으면서 보내주겠다고 하다가 보내지 않는 변덕만 반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바로였다면 이스라엘을 보내겠다고 말한 대로 했을까요? 만약 바로가 자신이 말한 대로 이스라엘을 보냈다면 바로는 한 번의 재앙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았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선한 사람으로 부각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얼마든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가능성이 있고 그 가능성으로 하나님을 믿으며 구원 받을 수 있다는 모든 논리가 힘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바로는 끝까지 완악함을 보여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를 완악하게 하신 하나님의 이유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에 실천할 수 있는 바로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완악하게 하셨다는 뜻은 아닙니다. 인간은 처음부터 말씀을 실천할 수 있는 존재가 되지 못합니다. 다만 하나님은 인간의 완악함, 완고함이 생생히 나타날 수 있도록 재앙이라는 방식을 동원하신 것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이것은 에덴동산의 선악과 사건과 연결해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인간이 생명을 누리는 것은 간단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선악과를 먹지 않으면 되었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에는 많은 과실들이 있었기에 그 모든 것을 마음대로 먹고 선악과 하나만 먹지 않으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지키지 못했을까요? 그것은 선악과가 자신을 하나님처럼 되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마귀의 유혹입니다. 따라서 선악과는 자신을 현재보다 더 가치 있는 존재가 되게 하기에 유익한 것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 죄이며 마귀에게 붙들린 인간임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바로가 지금 그 역할을 성실히 하고 있습니다. 반복되는 재앙의 괴로움으로 인해 모세에게 ‘이스라엘을 보내줄 테니 자신을 위해 간구해 달라’고 사정하게 되면서도 상황이 나아지만 또 다시 자신의 것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완악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이 곧 죽음의 심판에 해당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다섯째 재앙입니다.

 

 

다섯째 재앙은 돌림병으로 인해서 애굽의 모든 가축이 죽는 것입니다. 비록 가축의 죽음이긴 하지만 다섯째 재앙에 등장하는 것이 죽음이고, “이튿날에 여호와께서 이 일을 행하시니 애굽의 모든 가축은 죽었으나 이스라엘 자손의 가축은 하나도 죽지 아니한지라”는 말처럼 이스라엘은 넷째 재앙과 동일하게 애굽과 구별되어 이스라엘 자손의 가축은 하나도 죽지 않게 됩니다.

 

 

결국 가축이 죽고 사는 것은 ‘애굽 자손에게 속했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했느냐’ 그것 하나로 결정되었습니다. 가축은 가축이었을 뿐입니다. 다만 ‘어느 쪽에 속했느나?’가 죽음과 생명으로 나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이스라엘을 제외한 애굽의 모든 가축을 죽이신 것은 단지 바로에게 물질적 손해를 입히시거나 하나님의 무서운 능력을 보이고자 하시는 것이라기보다는 철저하게 이스라엘과 애굽을 구별하시는 하나님의 하나님 됨을 보이시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중요한 것은 구별하시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인도 받고 장차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된 것은 이스라엘이 운이 좋아서도 아니고 믿음이 좋아서도 아니며 이방 민족에 비해서 인간성이 나아서도 아니라 하나님의 일방적인 구별 때문임을 아는 것이 이스라엘다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구별에는 일방적인 사랑이 있고 긍휼과 자비하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고자 하는 자를 사랑하신다는 것은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그 뜻대로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고 애굽을 미워하신다는 것을 철저하게 구별된 가축의 죽음으로 보이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잊지 않아야 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애굽보다 나은 인간이어서 구별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구별이 없는 세 번의 재앙을 통해서 보이셨습니다. 강이 피가 되고, 개구리가 땅에 올라오고, 티끌이 이가 되는 재앙을 이스라엘도 겪으면서 그들 역시 심판의 존재임을 뿐임을 보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재앙을 통해서 모든 인간은 심판 아래 있으며, 그들 속에서 백성 될 자와 백성 아닌 자를 구별하였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재앙에서 구별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눈을 떠야 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 될 자에게 가르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신자는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곧 생명임을 믿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은 신자 또한 죽음에 처한 심판의 존재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에게 그리스도의 피로 인한 용서의 은혜가 함께 함으로 거룩한 자로 여김 받았음을 믿게 된 자가 신자입니다. 때문에 신자는 그리스도를 자신의 존귀함과 영광으로 믿게 되는 것이고 그것을 복이 있는 것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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